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5) 섬앓이에서 그림책을 낳다 / 제주시 애월읍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하늘과 땅, 산과 물을 연결하는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건 책이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수그러드나 싶었던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고민 끝에 일주일만 쉬기로 했다. 순식간에 여유가 찾아든다. 그 여유를 붙들고, 광령2리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이하 노란우산으로 칭함)을 찾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광령2리 신천지 미술관으로 가는 방향 찻길에서 올려다본 ‘노란우산’.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광령2리, 옛 이름은 ‘이신굴’로 유신동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신굴’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선성종 때 이주자들이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이지만, 시대에 따른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책방 입구, 나한송 한 그루가 부목에 의지한 채 자라고 있다. 열매도 맺혔다. 우리 집 나한송은 언제 꽃이 피고 열매 맺힐까? 괜히 나무 한 그루가 부러웠다.

“소창손수건을 만드는 책방지기”
앞에 놓인 커피잔, 여느 카페에서 보던 잔과 다르다. 옆에 놓인 소창손수건이 시선을 당긴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환경으로 흘렀다. 그렇다고 노란우산이 환경책방이라는 뜻은 아니다.

책방지기 이진 씨에겐 세 개(아빠, 엄마, 청소년)의 독서 모임과 그림책 모임이 둘, 또 글쓰기 모임이 있다. 어느 날 문득, 그림책 모임에서 꺼내 놓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싶어졌다. 점진적으로 아티스트 웨이가 되어 나의 아티스트를 만나고 소통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6년 동안 이어 오던 그림책 모임이 글쓰기 모임이란 가지를 뻗었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글쓰기 모임의 이번 과제다. 이는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별의별 궁금증에 대한 도전이다.

어느 날은 엄마들 독서 모임에서 환경에 대한 책을 읽었다. 심각했다. 실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쉽지 않았다. 편리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문제점과 원인, 해결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실천 차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들 중심이라 의견도 잘 맞았다.

‘워터월드’란 영화가 떠올랐다. 해수면 상승에다 개발로 인한 포장, 언젠가 우리는 흙 한 줌을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설 땅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꼬리를 물며 편의점에 갔더니 쓰레기들만 보였다. 단 한 번을 위해 태어난 포장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재활용이나 분리수거만으로는 쓰레기를 줄일 수 없다. 휴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책방지기는 손수 소창손수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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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 나한송이 자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노란우산 2호점 탄생”
노란우산이 2호점을 열게 된 계기는 접근성 때문이다. 1호점인 서광리(안덕면)에서 시작할 땐 굳이 접근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그림책방은 ‘노란우산’이 처음이었다. 작가며 출판사 등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북 토크, 팬 사인회 등을 자주 하게 되었다. 뭍에서 온 글 작가들이 제주에 왔다가 북 토크를 해 주기도 했다. 이쯤 되자 접근성이 문제로 다가왔다. 멀어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마침 임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계약도 불투명한 상태다.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리며 2년 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염려와 달리 재계약이 이뤄졌고, ‘노란우산 2호점’도 태어났다.

노란우산의 책들은 단순한듯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길을 찾아주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한다. 지친 사람들에겐 에너지도 준다. 게다가 노란우산에서는 작가들의 전시회, 작가 초청 강연회, 독서 모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린다. 여행객들이며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서 그림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이 특별함에서 비롯된다. 

“추석 때 오신 부모님, 책으로 막힌 숨을 풀어”
추석이 코앞이다. 고향을 떠난 책방지기는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 책방지기는 기독교 집안이라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그래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명절 음식이 그립다. 하지만 주 손님이 관광객이다 보니 선뜻 책방을 닫을 수도 없다. 명절 때 오는 손님은 기회가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먼 길 오신 손님이 헛걸음하면 어쩌나.’ 신경 쓰인다. 그래서 명절 때도 부러 열어 놓는다. 그야말로 손님에게 성실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책방지기의 사정을 잘 아는 부모님은 명절 음식을 손수 만들어서 보내주신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직접 오신다.

책방을 열고 어느 해 추석, 부모님이 오셨다. 책방을 눈으로 본 부모님은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간호사를 하던 딸이 책방이라니, 뜬금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좋아하셨다. 

