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0. 명절밥이 달지 않겠다

* 맹질밥이 :명절밥이
* 아니 호(ᄒᆞ)키여 : 않겠다

아마 다른 지방에 이런 속담은 없으리라. 명절밥이 달지 않겠다니, 말 그대로 명절날 먹는 밥인데 이 무슨 소리인가.
  
화산토라 푸석푸석 척박한 농토에 농사지어 태풍과 폭우가 두세 번 휩쓸기라도 하는 날에는 장에 가 팔아 가용(돈) 장만하기는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던 게 농촌의 실정이었다. 입을 것 제대로 입고 다리 쭉 펴고 잠이나 실컷 자면서 살았는가. 닭(ᄃᆞᆰ)도 울기 전 동새벽에 깨어나 서숙밥 한두 술 뜨는 둥 마는 둥 잰걸음으로 먼 밭에 나가 종일 땡볕 아래 밭 갈고 거름 주고 검질(김)을 매어야 했다. 

한 해 농사라는 게 그나마 하늘이 도와야 해 먹지 가을 들어 추수기에 큰비로 물난리라도 나는 날에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사 허망하게 되고 만다. 농부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 해 농사를 망쳤으니 손에 들어오는 돈은 없지, 추석 명절을 쇠어야지 말로 얘기할 형편이 아니다. 나날이 뛰어오르는 장바구니 물가가 아니냐. 부르는 게 금으로 물가가 오르니 바삭바삭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굴려 본들 무슨 소용이랴.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일 년 삼백 예순 날 밭에만 살며 일에만 매달려 이 농사 잘돼야 명절을 해 먹는다고 두 손 모아 빌어왔는데, 이 지경이니 ‘명절 밥이 돌(ᄃᆞᆯ)지 아니 호(ᄒᆞ)키여’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참 애간장 다 타들어 가는 장탄식이 아닐 수 없다. 3,4월 보릿고개는 그렇다 하고 명절날 거둬들인 햇곡식으로 떡 짓고 밥해 조상 전에 올려 추원보본(追遠報本, 조상의 덕을 추모해 제사 지내고,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 하려 했더니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가슴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은 왜 아니겠는가.

몸져누웠던 식솔이 일어나 걸음을 내딛는가 했더니, 무뚱(툇마루)를 내리다 그만 낙상해 한쪽 다리가 부러지질 않았는가 말이다. 꼼짝 못하게 된 건 그렇다 치고 통증이 가시질 않아 신음을 해대니, 이런 일이 세상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아방 어멍(아버지 어머니) 입에서 한숨과 함께 새어 나오느니, “아이고, 맹질밥이 ᄃᆞᆯ지 아니 ᄒᆞ키여”다.

그런다고 험한 일, 흉사(凶事)만 있겠는가. 집 막내아들이 서울 고시촌에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한 지 일 년, 며칠 전, 7급 행정직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하며 목메어 울었지 않는가. 얼마나 기뻤으며 전화하다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을까. 그 아이, 명절날 집에 오면 가문의 영광으로 사방에서 칭찬이 자자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집안 사람 모두 날개를 다는 일이라, 집안의 대경사요 살판이 난 것이다. ‘맹질밥이 돌(ᄃᆞᆯ)지 아니 호(ᄒᆞ)키여’가 아니라, 바야흐로 “맹질밥이 돌(ᄃᆞᆯ)키여”로 바뀌었다.

‘맹지옷은 육촐꼬(ᄁᆞ)지 따습나’고 했다. 맹지옷은 비단옷으로 옛날 벼슬아치는 뜻한다. 집안에 벼슬하는 이가 있으면 그 이름만으로도 흐뭇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일희일비(一喜一悲)다. 고르지 못한 것이 세상사다. 요변에 비록 맹질밥이 돌(ᄃᆞᆯ)지 아니 호(ᄒᆞ)더라도, 내년에는 맹질밥이 돌(ᄃᆞᆯ)도록 다시 부지런히 일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우리 제주 선인들 체념하거나 낙담해 주저앉지 않았다. 절망에 허우적거리다가도 날이 밝으면 다 씻어 버리고 지친 몸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밭으로 나갔다. ‘맹질날 오줌 허벅 지고 밭으로 내닫는’ 여인이 나올 지경이다. 

제주인들에게는 타고난 디엔에이가 있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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