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9) 신양 해안사구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다. 제주도를 소개하는 수많은 영상에 맨 처음 나오는 곳도 성산일출봉이다. 

성산일출봉뿐만 아니라 인근의 섭지코지 등의 해안은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계를 갖고 있다. 이곳 일대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겨울마다 날아오는 곳이며 대규모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신양 해안사구
▲ 성산일출봉 인근 지도.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갖고 있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는 원래 섬이었으나 육지와 연결됐다. (daum 지도 캡처)

이처럼 자연경관이 훌륭하다 보니 이곳은 예전부터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됐다. 현재 섭지코지에는 대기업 관광시설이 들어가 있어 사실상 사유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성산포 해양관광 단지이다. 성산포 해양관광 단지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에서 세운 3개 단지 20개 관광지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섬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도 많다. 거대한 성의 모습을 닮아 성산(城山)이라고도 불리었던 이 오름은 원래 본토와 약 1km 떨어져 있던 섬이었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이 바닷속에서 화산폭발하면서 나온 화산쇄설물(화산의 폭발에 의해 파쇄, 방출된 바위 파편)이 해안으로 밀려들어 와 쌓이고 그 위로 모래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성산일출봉이 폭발하면서 쌓인 화산성 퇴적물은 신양리층이고 그 이후 모래가 쌓인 곳은 사주(파도에 의해 해안선과 나란히 퇴적되어 있는 둑 모양의 모래지형)와 신양 해안사구이다.

즉, 신양리층은 바닷속에서 성산일출봉이 폭발하면서 나온 화산쇄설물이 현재 위치에 쌓여 만들어진 지층이다. 신양리층으로 인해 썰물 때마다 본토와 이어지는 너비 50~300m, 길이 1.7km 남짓한 '터진목'이라는 사주가 생겼고, 1940년에는 여기에 도로를 놓아 육지와 완전히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터진목이라고 부르는 곳은 육계사주(육지와 육지에 가까운 섬을 연결하게 한 사주)인 것이다. 육계사주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지형이지만 성산일출봉과 본토를 이은 육계사주는 국내 최대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진목은 광치기해안이라고 부르는 곳과도 일부 중첩된다. 광치기해안은 4.3 당시 학살 터이기도 했다. 

지질학계에서는 성산일출봉의 분출 시기를 약 50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성산일출봉 주변에 쌓인 신양리층의 연대로부터 추정한 것이다. 성산일출봉을 육지와 이은 육계사주의 형성 시기도 대략 700~8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우경식 외, 2005). 그러니까 고려 시대쯤에 성산일출봉이 육지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 성산일출봉이 만든 바닷가, 신양리층과 해안사구

제주도의 서쪽 해안의 송악산이 만든 바닷가가 하모리층이라면 동쪽에 성산일출봉이 만든 바닷가는 신양리층이다. 둘 다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제주도에서 가장 젊은 지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양 해안사구
▲ 신양리층 전경. 성산일출봉의 화산쇄설물이 바다에 쌓여서 만들어진 매우 젊은 지층이다. 이 신양리층으로 인해 성산일출봉이 섬에서 육지가 된 초석을 만들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산일출봉이 육지와 이어진 것은 신양리층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신양리층은 우리가 흔히 ‘송이’라고 부르는 스코리아를 중심으로 한 자갈퇴적층이다. 이 퇴적층은 굴, 조개 등의 조개류 화석과 수많은 해안생물 화석을 품어 안고 있다. 수천 년의 생태계 역사를 단계별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신양리층은 1970년대 초반 연대측정 결과 4460년 전으로 나왔으니 현재로 치면 약 4500년 전 지층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퇴적층이기에 그 중요성이 크다. 성산일출봉도 중요하지만, 이 오름이 만든 신양리층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화재로 등록해도 될 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서쪽의 하모리층과 함께 신양리층은 수천 년 전 분출한 독립화산체에서 나온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가장 젊은 지층이기에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두 지층에 대한 문화재 등 보전지역 지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신양 해안사구는 신양리층에 의해 생긴 모래언덕이다. 길이 3000m, 폭 70-180m 규모이고 사구 마루의 높이는 5-17m에 달하며 성산 터진목에서 신양 섭지코지 입구까지 발달한 대형 사구이다. 

이 사구의 모래를 공급하는 것도 신양리층이니 결국 성산일출봉이 신양리층과 신양 해안사구를 만든 셈이다. 다행히도 이 해안은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지 않아 해안사구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상태이다. 

신양 해안사구
▲ 신양 해안사구의 범위를 대략 그려보았다. 섭지코지 입구부터 터진목까지로 보면 된다. 이 안에 광치기해안도 포함된다. (daum 지도 캡처 후 작업)

신양사구는 다양한 염생식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좀보리사초와 통보리사초 군락, 순비기나무 군락이 주류를 이루며 갯메꽃, 갯금불초, 갯씀바귀, 반디지치 등의 수많은 염생식물이 모래 위를 덮고 있다. 좀 더 내륙 쪽으로는 곰솔-까마귀쪽나무 군락으로 이어진다.

