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코로나19 시대 맞이하는 추석 / 김효철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며칠 후면 코로나 시대에 맞는 첫 추석이다.

추석은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큰 명절이고 고향 방문은 의무처럼 됐다. 추석 민족대이동은 산업화가 낳은 현상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로 농어촌지역에 살던 많은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큰 도시로 떠나 노동자로 살았다. 쉴 틈 없이 일하던 어린 노동자들에게는 떠나온 고향을 갈 수 있는 추석은 꿈에 그리던 날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각인효과는 머무는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을 고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민족대이동이란 말은 점차 사라질 듯하다.

지금은 떠나온 고향보다 살고 있는 곳이 더 고향이 돼버린 사람들에게 추석이 예전 같지 않다. 벌써 오래전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정착한 이들에게 고향은 찾아볼 부모가 없는 곳이 됐고 수도권에서 낳고 자란 후세들에게는 부모 고향이 더 이상 내 고향은 아니다. 

여기에다 코로나19까지 더했으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향을 찾는 사람은 크게 줄 것이다.

지금은 민족대이동이라 불릴 만큼 추석은 고향을 찾는 행사처럼 됐으나 본래 추석 모습은 달랐다. 추석에 대한 여러 유래설이 있으나 농경시대 추수를 앞두고 날씨도 선선하니 좋고 달도 밝은 날 마을 공동체가 함께하던 행사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산업화 사회로 바뀌고 난 후 추석은 일자리를 찾아 멀리 떠났던 가족과 이웃들이 오랜만에 만나 정을 나누는 의미가 커졌다.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시대 처음으로 맞는 추석이 다가왔다. 올 추석엔 모두가 함께 달을 바라보며 함께 풀어야 할 숙제와 맞닥뜨릴 미래를 이야기해보자. ⓒ제주의소리

하지만 안타깝게도 산업화시대에 맞는 추석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추석 만남을 앞두고 반갑고 좋은 만남으로 관계 맺기를 기대하나 현실은 모든 만남이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있듯이 여러 사람에게 추석은 종종 갈등과 고통을 남긴다.

피를 나눈 혈육이지만 이미 사는 곳과 삶이 다른지 오래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말을 하고자 하나 공유할 일도 나눌 이야기도 부족하다. 직장, 결혼, 공부, 아이 이야기가 떠오르나 그 또한 추석 스트레스를 부르는 원인이라 금기어 아닌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자칫 섣부른 질문과 대답은 상처만 안고 돌아가게 한다. 더욱이 정치 이야기에 이념논쟁까지 더하면 명절 밥상머리 말다툼이 종종 큰 싸움까지 번지는 일도 심심찮게 보는 시대다.

코로나19를 무릅쓰고 만난 올해 추석 밥상에서도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나 친지 사이에 상처를 주는 대화는 오갈 것이다. 더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각종 온라인 매체가 등장하며 진위확인조차 없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가짜 뉴스나 스스로 믿어 버린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밥상머리 논쟁은 더 치열할 것이다.

며칠 전 아는 사람이 만든 모바일 메신저에서 글 하나를 받았다.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이 쓴 ‘나는 대한민국이 아프다’라는 제목 글인데 아마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보내온 듯하다. 내용이 당혹스럽다.

‘까놓고 말해서 친일이 어때서?’라는 친일세력 고백 같은 문장부터 ‘그때는 그때대로 적군이라면 독립군이라 해도 때려잡는 게 군인 본분이지요. 일본군이든 독립군이든 그게 군인다운 겁니다.’라는 내용도 있다. 지난 광복절 행사 때 원희룡 지사 발언도 다시 떠올랐다.

설마 이 글이 대한민국 대학 총장이던 분이 쓴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처음 글을 찾아보니 한 인터넷 신문사 논설위원이 쓴 글이다. 글쓴이부터 잘못된 가짜 정보다. 의도한 것이든, 몰랐던 것이든 여러 사람이 지금도 최 총장이 쓴 글이라며 여기저기 퍼 나르고 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강제로 주입되는 정보는 시나브로 의식속에 스며든다.

올 추석에도 밥상머리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정당과 단체, 개인들이 내놓는 공격 거리 뉴스들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대체로 논쟁은 ‘토착 왜구’, ‘수구 꼴통’과 ‘친북 주사파’, ‘토착 빨갱이’가 서로 싸우는 형국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공산화됐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생각이 신념이 된 이들은 그것이 가짜이든 진짜이든 서로에게 믿기를 강요할 것이다.

그러니 많은 이들에게 추석은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시대도 흐르고 사회도 바뀌고 있다.

자칫 반갑게 만난 가족과 이웃이 정을 나누며 관계를 다져나갈 기회마저 빼앗아가는 철 지난 논쟁이 안타깝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전환시대를 준비할 때다.

우리 삶과 사회는 다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정작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든 인류 삶을 통째로 앗아갈 수 있는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랜데 어쩐 일인지 관심과 논쟁에서는 늘 후 순위다. 이미 지구 기온은 100년 사이 1도 이상 올랐으며 세계 곳곳은 가뭄과 폭우, 태풍, 산불과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도 인류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이 분명한데 방역은 외치나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은 찾기 힘들다.

봄철 이상기온과 사상 최장 장마에 이은 잇단 태풍으로 농사짓기가 힘들어졌는데 비싼 과일값만 탓할 수는 없다.

정부는 그린뉴딜을 말하지만, 여전히 규제 완화와 소비 차원에서 경제 활성화를 얘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 전환, 지역농업 활성화, 환경보호 정책 등을 통한 탄소 배출 감소와 사회경제 생태계 전환을 위한 논의도 필요하다.

코로나19는 경제 양극화를 더해 중소상인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중소상인과 노동자를 비롯한 경제 약자를 위한 안전망 마련, 불로소득에 대한 엄격한 과세, 공정 사회를 위한 목소리도 내야 한다.

마스크를 낀 채 하루 종일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화면 속 얼굴을 마주한 채 온라인으로 배워야 하는 교육현장도 숙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후 학력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공교육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사교육 영향에 놓이고 부모 경제력이 성적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함께 뛰놀며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채 성적순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가 점점 다가온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이 모두가 진보와 보수를 넘어 우리 공동체가 맞닥뜨릴 미래이자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가로등도 없던 시절 추석날 밤에 뜨던 달은 마을을 밝히고 아이들은 달빛 아래 뛰어놀았다. 세상 온갖 빛에 가리나 여전히 추석 보름달은 넉넉하다. 올 추석은 모두가 함께 달을 바라보며 미래를 이야기해보자. / 김효철 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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