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정치인의 말과 행동, 책임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자기 진영을 비판할 때는 종종 비판의 칼날이 무뎌진다. 때론 외면하고 때론 덮어버린다. 어느 사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정당화를 시도한다. 

진보 진영이 상대 진영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도덕적 언어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 진영은 도덕적 비판에 대해 도덕적 언어로 대응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중 잣대다. 상대에게는 법적 기준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이댔으나, 자신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도덕적 비판을 그만하라고 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말처럼, 글처럼 행동이 따르지 못했다.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면서도 도덕적 잣대는 외면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각자가 고백하는 가치다. 우리만 옳다는 진영 논리는 모두에게 위험하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과오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진보와 보수의 가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각자가 고백하는 가치다. 우리만 옳다는 진영 논리는 모두에게 위험하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과오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우리만 옳다는 진영 논리는 옳지 않다

보수는 절대 옳고 진보는 절대 틀렸다, 진보는 절대 옳고 보수는 절대 틀렸다, 이런 진리는 없다. 메타 차원에서 보면, 진보와 보수의 가치는 우리 각자가 고백하는 가치이지, 옮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믿고 따르는 가치에서 옳다고 주장할 뿐이다.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가치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고백의 대상이라고 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를 정열과 판단력을 구사하면서, 단단한 판자에 힘을 모아 서서히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정치는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옳다고 고백한 것을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가치만 옳다는 진영 논리는 위험하다.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모두 위험하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과오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 물론 가짜 뉴스를 통해 잘못된 사실관계가 알려진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억울한 누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책임지는 정치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더라도 능력이 출중할 수 있다. 도덕성으로만 평가받는 게 아니다. 온갖 비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으로 뚫고 가는 정치인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 정치가 통할 수 있을까?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功)만 있고 과(過)는 없는 정치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과오가 있더라도 공로가 더 큰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인정받는다. 하지만 과오가 있다면 책임지고 그 다음을 모색하는 게 지혜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최근 일련의 사건을 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데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는 생각이 든다. 기득권과 비기득권을 구분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과오가 있다면 진보든 보수든 고개를 숙여야 한다. 법적 책임을 논하기 전에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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