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학생인권조례 최대쟁점 부상해도 ‘침묵’

과거 학생들은 ‘그저 따르는 존재’였다. 당시 학생은, 엄밀히 말해 인격체가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인격을 갖춘 개체’로 취급받지 못했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물리적 고통이 뒤따르기 일쑤였다. 워낙 강압적인 시절이라 정작 학생 자신도 인격체임을 자각하기 어려웠다. 매를 피하려면 고분고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부모들은 한술 더 떴다. 심한 경우 자식을 소유물처럼 여겼다. 

“내 아이 내 맘대로 한다는데 뭔 상관이야” 

부모의 표독스러운 항변에는 진심어린 충고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또 하나의 엄연한 인격체라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격세지감이다. 이제는 학생 인권의 제도화를 논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현재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언젠가는 추억담처럼 “그런 때가 있었나”라고 되새길 게 뻔하다. 인권은 모두가 누려야 할 천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베푸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반응하는 이들이 있지만, 뜯어보면 제주학생인권조례(안)가 쇼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상위법에 보장되어 있는 내용을 보완하는 수준이다. 국제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나 헌법을 통해 기존에 준수하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제주보다 먼저 조례를 제정한 타 시도를 그대로 따라하지도 않았다. 가령,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은 뺐다. 종교계 등의 반발을 감안한 조치다. 

인권 침해 상담과 구제, 인권교육을 맡게 될 학생인권옹호관도 복수를 두도록 한 타 시도와 달리 제주는 1명으로 규정했다. 

시기적으로도 제주는 한발 이상 늦었다. 조례가 만들어진 5개 시도 중 가장 앞선 경기도(2010년)는 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례 제정 반대 쪽이 주장하는 가장 큰 우려는 교권침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교육주체 간 ‘권리의 충돌’로 이해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셈이다. 

조례 시행 만 10년을 맞은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의 반문이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학생인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교권이 추락한다면, 반대로 교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학생인권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제주의 경우 ‘타협의 지점’은 또 있다. ‘권리의 충돌’이라는 시선을 의식해선지 학생인권조례(안)와 함께 교권보호조례(안), 학부모 교육활동 지원조례(안) 3개를 나란히 마련했다. 

“교육주체 간의 권리와 활동이 조화될 수 있도록 3개의 조례를 함께 준비하게 된 것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도민사회의 화합의 결과물이 될 것을 자부한다”

학생인권조례(안)를 대표 발의한 정의당 고은실 의원의 말에서는 조례 제정의 당위성과 현실적인 난관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 의원 만큼은 조례 제정을 권리의 충돌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례는 일단 의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했다. 지난 7월, 상정이 보류된 것이다. 23일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애초 조례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22명에 이른다. 전체 의원의 과반이다. 의원들이 반대 단체들의 압력에 부담을 느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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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정작 더 큰 비판을 받는 쪽은 따로 있다.  전교조 출신 진보 교육감 ‘이석문 호’가 이끄는 제주도교육청이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육계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는데도 이상하리 만치 조용하다. 교육감이 조례 제정을 주도한 전북(2013년), 광주(2011년), 경남(세차례 시도 끝에 무산)의 경우와 너무 다르다.

연임에 도전한 2018년, ‘민주적인 학교공동체 문화 확산’(2018~2022년)을 약속하면서 세부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추진을 명시했던 이 교육감이었다. 서울시가 반대를 무릅쓰고 학생인권조례를 전격 제정한 2012년, 교육의원 신분으로 조례 제정 토론회를 주도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교육청에서 입장을 내기 보다는 의회에서의 과정을 보고, 조례가 제정되면 학교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것이 교육청의 역할이다” “학생인권조례는 가능하면 제정되는게 바람직하다”

코로나 19 관련 현안을 언급하던 이 교육감이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마지못해 내놓은 입장은 궁색해보였다. 조례 제정의 험난한 과정을 모를리 없을 텐데 “조례가 제정되면”이라니, 마치 남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때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게 학생 인권과는 무관하다는 건지 속내를 모르겠다. 제정 주도까지는 아니어도 방관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지금의 이석문호는 호기롭게 교육개혁을 부르짖던 시절과는 너무 달라 보인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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