시대 탓도 있지만, 책방지기의 부모님은 공부를 많이 못 하셨다. 그래도 아버지께선 학교 도서관을 통째로 읽으셨을 만큼 책을 좋아하셨다. 만화와 그림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선, 딸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책방에 앉아 그림책 삼매경에 빠졌다. 

이진 씨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중이염을 심하게 앓고 난 뒤 난청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뒤돌아 있으면 가끔 못 듣는 경우가 있어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께서 그림책을 만나며 소통했다고나 할까. 추석날 어머니는 딸의 책방에서 돼지 이야기를 읽다가 울었다. 동물의 권리를 무시당한 채 사육되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였는지도 모른다, 난청으로 인한 소통 부족, 어머니는 딸의 책방에서 그림책으로 막힌 숨을 후련하게 푼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꼴 보기 싫은 모습만 닮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책방지기는 장점만 물려받았나 보다. 부모를 바라보는 책방지기의 가슴은 마치 선물 포장지를 뜯는 것처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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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커피에 따라온 손수건. 노란우산에서는 일절 티슈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인기 많은 간호사”
친구들이 기억하는 이진 씨는 백일장에 나가면 무조건 상을 받는,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뭔가 끄적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특히 시를 좋아해서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등 엉뚱한 아이였다. 그림도 좋지만, 텍스트가 있으면 이진 씨는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함축적이면서도 텍스트에 많은 걸 내포하는 그림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것, 공감 능력도 뛰어나지만 경험도 풍부하다는 뜻이다. 주입식에다 정답 찾는 훈련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 문제는 읽지 않고 정답 찾기에 급급한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 이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것, 그게 바로 그림책이 아닐까.

우연히 유튜브에서 서장훈‧이수근의 ‘무엇이든 물어 보살’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고등학생인 출연자는 성적이 뛰어났지만,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고민이었다. 출연자는 농구를 하다가 슛을 던질 때 친구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미안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일부러 부러뜨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와 이성으로만 교육을 받은 탓이었다.

책방지기 이진 씨의 원래 직업은 간호사, 남편은 카페를 운영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고민이 생겼다. 자연에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제주도의 시골로 왔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간호사로 나갈 수도 없었다. 다시 도시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카페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책방은 이진 씨 부모님처럼 뜬금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진 씨는 어떻게 해서 책방을 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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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 내부 중 일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실 이진 씨는 제주로 오면서도 책방은 생각하지 못했다. 카페와 함께 무엇을 할지 고민할 때, 이진 씨 성향을 잘 아는 지인이 서점은 어떻겠냐는 운을 띄웠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날마다 책을 만나고 소개도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진 씨는 가슴이 뛰었다. 문제는 ‘어떤 책방을 할 것인가?’였다. 이때 소리 없이 다가온 게 그림책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책방지기는 문‧이과 통합형이다. 17년 동안 응급실, 소아과, 중환자실, 특히 정신과에서 오래 일했다. 주관적일지도 모르지만, 정신과에서라면 특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방지기는 되레 정신과에서 근무할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이진 씨는 항상 뭔가를 배우며 환자들과 함께했다. 이런 간호사라면 환자들도 서로 찾았을 것이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선배들이 봤을 때도, 휴가조차 봉사활동에 다 쓸 정도로 이진 씨는 바쁜 애였다. 20대 때다. 대지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구조 활동으로 스리랑카에도 가고 파키스탄에도 갔다. 누가 봐도 이진 씨는 좀 이상한 아이였다.

