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초점] 찬반 갈등 격화된 학생인권조례, 부담 표하던 교육위 결국 '책임 떠넘기기'

제주학생인권조례가 결국 제주도의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교육 3주체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원활하지 못한 심사는 예상됐지만, 도의회는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한 채 책임을 제주도교육청으로 떠넘겼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위원장 부공남)는 23일 상정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안'의 심사를 보류했다. 교육위는 "여러 지역사회 단체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5000여명의 조례제정 반대에 서명을 하는 등 조례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며 심사 보류 사유를 설명했다.

특히 "교육위 의원들도 장시간 토론을 거쳤지만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에 조례개정 찬반 의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간담회 결의에 따라 조례안을 심사 보류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심사 도중에도 도의회 정문 앞에는 찬반 세력이 동서로 나뉘어져 치열한 장외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주학생인권조례의 심의가 보류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청원' 역시 보류됐다. 

교육 3주체의 권리와 책무가 명시된 기존 조례를 전면 개정해 각각의 주체별로 권리 보호에 관한 3개의 조례로 나뉘며 발의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등에 관한 조례안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전부개정조례안 역시 의미를 잃게 돼 심의가 미뤄지게 됐다.

문제는 교육위가 모든 책임을 제주도교육청으로 떠넘기려 했다는 데 있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은 한 시간 가량 소요된 질의시간을 모두 교육당국을 질책하는 데 할애했다.

의원들은 교육당사자인 교육당국이 의회에 부담스런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진보교육감으로서의 기치를 내걸고, 한때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도 제시했던 이석문 교육감이 지난 6년 간의 임기 동안 직무를 유기해 논란이 불거졌다고 성토했다. 도교육청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학생들이 나섰고, 참다 못한 도의회가 조례를 제정하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언뜻 의원들의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도교육청의 직무유기가 곧 도의회의 책임 면피가 되지는 않는다. 조정자 내지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할 의회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형국이 된 셈이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사업·조례에 관한 제반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이다. 의원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듯 '도민을 대표해' 기능과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정감시권, 발의권 등 수 많은 권한이 부여됐다.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의회가 감당해야 할 대목이다. 다수의 자치단체 사업 추진과 제도 마련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 관리다. 도의회가 이미 예견돼 온 학생인권조례 찬반 갈등에 대해 어떤 조정과 관리의 역할을 해왔냐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과정을 되돌아봐도 학생인권조례는 제주도의회에서 시작됐다. 지난 3월 제주도내 학생들로 구성된 제주학생인권조례TF가 1002명의 서명을 모아 청원을 제출했고, 이를 받아들인 것은 도의회다. 정의당 고은실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공동발의자에는 전체 의원의 절반 이상인 22명의 의원들이 동참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조례 심의를 보류한다'는 도의회의 입장이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초 청원이 들어왔던 올해초, 또는 학생인권조례 본안을 입법예고하기 직전, 또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성급하게 상정을 보류했던 지난 7월이라도 갈등 조정 역할을 취했으면 될 일이었다. 

설령 조례 상에 논란을 야기하는 대목이 있다면 해당 문구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것도 도의회다. 여러모로 도의회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도의회의 결정은 누구에게도 개운치 않은 뒷끝을 남겼다.

제주학생인권조례TF로 활동하고 있는 한 학생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며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 학생은 "이번 결정은 마치 의회의 책임은 없는 척 하며 모든 책임을 교육청에 떠넘기고, 똑같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학생인권조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관계자는 "조례 제정이 중단된 것은 너무나 다행"이라면서도 "이후에 다시 상정된다면 다시 나와 절대 통과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도의회는 조례 심사 보류 시기를 특정짓지는 않았지만, 도교육청에 일정 기간을 두고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학생인권침해 사례, 교권침해 사례를 전수조사토록 주문했다. 이 자료가 갖춰진 이후 참고자료로 활용해 심의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추후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누가 바라고 원한 결과인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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