[인권왓 칼럼](15)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식구’와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떻게 다를까? 일상생활에서 이 두 낱말은 거의 구분 없이 쓰이기 때문에, 그 차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살펴보면, ‘식구’는 한 집 안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반면에 ‘가족’은 한 집안의 친족, 곧 어버이와 자식, 부부 따위의 혈연관계로 맺어져 한 집안을 이루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가족과 식구는 이와 같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낱말의 쓰임새가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사무실 식구가 늘었네!”처럼 한 단체나 기관에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식구’를 쓰기도 한다. 이와 달리 가족은 몇십 년 동안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혈연관계에 있으면 모두 가족이라 부른다. 

작년, 어느 못난 정치인 덕분(?)에 외국인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지를 확인할 기회가 생겼었다. 그 정치인은 외국인주민들이 국내에서 우리 국민들의 돈과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다는 명분을 위해 열심히 질문을 던져댔다.

첫 번째 질문은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외국인주민들에게 한국인과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되는가?’였다. 하지만 실제 사실을 확인해보면, 관세청이 국내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2017년 한 해 동안 징수한 국세는 1조 3604억 원이다. 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전체 세수의 60%을 넘는 규모이다. 

두 번째 질문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들에게 건강보험 가입 기회를 주면 대한민국 국민이 낸 보험료로 외국인들을 치료해주는 꼴이 아니냐?’였다. 건강보험공단의 ‘2013∼2017년 국민·외국인·재외국민 건강보험료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외국인 전체 가입자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17년 2490억 원 흑자를 보이는 등 2013년부터 5년간 1조1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지독한 외국인 혐오와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이 객관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고, 못난 정치인들이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심화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 읍면지역의 밭. 현장에는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시 모 읍면지역의 밭.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확 작업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편, 제주도내에서 외국인주민들을 지원하는 한 단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코로나19사태 이후에 모든 국제선이 멈추고 제주도 무사증제도가 정지되어 새로 입국하는 외국인이 거의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고 있는 외국인들의 사정도 딱하지만, 제주도 1차 산업 사업주들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어서 이들 제주도민들이 딱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제 제주도 사회에서도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국인주민들이 한 식구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두고 볼 때, 외국인 혐오주의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현실에 있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오히려 외국인주민들의 노동으로 더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 된다. 혐오의 잣대가 아닌 상호적 관계 존중으로서 상호부조가 오히려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전 도민에게 2차 재난긴급생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신청을 받았다. 당초 제주도는 대다수의 등록외국인들을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다가 발표 일주일 만에 2만7488명의 등록외국인 중 5300여 명(19%)의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들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한편, 서울시와 경기도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외국인 주민을 배제한 것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6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자체 재난긴급지원금 정책에서 외국인주민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판단하면서 국가인권위원장 명의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개선하라고 권고하였다. 같은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독버섯같은 외국인 혐오 세력들로 인해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어디에선가 우리 삶으로 들어왔고, 우리와 함께 살며 끼니를 해결하게 된 사람들을 ‘식구’로 표현하는 우리네 의식은 궁극적으로 인심 좋은 공동체 상을 지향한다. 식구 모두가 다 잘 돼야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구는 이러해서 또는 누구는 저러해서, 빼고 또 빼는 사회는 비뚤어진 혐오와 차별이 빚어낸, 전혀 우리의 의식과 맞지 않은 모습이다. 한 식구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를 우리는 원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빼놓지 않고 모두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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