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는 그 순간부터 힘든 여정은 예정돼 있었다
길을 내는 그 순간부터 힘든 여정은 예정돼 있었다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news@jejusori.net)
  • 승인 2020.10.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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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3)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태풍 피해로 길 형체가 사라진 7코스 돔베낭골-속골 바당올레.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이제는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간다

“서서히 세력을 키우면서 서귀포 동쪽 400킬로미터...” 태풍 바비가 한반도를 향해서, 그것도 내가 살고 있고 제주올레 사무국이 소재한 서귀포를 가까이 지나간다는 소식이 TV 뉴스, 라디오 방송 등 각종 매체로 시시각각 속보로 전해졌다. 내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지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역대급이다, 매미와 볼라벤 때 못지않은 위력이다, 제주 해역을 지날 무렵 ‘최강’인 상태에서 30도 이상 뜨거운 바다를 지나면서 더 세력을 키울 것이라는 해설까지 곁들여져서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올 한해가 시작되면서 제주올레 첫 번째 탐사대장을 떠나보내고 코로나로 상반기 내내 맘을 졸이면서 지냈는데 역대급 태풍이라니. 엎친 데 덮친 격이 이런 건가 싶었다.

# 태풍 불면 설레이던 초딩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어린 시절 내게 태풍은 오히려 즐거운 유희, 반가운 손님, 재미난 행사 같은 존재였다. 태풍 예보가 떨어지면 항상 상인들과 손님들로 바글거리던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삽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새해 첫날에만 가게 문을 닫았던 우리 가게도 강제로 휴업에 들어갔다. 거의 매번 집안의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촛불을 켜놓고 풍로(석유나 전기 따위를 이용하는 취사용 도구)에 라면을 끓여먹곤 했다. 시끄러운 시장통 생활에 넌더리가 났던 나는 태풍 전야가 선사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은근히 반가웠다. 태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면 우리집 근처 기정(높은 절벽) 위에 서서 새섬을 삼키면서 몰려드는 파도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학교 앞 ‘우리 문방구’로 몰려가서 가게 문이 부서지면서 쏟아져나온 크레파스와 연필 스케치북을 득템하는 행운(지금 생각하면 범죄행위였지만)을 누리기도 했다. 태풍에 대비해서 가게의 모든 물건을 포장을 씌워 고무줄로 단단히 묶는 수고로운 노동을 해야 하고 장사를 못해서 손해를 보는 부모와 이웃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없는 계집아이였다.

