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네책방 55곳 “책 다양성 해치는 도서정가제 폐지 반대”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제주지역 동네책방들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제주 동네책방들은 14일 성명을 내고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소비자에게 피해만 안겨줄 것”이라며 “소형출판사와 동네책방 출현을 가능케하고 출판생태계 다양성을 담보해온 도서정가제 개악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출판 당시 정가대로 책을 판매하도록 만든 제도로 대형출판사와 온라인서점 등 과도한 가격 인하 경쟁에 따른 학술, 문예 등 고급서적 출간 위축을 막기 위해 시행됐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3년마다 검토하게 돼 있으며, 현행 부분 도서정가제는 10% 할인과 5% 적립이 가능하도록 2014년에 개정됐다. 오는 11월 일몰을 앞둔 상태다.

제주 동네책방들은 “도서정가제 일몰이 다가옴에 따라 지난해 16차례에 걸쳐 만들어낸 민관단체 합의안을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뒤집었다”며 “도서정가제 폐지는 책 다양성을 해치고 소수 독점 시장이 형성돼 양질의 도서가 사라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과다 할인으로 가격에 거품이 생겨 독자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서정가제는 완벽하진 않지만, 자본 우선 시장 논리로부터 출판 다양성을 지키고 동네책방 생존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울타리”라면서 “이를 통한 긍정적 효과는 책을 저렴하게 사는 것보다 큰 가치를 지닌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도서정가제 덕분에 가격경쟁력이 생겨 작은 출판사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가고 다양한 콘텐츠의 책을 펴내는 등 가격이 아닌 컨텐츠와 질로 경쟁이 가능하게 됐다”며 “새로운 작가군이 형성되고 다양한 가치가 담긴 책이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제주 동네책방들은 “동네책방은 각종 독서모임, 저자와의 만남 등 책을 통해 파생되는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다양성이 담긴 책을 유통한다”면서 “제주를 담은 책이나 독립출판물을 실제로 만져보고 구입할 수 있는 동네서점이 사라진다면 지역 문화와 역사가 사라지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또 “제주 곳곳 특색과 매력 있는 동네책방이 늘어나며 제주책방투어라는 여행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며 “제주 동네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를 전파하고 가치를 지켜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제주 동네 책방들은 자리를 지켜 동네사랑방이자 문화거점 역할을 잘 수행하고자 정부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함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전문] 도서정가제 개악을 반대하는 제주도 동네책방 성명서 

도서정가제는 자본을 앞세운 출판사 및 대형서점들의 할인공세를 제한해 동네서점들과 작은 출판사들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2014년에 10%할인, 적립 5%까지만 할인할 수 있는 부분도서정가제로 개정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지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겠단 입장을 밝혀오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제주도의 동네책방들은 심각한 우려는 표하는 바입니다. 

출판사와 서점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이 책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할 명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산업이, 책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을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면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책은 문화이고 교육, 학술, 문화, 예술 등의 발전에 필수적인 공공재의 성격을 지닙니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도서관을 운영하고 독서문화진흥법과 같은 정책을 마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완벽하진 않지만, 자본우선의 시장논리로부터 출판의 다양성을 지키고 동네책방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드러나는 긍정적인 효과는 책을 싸게 사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닙니다. 

<동네서점들이 살아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개정된 후 전국에 100여 곳에 불과했던 독립서점들이 2020년 현재 600여 곳으로 6배가 늘어났고 기존의 지역서점 수의 감소도 급격히 완화되었습니다. 이는 불완전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생겨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동네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닙니다. 각종 독서모임, 워크숍, 저자와의 만남 등 책을 통해서 파생되는 문화의 확산에 기여합니다. 지역 작가, 예술가, 활동가들과 협업해 지역의 가치를 지키고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합니다. 또한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양성이 담긴 책을 유통합니다. 예컨대 제주의 오름이나 해녀, 신화, 역사 등의 컨텐츠를 담은 책, 혹은 독립출판물을 실제로 만져보고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동네서점 밖에 없습니다. 이런 서점들이 사라진다면, 지역 문화와 역사 자체가 사라지는 일입니다. 

