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4) 인권은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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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스포츠형을 권장하며 단정한 길이를 유지한다. 무스·젤 등을 통한 변형을 금지하며, 퍼머·염색을 통한 색상의 변형을 금지한다.”

“동복은 호주머니 윗쪽에, 하복은 학년표식 옆에 백색으로 통일 하여 명찰을 부착한다.”

“불건전한 이성교제는 금지한다. 남‧녀 학생 단 둘의 만남은 항상 개방된 장소를 이용해야 한다.”

“학생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

“여학생의 스커트는 무릎 위 5cm를 넘지 않아야 한다.”

현재 제주도내 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학생생활규정과 학생자치규정의 일부 조항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인 2016년 12월, 민주노총제주본부 청소년노동인권사업단은 도내 고등학교 30개교의 학생생활규정과 자치규정의 인권침해여부를 조사했다. 당시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에는 청소년의 참여가 많았는데 참가학생으로부터 학교 교칙에 의해 참가에 제한이 가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다. 조사결과 최종 취합된 23개교 중 학생의 정치활동․노동운동을 아예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규정이 16개교(69.6%)에 달했다. 학생들을 포함한 국민의 정치활동이었던 촛불집회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4년이 지난 지금 이전보다 학생들의 인권이 향상되었어야 함이 마땅하다.

4년이 지나는 동안 분명히 변화는 있었다. 2019년 말, 선거법이 개정되어 만18세 이상으로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고등학교 3학년의 일부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고 이는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교칙이 전면 개정 되어야 할 충분한 법적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내 상당수의 학교에는 구시대적이고 인권침해적인 교칙이 개정되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 3월 도내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TF에서는 고등학교 15개교의 교칙이 인권침해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도의회에는 제주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촉구했다.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찬반논의가 뜨겁다. 지난 6월 정의당 고은실 위원 등 22명 위원의 공동발의로 제출된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 학생인권조례안”이 9월 23일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에 상정되어있기 때문이다. 반대 측 입장에서는 조례안을 통해 교권이 제한되고 학습능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인권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시기는 지금도 늦은 상태다.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두발자유를 기본권으로 보고, 교육당국에 두발제한 규정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미 15년 전이다. 또, 학생의 명찰을 고정식으로 부착한 결과 교외에서까지 이름이 노출되는 것은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 판단하고 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것도 이미 11년이 흘렀다. 하지만 도내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학생생활규정에는 두발의 제한을 두고 있고, 이제는 일부가 되었지만 탈부착식이 아닌 교복에 새기는 명찰을 사용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제한 했던 것이 퀴즈문제로 나올 정도로 과거의 일이 되었는데 어찌하여 학교에는 그 잔재가 남아있을까. 경쟁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인권침해를 당연시 한 것은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두발의 제한은 공장을 군(軍)영화 하여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함께 내걸었던 요구안이 “두발의 자유화”였다. 두발제한을 통해 머리 길이와 모양 이상의 것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두발을 제한하면서까지 통제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제주학생인권조례는 헌법과 유엔협약 등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내용으로는 교육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권, 표현의 자유, 자치와 참여권등 기본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인권옹호관제를 신설하여 인권교육과 상담 및 구제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인권교육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는 경우가 있다. 좋은 경험도 많지만 인권침해의 경우도 상당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구제를 받지 못한다. 노동부 대응에 대한 부담 인 경우가 많은데 인권옹호관제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구제가 가능하다면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침해시 대응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이야기 칼럼에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권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 교육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인권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조례안의 제정 직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현재의 학칙을 개정하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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