슬픈 걸 보면 눈물 흘릴 수 있는 서정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다는 이진 씨.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림책과 시라고 이진 씨는 믿는다. 워크숍에 갔을 때 한시를 공부한다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15년 동안 하루 한 편씩 한시를 지었다고 했다. 한시를 지으려면 주변의 온갖 것들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시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공부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한테 서정과 여유, 보는 눈을 길러주고 싶다. 그래서 이진 씨는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기보다는, 잠들기 전 감미로운 목소리로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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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에 족자로 걸려 있는 ‘소창’ 설명서.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독서가 곧 성적이자 국력”
옛날과 달리 지금은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재가 탄생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성적향상에 독서보다는 사교육에 투자하는 부모가 많다는 뜻이다. 이는 독서와 학습을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식 교육이 있기 전, 우리 교육은 독서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구식 교육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여기서 문제는, 이용설명서가 없이 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식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준비 사이에 간극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지적능력과 시험성적은 관계가 없다는 관념이 생겨났다. 이 간극을 메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차츰 시험공부만 시켜주는 전문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험이나 독서에서 요구하는 지적능력은 따로일 수 없다. 이미 독서로 배경지식과 독해는 물론 이해 능력, 출제자의 의도까지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그런데 성적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골 책방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시골 구석구석에 자리한 책방들을 보면서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려 본다. 이런 환경이라면 독서인구가 늘어날 확률은 높아진다. 덩달아 주변 환경도 변화한다. 책방이 많아질수록 그 영향은 커진다. 고대사부터 흘러오는 역사를 봐도 국력은 독서다. 책방지기들의 역할이 더욱 크게 와 닿는 이유다. 유유상종이라고 할까. 책방지기 역시 책방을 운영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책과 함께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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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된 그림책 앞에 선 책방지기. 그림책을 닮은 미소가 그림책을 능가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진 씨가 고3 때, IMF가 들이닥쳤다. 이때 이진 씨는 ‘평생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간호학을 공부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재미없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증, 이진 씨의 갈증을 해갈시켜준 건 그림과 글쓰기였다. 물론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림책방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책방에 앉으면 이진 씨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책을 읽고 만지다 보면 책 속의 그림이며 텍스트가 몸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노라면, 몸속으로 기어든 그림과 텍스트가 다시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저도 모르게 치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서가며 책 표지, 제목만으로도 위로받는 자신이 그곳에 있다. 그럴 때마다 책방지기는 엄마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엄마들이 먼저 그림책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림책 모임에 지원자가 많은 이유다. 동네에 생긴 책방 하나가 엄마들을 변화시키고 아이들, 마을, 더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엄마들이 그림책 모임에 지원할 땐 아이한테 책을 골라주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추구하는 모임은 ‘엄마들이 그림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였다. 책방지기 이진 씨는 모임의 리더로서, 엄마들께 그림책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며, ‘왜 이런 수업을 했는지 이제 알겠다.’라며 엄마들이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 엄마들이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책을 고를 때도 아이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토론도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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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의 내부 중 일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손녀를 위해 책을 사는 할머니”
노란우산에는 단골 할머니가 한 분 계시다. 할머니는 서귀포에 있는 손녀를 위해 항상 그림책을 사러 오신다. 처음엔 책방지기가 골라줄 것을 원했지만, 지금은 직접 고르신다. 

할머니는 노란우산에 올 때마다 그림책으로 변화된 손녀의 모습을 들려주신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할머니의 손녀가 여느 아이들하고 다르다고 하신다. 할머니가 보는 손녀도 확실히 다르다. 야외에 가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손녀의 그림은 독창성이 뛰어나다. 할머니가 독서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할머니는 그림책으로 변화하는 손녀를 보며, ‘엄마들도 많이 알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나 같은 할머니 없을 거’라는 너스레까지 떤다. 모두 그림책이 주는 영향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손녀를 만나러 갈 때 책을 사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다. ‘우리 할머니는 책을 사다 주신다.’ 하면서 기다리는 손녀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점점 책의 전문가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본인이 읽을 책도 즐겨 사게 되었다. 이제 할머니는 책을 고를 때 책방지기의 도움이 필요 없다. 

“제주 테마 판매대”
책방지기가 바라보는 제주도는 창작 욕구를 가진 사람이 많은 곳이다. 게다가 창작도 잘한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제주 테마 판매대’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동시 캠프를 할 때, 다른 지역에서 동시 캠프를 하던 이안 시인이 같이 했다. 이 캠프에서 이안 시인은 ‘제주 아이들은 다르다.’고 말했다. 동시 전문지인 ‘동시마중’에 실을 만큼 수준도 뛰어나다고 했다. 이안 시인과 책방지기는 피드백을 나누면서 ‘뭐가 다를까?’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섬의 하늘과 육지의 하늘, 다름 아닌 자연이었다. 

책방지기 이진 씨는 나로호가 발사되었던 섬, 나로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열한 살에 부모님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부모님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진 씨는 타향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때 이진 씨는 엄청난 섬앓이를 해야 했다. 그 섬앓이는 치유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을 핑계 삼아 제주도로 왔다.

