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4)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제공=정혜경 씨.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정혜경 씨는 코로나19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할 시기,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올레길 완주에 나섰다. 사진=정혜경 씨. 제공=(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여자 중사와 두 아이의 완주기 

이상하게도, 아니 이상한 게 아니라 그게 정상인지도 모르지만, 첫 편지에도 언급했듯이 올레 완주자들은 코로나19 이후 다달이 늘어난다. 단체 관광객이나 시찰단 회의나 행사 참석자들이 올레길을 찾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지만 대신 개인이 올레길을 찾는 일도 많아졌고 완주자도 1,399명으로 작년 대비 대략 70% 정도로 증가했다. 

제주올레 사무국에 있는 시간보다 길 위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기에, 완주자들을 다 만나기는 힘들다. 어쩌다 나도, 완주자들도 그 시간에 인연이 되어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동시에 있는 날에만 만나게 된다. 첫 번째 편지를 쓰게 만든 ‘시누이와 올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완주’ 주인공분들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어느 날, 며칠 만에 모처럼 센터에 들렀더니 안은주 상임이사가 내게 핸드폰을 열어서 사진 두세 장을 보여주었다. 최근 센터를 찾은 완주자 가족을 그녀도 그 시간대에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1층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어린 남매를 데리고 완주한 여성. 이사장이 취재해보면 로드 다큐에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아서 사진도 찍고 전화번호도 받아두었단다. 사진을 보니 흡사 모델과 같은 엄마, 아이들의 표정도 참으로 귀여웠다. 갑자기 취재 본능이 발동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아깝지만, 전화나 이메일로 만나봐야겠다, 생각했다.

”엄마의 현명한 ‘당근과 또 당근’ 전략“

제공=정혜경 씨.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혜경 씨는 씩씩한 두 아이를 데리고 ‘당근과 당근’ 전략을 구사하며 길 위를 부지런히 걸었다. 사진=정혜경 씨. 제공=(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그녀에게 긴 카톡을 보냈다. 올레길을 낸 그 사람이라고 자수를 하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걷게 된 동기와 사연 그리고 느낀 점과 변화한 점을 듣고 싶으니 사연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가능하다면 우선 카톡으로 내가 묻는 사항에 대한 답변을 보내주면, 보충 질문을 하겠노라고 했다. 곧 답장이 왔고 아이들과 놀이터 가는 참이라서 이따 저녁에 보내겠다더니, 웬걸 오후 서너 시에 길고 긴 답장을 보내왔다. 기대 이상, 상상 이상, 감동 가득한 답장이었다. (이제부터 두어 차례에 걸친 그녀와의 문답 내용을 간접으로, 혹은 직접 인용하기로 한다.)

제공=정혜경 씨.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혜경 씨의 아홉 살 난 아들과 여섯 살 딸은 올레길을 절반쯤 돌고 나자 완주 결심을 하고 더 힘을 냈단다. 사진=정혜경 씨. 제공=(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아들, 딸 세 살 터울로 낳고 키우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중 코로나 19라는 복병을 만났더란다. 아이들은 유치원도, 학교도 못 가고 집안에서 갑갑해 하고 대책이 없기에 육아 휴직을 내고 두 아이를 데리고 평소 ‘버킷 리스트’였던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러 내려왔더란다. 그곳 한 달 살이 숙소에서 제주올레 길을 소개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그렇게나 긴 트레일인 줄은 몰랐단다. 미리 알았더라면 여섯 살 아이를 두고 차마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라고. 그렇다! 때로는 무식하면 용감해질 수 있고, 모르는 게 약(藥)일 수도 있다! 너무 많은 자료와 정보를 구하고 검색하다가 지레 지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녀는 올레길에는 다소 무지했지만 자녀들을 길로 이끄는 데에는 최대한 현명한 전략을 구사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걷는 데에는 경험도 없고 심지어 싫어하는 두 아이에게 만보기로 측정해서 5천 보를 걸을 때마다 천 원씩 쥐여주면서 아이들의 의욕을 고취시켰다. 나중에는 ‘클린올레’라는 올레길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선 아이들에게 쓰레기봉투를 채우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당근과 채찍이 아닌, 당근과 당근 전략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열흘쯤 지나면서 거의 완전히 적응하기 시작했고, 아침 다섯 시에 깨우면 눈을 비비면서 ”엄마, 오늘은 몇 킬로 걷는 거야?“ 라고 당연한 듯 묻곤 했다. 절반쯤 돌고 나자 기왕 한 김에 다 완주하자는 결심을 한 아이들은 더 힘을 내기에 이르렀단다.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제공=정혜경 씨. 사진=(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바당 올레를 걷다 찍은 가족사진. 씩씩한 표정의 아들과 수줍게 브이를 그려내는 딸, 행복한 어머니의 모습은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하늘처럼 맑아 보인다. 그들의 올레길 완주 대장정은 32일에 걸쳐 마무리됐다. 사진=정혜경 씨. 제공=(사)제주올레. ⓒ제주의소리

그들의 대장정은 모두 32일이 걸렸단다. 그렇다면 그사이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 어떤 감정들이 일어나고 오고 간 것일까 궁금했다. 서른여섯 엄마와 아홉 살 아들, 여섯 살 딸에게. 

엄마 정혜경 씨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들이 되었다는 거죠. 비바람, 태풍, 안개 같은 여러 기후를 맛봐서인지 올레길 완주 이후 육지로 온 뒤로는 비가 내리는데도 밖으로 나가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축구도 하고. 참 신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은 ‘와랑와랑한 제주 햇살’ 아래 길을 걷는 동안에 바다와 숲길을 정말 사랑하고 거기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단다. 티셔츠가 다 젖을 만큼 땀에 흠뻑 젖어서 걷다가 바다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좋아라 뛰어들었고, 중간에 나무 그늘에 숨어 들을 수 있는 곶자왈 구간이나 바닷가 숲 터널 구간을 만나면 절로 고마워하고 즐거워했더란다. 

그녀가 보내온 글 마지막 부분은 너무나도 감동적인지라 직접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올레길은 ‘비움과 채움의 시간’이었어요. 저에게 잔뜩 채워져 있는 수많은 잡생각, 근심, 걱정들을 비워내고 신이 선물하신 자연을 맘껏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느끼면서 자연 그대로를 내 안에 채우면서, 그동안 늘 곁에 있었던 것에 대한 소중함, 감사함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답니다. 제주올레 길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리야말로 애써 찾아내고 연결해서 정성껏 관리하는 길을 그토록 제대로 ‘비우고 채우는’ 추억과 학습의 공간으로 활용해 준 정혜경씨 가족들과 같은 훌륭한 올레꾼들이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고 그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때로는 불편하기도, 때로는 힘들기도 한 이 길을.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