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교육위, 학생인권조례 등 4건 심사보류...의회 "도교육청 직무유기" 화살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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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생인권조례가 결국 제주도의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23일 오후 2시 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심사 보류를 결정했다. ⓒ제주의소리

제주 학생들의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되는 '제주학생인권조례'가 도민사회의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결국 제주도의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미 지난 7월 한 차례 상정 보류된 이후, 또 다시 심사를 보류한 결과로, 도의회의 면피성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위원장 부공남)는 23일 상정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안'의 심사를 보류했다. 회의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됐지만, 정회를 거쳐 의원 간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교육위는 "여러 지역사회 단체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5000여명의 조례제정 반대에 서명을 하는 등 조례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며 심사 보류 사유를 설명했다.

특히 "교육위 의원들도 장시간 토론을 거쳤지만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에 조례개정 찬반 의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간담회 결의에 따라 조례안을 심사 보류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심사 보류 시기를 특정짓지는 않았지만, 교육위는 제주도교육청에 일정 기간을 두고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학생인권침해 사례, 교권침해 사례를 전수조사토록 주문했다. 이 자료가 갖춰진 이후 참고자료로 활용해 심의를 하겠다는 의미다.

함께 상정된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청원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등에 관한 조례안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전부개정조례안도 모두 심사가 보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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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제주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주문하며 심사를 보류했다. ⓒ제주의소리

이미 심사 과정에서부터 원활한 심사가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예견됐다. 의원들은 제주도교육청의 직무유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강시백 교육의원은 "조례가 이렇게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과연 도교육청은 뭘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제주도교육감의 공약사항에도 포함돼 있었다. 교육감 임기가 6년이 지나고 있는데도, 공약을 실천하지 않고 의회에 떠넘기는 꼴이 되어버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도민사회가 도교육청이 함께 고민해 제주 학생에 맞는 조례, 법률 제정, 각종 규칙 제정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대익 교육의원은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가 이렇게 첨예하게 싸우는 것 본 적이 있나. 세 주체가 하나의 마음이 될 때 교육이 잘되는거지 다 자기주장만 하고 있지 않나"라며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입장으로 싸움을 만드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집행부가 할 일을 가만히 기다리니까 참지 못한 의원이 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도교육청에 대해 상당히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김태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로 5곳의 광역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지만, 학생 청원에 의해 제정된 곳은 없다. 학생들이 2000건이 넘는 인권침해 사례를 갖고 왔는데, 도교육청은 아직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 도교육청이 나태하고 직무유기한 것"이라며 "어떤 정책도 100%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 가치 충돌이 일어날 때 가치충돌을 조정하는게 정치권과 행정의 역할"이라며 "적어도 교육감이나 부교육감이 반대단체 대표를 만나서 한번 대화라도 나눠봤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책했다.

김창식 교육의원도 "교육기본법의 교육당사자는 학생, 교원, 학부모, 교육행정기관 등이다. 교육당사자에 의원은 없다"고 전제하며 "도교육청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니 학생들이 나서는 것이다. 학생인권침해 사례가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 사례를 들으면서 설득하고 당위성을 제시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정민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인권조례 관련 찬반 대립이 이렇게까지 집요할 줄은 몰랐다. 학생들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반대하는 청원이 혹시 다른 시도에서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없더라"며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학생들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천부인권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번 기회에 교육청은 학생 인권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부공남 위원장은 "28년 교직생활과 제주도의원 6년을 지내며 교육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왔지만, 이 자리에서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자괴심을 갖고 있다. 학교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학교문화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겠다"며 "바로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과 모든 교직원 사이에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학교 문화를 조성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해서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교육당국에 주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역시, 지난 7월 학생인권조례를 상정 보류한데 이어 이번엔 심사를 보류하면서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도민사회의 분란만 일으킨 채 기약 없이 멈춰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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