역시 제주는 하늘이 달랐다. ‘육지는 하늘도 답답하다.’는 말에서 섦앓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섬앓이는 누가 치료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진 씨 스스로 떠안아야 할 몫이었다. 그 결과 2020년 5월, 《엄마의 섬(이진 글, 한병호 그림, 보림 출판)》이란 예쁜 그림책을 낳았다. 이제 이진 씨에겐 제주의 하늘이 더더욱 맑아진 셈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 테마 판매대. 뒤로 책방 테마 여행 지도가 붙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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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씨가 섬앓이 치료 중 출판한 그림책 “엄마의 섬” 표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찌르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사람.” 
관광객과 도내 손님 비율은 7대 3. 그런데 이제 그 비율이 6대 4로 바뀌고 있다. 도내 손님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관광객이든 도내 손님이든 책 한 권은 사겠다는 목적으로 이곳에 올 것이다. 차 한 잔을 마시러 왔다가 살 수도 있다. 이때 책방지기는 느낌이란 전략을 이용한다. 찌르르, 자신의 몸에 전류가 흐를 때 책을 읽어드리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뒷모습으로 전류를 흘려보낼 뿐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봤던 기사가 떠오른다. 글을 쓴 사람은 주역을 공부했고, 나름 사람을 꿰뚫어 볼 줄 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교보문고 사장이야말로 사람을 꿰뚫는 귀신이라고 했다. 교보문고 사장이 주역을 공부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건 확실히 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힘은 결국 독서가 아닐까. 책방지기는 애써 책을 읽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가능한 추천도 하지 않는다. 직접 골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추천해주고 싶고, 읽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느낌인데, 희한하게도 거의 맞아떨어진다. 이쯤 되면 책방지기도 귀신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책방지기가 책을 읽어준다는 건 의미가 크다. 읽어주면 대부분 그 책을 사기 때문이다. 한번은 ** 출판사 대표가 책방지기에게 책을 편애하는 것 같다고 하더란다. 다른 책방과 달리 유난히 노란우산에서 잘 팔리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책방지기도 모르는 사실이다. 책방지기는 모든 책을 사랑한다. 그래도 자신만의 성향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중에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고 갖다 놓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처음엔 일부러 갖다 놓지 않았다. 다양성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책방지기는 식물도감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자녀들 책도 대부분 들꽃이야기다. 성향대로라면 책방은 온전히 자연학습 책방이 되었을 것이라며 입꼬리를 올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노란우산의 뒷문.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도서관이 아닙니다”
책은 책방지기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책을 함부로 다루면 아프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손님에게 ‘이곳은 서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린다. 책을 조심하게 다뤄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책을 만지다가 떨어뜨리는 경우엔 상품에 금이 간다. 상품의 가치가 사라지면 책방지기는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부탁이 기분 나쁘다고 휙, 가버리는 손님도 있다. 알다시피 이곳은 도서관이 아니다.

지난 5월 4일, 형님이랑 동백동산에 가던 날이다. 형님네 과수원에서 막 나왔는데, 길가에 보랏빛 컴프리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한 포기 얻고 싶다고 했더니 형님이 주인에게 허락을 얻어줬다. 이미 자리한 모습에 흠집 나면 어쩌나, 길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넣고 한 포기 뜯어냈다. 따끔, 아픈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손등이 퉁퉁 부어올랐다. 병원에 갔더니 뱀에 물린 게 아니냐고 했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 누가 돈을 주고 사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꽃도 어찌 보면 그 길에 조성된 하나의 상품이었다. 흠집이 염려되어 안쪽으로 캐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상품을 망가뜨린 셈이 되었다. 뱀에 물린 건지 벌에 쏘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왠지 벌을 받은 것만 같았다. 길가에 핀 꽃도 책방에 진열된 책도 흠집을 싫어하는 상품인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노란우산 뒤편 화단에 핀 가자니아.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소름으로 다가오는 감동”
책방지기 이진 씨는 **시 외고 학생들이 들렀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수학여행 마지막 코스로 온 학생들은 지쳐있었다. 학생들은 축 늘어진 어깨로, 제주도까지 와서 무슨 그림책방이냐고 불평을 쏟아냈다. 그런 학생들에게 책방지기는 과연 어떤 반전을 날렸을까?