하지만 30여 년의 서울살이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올레길을 내기 시작한 내게 태풍은 180도 다른 존재가 되었다. 되도록 바닷길을 내고 아스팔트 구간은 피해서 길을 낸다는 원칙을 세운 건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이 최대한 많이,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산티아고 길을 한 달 넘게 걸으면서 같은 거리를 걸어도 아스팔트 구간에서는 훨씬 힘들었던 내 경험을 적용한, 올레꾼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올레길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건, 길을 내고 다듬기 위해 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탐사팀과 자원봉사자분들의 노력 덕분이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그런 원칙과 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태풍은 크든 작든 해마다 올레길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내면서 지나갔다. 바닷가일수록 해일의 영향을 받아 피해가 더 컸고 아스팔트 구간보다는 탐사팀들이 정성을 다해 손으로 길을 낸 구간을 더 매섭게 할퀴고 지나가곤 했다. 탐사팀이 호환 마마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장마철이다. 고운 다습한 제주에 긴 장마가 닥치면 돌아서기가 무섭게 풀들이 자라난다. 가족 묘소 한두 군데 벌초하는 것도 힘들어서 가족끼리도 갈등이 생기곤 하는데, 하물며 제주 전역을 잇는 425km의 길에 흩어져 있는 풀길을 예초하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지는 예초를 해본 사람들만이 안다. 우리 사무국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예초 지원을 한해 한 번씩 하는데, 예초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탐사대에 대한 존경심이 급상승하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무너진 둔덕을 다듬고 있는 제주올레 탐사팀.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참으로 원망스럽게도 탐사팀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땀범벅이 되어 습기와 싸워가면서 5~6차례의 예초를 하고 나면, 뒤이어 찾아드는 괴물 같은 존재가 태풍이다. 예초가 풀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라면, 태풍은 바닷길을 고집한 것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그 대가를 가장 혹독하게 치른 건 2012년 제주를 강타한 볼라벤 때였다. 그 길을 걸어본 올레꾼들은 기억하리라. 7코스의 명품 구간이었던 돔베낭 해안길을. 외돌개에서 돔베낭 데크 산책로를 쭉 따라서 걷다가 해안으로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그 마법의 공간. 속골까지 이어진 그 바닷길은 서귀포여고 쪽으로 올라가는 지루한 아스팔트 구간을 피하기 위해, 탐사팀이 한여름에 한 달 넘게 그야말로 온갖 노가다 끝에 만들어낸 길이었다. 공사 현장에 격려차 들렀던 나는 그 큰 바윗돌을 그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도르래와 자기 힘만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흡사 로마제국의 병사들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 구간을 걸은 올레꾼들은 탄성과 환호, 다양한 사진과 감사를 통해 그들의 노고에 열렬히 응답했고 탐사팀의 수고는 충분히 보상받는 듯했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해안길 한복판으로 파도에 떠밀려 온 바위를 옮기기 위해 밧줄로 당기는 그들의 노력 덕분에 제주를 길 위에서 놀멍, 쉬멍 만나볼 수 있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그러나 태풍 볼라벤의 손길은 거칠고도 잔인했다. 볼라벤이 지나가고 난 뒤, 그 길을 찾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도 선연히 기억한다. 화살표를 몸에 품었던 큰 암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엉뚱한 자리에 떨어져 있고, 길 표식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뒹굴던 전쟁터 같았던 그 장면을. 그 전해도 태풍 피해로 인해 복구했던 이 구간을 두 번째 잃고 나서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기로 했다.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져 길이 막힌 13코스 숲길.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 그래도 이만하기를 다행이다, 감사하다

그런 뼈아픈 경험과 치명적인 트라우마 탓에 그 뒤로는 태풍 예보만 들리기 시작하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증세가 생겨났는데, 이번에는 역대급 3위 안에 드는 태풍이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코로나 시기에 역대급 태풍까지 맞으면 정말이지 길을 낸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풍 전날, 혼자 리무진버스를 타고 중문 관광단지에 내려서 하얏트 호텔에서부터 역올레를 시작했다. 얼마나 심할지 미리 감지해보기 위해서였다. 아, 중문해수욕장으로 밀려드는 파도의 위력은 심상치 않았다. 파도에 휩쓸릴까봐 위쪽 사구언덕으로 급히 몸을 피신해야 할 만큼 파도는 거칠고 움직임은 빨랐다. 강정포구까지 걷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라디오와 TV 뉴스에 귀와 눈을 집중했다. 간간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파트 앞 야자수와 담팔수 나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관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빗줄기는 거세졌다. 

밤새 지켜보다가 까무룩하게 잠에 빠져들면서도 눈 뜨곤 나면 태풍이 거짓말처럼 물러나 있기를 기도했는데, 일어나서 급히 베란다로 나가 문을 여니 몸을 바로 세우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더 세지고 빗줄기가 거세졌다. 불안이 더 고조되었다. 이날 오후 네 시가 다 되도록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바깥은 나가보지 못한지라, 피해가 어느 만큼일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막판에 조금은 비껴갔다는 보도가 나오고, 인명 피해가 없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다음날 현장인 바닷가 코스를 차량을 이용하면서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마음을 졸이고 애태운 것과는 달리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이파리가 떨어지고 하는 소소한 피해 외로는 큰 피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주 그 다음주에도 연이어 2-3개의 태풍이 예보되어 있으니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바닷가로 길을 내고, 그 길을 유지하는 꿈이 이토록 가슴 졸이는 업보가 될 줄은 처음 시작할 때는 미처 몰랐다. 이제 그 길을 낸 지 어언 13년째. 이제는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간다. 그 길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는 올레꾼들 성원이 있기에 꼬닥꼬닥 이 길을 걸어간다.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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