국립생태원의 2015년 조사 결과, 신양사구에서는 조류 37종, 포유류 4종, 파충류 5종, 곤충 177종 등 야생동물 226종의 서식 또는 도래를 확인하였다. 신양사구에서 번식하는 흰물떼새의 둥지와 알을 다수 목격했다. 이 작은 모래언덕 위에 수많은 생명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제적인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붉은 바다거북의 사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붉은바다거북은 연안 해역을 좋아하며, 태평양을 횡단하여 멕시코까지 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수온을 잘 견디는 능력이 있어 수심 300m까지 잠수하며, 바닷속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4~5월에 짝짓기하고, 5~8월 밤에 육지로 올라와 한 번에 평균 120개의 알을 낳는다. 그 육지는 다름 아닌 모래 해변이다. 그러니까 제주의 모래 해변도 이들의 산란 장소라는 것이다.

신양 해안사구
▲ 신양 해안사구와 성산일출봉

 

하지만 2007년 중문 색달해수욕장에서 알을 낳은 것이 국내에서 마지막 산란 흔적이다. 그 이유는 모래 해변의 대부분이 대규모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거나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다거북의 번식기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낮과 밤 상관없이 모래 해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알을 낳을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이처럼 바다거북이 국제적인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된 이유는 제주도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모래 해변이 상업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중문 색달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들을 방류하는 행사를 했지만, 이들이 다시 제주의 모래 해변으로 돌아와 알을 낳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서식지인 모래 해변이 보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생물종을 보전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한 생물종을 보전하려면 개체보전이 아니라 서식지 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다행하고 고마운 것은 아직까지는 새들이 제주의 해안사구를 번식처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 신양 해안사구에 둥지를 트는 흰물떼새

해안사구의 모래 위에 둥지를 트는 새들이 있다. 해안사구가 이들의 고향인 셈이다. 바로 꼬마물떼새와 흰물떼새다. 특히 흰물떼새는 제주도 해안사구 위에 가장 둥지를 많이 트는 새이다. 흰물떼새는 보통 4~6월에 해안사구 모래 위에 둥지를 만든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수풀 속에 둥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 더미나 미역 등 해초가 쌓여있는 부근에 만든다는 것이다. 

신양 해안사구
▲ 흰물떼새와 모래 해변 위의 흰물때새 알. (사진 = 김완병)

사람들로부터 눈에 띄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하지만 모래 해변에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모랫길을 걷던 사람들이 밟기도 하고 알을 가져가 버리기도 한다. 어쨌든 이러한 수난을 당하면서도 흰물떼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신양 해안사구도 그렇다. 도내에서 가장 긴 해안사구 중 하나인 신양사구는 비교적 보전이 잘 되어 있는 사구이다. 그러다 보니 흰물때새도 알을 많이 낳고 있다. 

제주도는 신양사구를 비롯한 해역 일대를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지만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힘들 뿐 사람의 출입을 통제할 수는 없으므로 흰물떼새의 서식상황은 위태롭다.

이 흰물떼새의 보전을 위해서는 최소한 안내판 설치가 필요하다. 특히 번식기인 4~6월에 집중적으로 안내판을 곳곳에 설치하여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흰물떼새의 번식지임을 알리고 밟거나 주워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신양사구 위의 흰물떼새 둥지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알을 집중적으로 낳는 구역은 번식기에 한해 울타리를 쳐 사람의 출입을 통제할 필요도 있다. 

# 제주 해안의 대규모 개발사업 기조 바꿔야 

신양 해안사구
▲ 현재 신양 해안사구 일대는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연두색 부분) :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 공간 포털

 

현재 신양사구는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유수면인 조간대와 겹쳐진 곳이기도 하여 사실상 개발사업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신양사구 주변 지역이다. 이미 섭지코지는 모 대기업에 의해 개발되어 사유화되다시피 했고 저어새가 날아오는 철새도래지인 통밭알 지역도 지금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한때 개발 논란에 휩싸였었다. 

수상호텔, 수상 레스토랑, 보트장, 콘도 등을 중심으로 한 ‘성산 해양리조트 개발계획’이다. 이곳도 섭지코지처럼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있는 성산포 관광단지 안에 포함된 지역이다. 

2019년 12월에 성산읍 신양리 마을회도 제주도에 성산포 해양관광 단지를 투자진흥지구에서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신양리 마을회는 제주도에 성산포 해양관광 단지 개발사업자인 휘닉스 중앙제주의 부동산 투기놀음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투자진흥지구지정을 즉각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섭지코지를 성산포 해양관광 단지 사업지로 지정하면서 섭지코지 일대는 난개발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며 그동안의 개발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개발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주도 당국의 양적 팽창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개발 기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 기조는 최근, 오래전에 제주도 당국이 직접 허가해준 여러 개발사업이 좌초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제 발등 찍기인 셈이다.

이를테면 최근 곶자왈의 환경 훼손과 편법절차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던‘신화련금수산장’관광개발사업이 백지화됐다. 제주도는 신화련금수산장 관광단지 조성사업 인허가 조건인 착공 전 770억 원의 국내 금융기관 예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다. 도내의 여러 대규모 관광지들이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거나 중단되고 있다. 

앞으로도 신화련금수산장처럼 제주도로부터 사업승인 취소가 될 대규모 관광사업장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그동안 제주도에 대한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왔다는 것이고 제주도 당국이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승인을 내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지난 수십 년간 묻지마식 대규모 외자 유치를 통해 제주도의 관광산업 지도를 구축하려던 제주도 당국의 정책 기조가 무리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 당국의 당연한 사업취소 처분에 대해 도내 몇몇 일부 언론은 제주도 관광산업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공수표를 남발했던 것이 이제 빚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제주의 보물이면서도 난개발의 대상이었던 해안지역에 대한 대규모 관광개발 기조에서 보전을 통한 생태관광 기조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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