이 학교 학생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재들이다. 그런데 돈으로, 즉 과외로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이들은 같은 선상에서 올라왔지만, 후자는 전자를 치고 나가는 게 힘들다. 저도 모르게 빈부격차를 떠올린다. 자연히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진다. 대학도 가기 전, 빈부격차란 사회의 모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방지기의 능력을 알았던 것일까? 선생님은 책방지기에게 아이들의 아픔을 미리 전화로 귀띔해 주었다. 이제 책방지기가 능력을 발휘할 때다. 책방지기는 “고래가 보고 싶거든”이란 그림책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 보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것을 고래에 대입시켜서 들어보라고 했다.

책방지기의 편안한 음성이 아이들의 가슴을 휘젓고 다녔다. 이내 여학생들의 훌쩍임, “화~! 화~!” 남학생들의 벅찬 리액션이 책방 안을 가득 메웠다. 책방지기가 책을 덮는 순간, “그림책이 이런 거였어? 선생님이 우리를 왜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이제 알겠어.” 다양한 반응이 술렁임과 함께 오갔다. 어떤 아이는 이 한 번의 경험으로 그 자리에서 꿈을 바꿨다고 했다. 책방지기는 흐뭇한 미소로 책방을 둘러보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책방은 나 몰라라 하고 아이들이 책방지기에게 몰려들었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것이다. 그때 책방지기 이진 씨는 ‘아! 스타가, 아이돌이 이런 거로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더란다.

책방지기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읽어만 줬다. 10분 안에 한 권을 다 읽어주고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맛이다. 그 후 책방지기는 학생들로부터 두툼한 편지까지 받았다. 이보다 더한 보람이 있을까.

“낭독은 동화구연이 아니다”
독자를 감동으로 몰아넣는 낭독이란 어떤 것일까? 경험에 따르면 마이크를 들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말하는 최고의 낭독은 그냥 편안한 목소리다. 기교도 없이 천천히 또박또박 읽는 것이 관건이다. 액션이 과하면 오히려 방해된다. 느낌을 살리려 하기보다 덤덤하고 편안하게 읽어줄 때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분위기 속으로 온전히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줄 땐 가능한 동화구연도 피해야 한다. 동화구연은 목소리도 여럿이어야 하고 생각보다 힘들다. 부담될 수밖에 없다. 편안해야 낭독자의 정서가 아이에게 전달되고 길게 간다. 물론 기교도 넣고 느낌도 살리며 읽어줘야 할 책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편안한 목소리로 읽어줄 때, 아이는 그 안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낭독자는 안내자에 불과하다. 분위기며 내용을 혼자 누리면 아이에게 남는 건 부담뿐이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누릴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것이다.

SNS 시대에 접어들며 종이책 독자도 많이 줄었다. 책방의 특성 때문일까, 다행히 책방지기에겐 그 사실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종이책은 오래 갈 거라는 믿음뿐이다. 당연하다. 책장을 넘기는 행위, 책 냄새와 같은 물성,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등 읽는 이의 특성까지 고루 누릴 수 있는 종이책의 맛을 무엇에 비긴단 말인가. 종이책은 영원할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노란우산 입구, 금방이라도 말을 건네올 것 같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테라스에서 지는 해를 바라볼 땐 꿈결인 양 아늑한 느낌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책에서부터 벽돌책까지, 책읽기에 있어서 책방지기에게 불가능은 없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은 결국 지역 환경, 더 나아가 모두를 변화시키는 모티프가 될 것이다.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눈 후 테라스에 섰다. 서쪽 하늘엔 자연이란 화가가 진경산수화를 펼쳐놓았다. 여우가 시집가는가, 마침 여우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 노란우산에서 책방지기의 뇌 안에 든 철학책 한 권을 읽고 왔다. 나만의 착각일까,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다.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은”
많이 아프신가요? 지금,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을 찾아가 보세요. 언제든 어디서든 손님을 반길 준비가 되어있는 책방지기, 그림책을 닮은 책방지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애월읍 하광로 515, 
영업시간 : 일요일 휴무, 아침 10시 ~ 저녁 7시.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cswon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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