<출판의 다양성과 전문성>

한국출판인회의에 따르면 2014년 4만 4148개였던 출판사 수가 2018년 6만 1084개로 30%이상 증가했습니다. 2002년 3만 5000종이었던 출간 종수는 8만여 종으로 늘었습니다. 다양한 출판사들이 다양한 컨텐츠의 책을 펴내고 작은 출판사의 책도 당당히 베스트셀러에 올라갈 수 있는 이유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 이전에는 큰 자본을 가진 출판사의 책과 상업성만을 부각한 책, 책의 질을 낮춰 큰 폭의 할인을 하는 책들 위주로만 소비가 되었다면, 개정된 도서정가제 이후로는 책의 컨텐츠와 질로 경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구간 위주의 소비가 아닌 신간 위주의 소비가 일어나 새로운 작가군이 형성되고 다양한 가치를 담은 책들이 봇물 쏟아지듯 나오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책이 인류의 유산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대단한 성과이고 가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주 지역문화에 풀뿌리 역할을 하는 동네 책방>

제주 지역에서는 특히 독립서점의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현재 서점업으로 등록되어 있는 책방만 해도 50여개에 이릅니다. 기존의 지역서점의 수를 합치면 150여 군데가 넘습니다. 이는 서울시,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수치입니다. 단순히 수만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제주 곳곳에 특색 있고 매력 있는 책방들이 늘어남으로써 ‘제주책방투어’ 라는 새로운 여행문화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명소와 맛집 위주의 여행에서 제주의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책방들을 방문하고 제주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책들을 살펴보고 구매함으로써 진정한 제주의 가치를 알아가는 여행객들이 늘었습니다. 책방은 갖가지 콘텐츠를 가지고 독자와 소통합니다. 올해 책방 제주풀무질에서는 ‘세화마을이야기유랑단’을 꾸려 내가 사는 마을의 역사와 유래, 문화를 살펴보며 동네를 더욱 깊숙하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파파사이트 책방에선 ‘제주탐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제주신화와 ‘굿’ 문화를 소개하는, 다소 낯설지만 진짜 제주의 내면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소리소문 책방에서는 코로나 19로 활동이 뜸해진 제주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지역 주민들과 낭독극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제주 책방에서는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닌, 지역 문화를 전파하고 가치를 지켜나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호소합니다. 건강한 출판생태계, 독서문화, 지역문화의 보존을 위해 도서정가제 개악을 반대합니다. 출판사들은 광고나 할인 보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 서점은 책을 출혈경쟁으로 싸게 공급하는 것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차별 없이 공급하기를 바랍니다. 독자는 수많은 책방에서 품질 높고 다양성 있는 책을 접하길 바랍니다. 이 모든 건 도서정가제가 지켜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도서정가제는 책, 즉 문화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출판사가 애초 정한 가격보다 책을 싸게 팔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일부 대형출판사와 온라인서점 등의 과열 가격 인하경쟁에 따른 학술, 문예분야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3년 처음 도입된 이후 3년마다 개정되어 왔고, 2014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부분 도서정가제를 통해 소비자는 책을 살 때 10%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이 가능하고 이에 더해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적립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부분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논리로부터 출판계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소형출판사와 동네책방의 출현을 가능케 했고 출판생태계의 다양성을 담보해주었습니다.    

부분 도서정가제의 일몰시한이 2020년 11월로 다가옴에 따라 2019년 7월부터 16차례에 걸쳐 여러 민관단체들이 모여 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새로 나온 책은 10%의 할인만 적용한다. 둘째, 출판된 지 1년이 지난 책은 재정가를 매겨 판매할 수 있다. 셋째, 헌책방은 책이 나온 지 1년이 안 된 책은 팔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안을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뒤집었습니다.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보다 나은 방향을 위해서 1년 넘는 시간동안 고민한 결론을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소비자후생’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있는 부분도서정가제를 없애고 더 큰 폭의 할인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소비자 후생을 내세우지만 이는 결국 출판시장의 상황을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으로 되돌려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시장경제논리로부터 출판계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소형출판사와 동네책방의 출현을 가능케 하며, 출판생태계의 다양성을 담보해온 도서정가제 대한 개악 시도에 대해 제주의 동네책방은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바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서정가제를 없애면 시행 이전의 과도한 경쟁이 재현될 것이고 과도한 경쟁은 다양한 책을 출판하는 상당수의 중소형 출판사를 경영난에 처하게 만들어 대형출판사만 살아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할인을 감안한 책값 책정으로 책 가격에 거품이 끼게 되어 할인율은 높아 보이나 실제 소비자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 책을 구입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 대형 출판사가 각종 마케팅과 영업력으로 만들어내는 베스트셀러, 자기개발서, 참고서 류가 시장을 장악하면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책들은 출판되기 어려워 질 것이고 이런 책들로 개성 있는 서가를 구성하고 책을 소개하는 동네책방들은 소수의 기획된 책 위주의 할인 공세 속에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대부분이 영업을 유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는 제주도에 있는 대부분의 동네책방에도 일어날 일이다. 

3. 제주의 많은 동네 책방들은 제주가 문화적으로 풍성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한 제주 시골 마을 곳곳으로 스며들어가 도민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기획행사를 열어 문화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개성 넘치는 각 동네책방들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아, 이제 제주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사진 찍는 여행이 아닌, 책방을 찾아다니며 책방들이 가진 고유의 색깔과 정취를 느끼고 책을 구입해가는 ‘책방투어’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동네책방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은 곧 지역문화를 말살하겠다는 정책에 다름이 아니다. 

4.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인간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가치 있는 문화재이다. 가격 경쟁력이라는 허울아래 상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를 통해 문화를 지키고 관련 산업 종사자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동네책방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지금의 가치와 역할을 더욱 확대해 갈 수 있다.

5. 도서정가제 폐지는 책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며 소수의 독점적 시장장악으로 결국 양질의 도서는 찾기 힘들어지고 책 가격에는 거품이 생겨 소비자인 독자에게도 해가 될 것임이 명백하다. 

이에, 우리 제주 동네 책방들은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동네사랑방이자 문화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자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함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도서정가제 폐지는 책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며 소수의 독점적 시장장악으로 결국 양질의 도서는 찾기 힘들어지고 책 가격에는 거품이 생겨 소비자인 독자에게도 해가 될 것임이 명백합니다. 

우리 동네 책방은 현행의 부분도서정가제를 넘어 완전정가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함께하는 책방들입니다. 제주도의 동네책방 99%가 함께했습니다.

구들책방, 감귤서점, 그리고서점,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 나일롱, 달리책방, 달책빵, 돈키호테북스, 디어마이블루, 라바북스, 만춘서점, 몽캐는책고팡, 무명서점, 미래책방, 바라나시책골목, 밤수지맨드라미, 보배책방, 북살롱이마고, 북스토어아베끄, 북스페이스곰곰, 북타임, 사슴책방, 삼춘책방, 서실리책방, 소심한책방, 시옷서점, 시와그림책, 시인의집 아무튼책방, 어떤바람, 언제라도북스, 여행가게, 오줌폭탄, 유람위드북스, 이듬해봄, 인터뷰, 제주살롱, 제주풀무질, 주제넘은서점, 책가방, 책다방, 책방무사, 책방소리소문, 책방오늘, 책방오후, 책밭서점, 책약방, 책자국, 카페동경앤책방 커피동굴-플랜트, 키라네책부엌, 파파사이트, 한뼘책방, 헌책방동림당, 혜원책방.(총 55곳.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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