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부터 장례까지 코로나19 시대가 바꾼 제주의 관혼상제
혼례부터 장례까지 코로나19 시대가 바꾼 제주의 관혼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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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유교사상과 민속신앙이 더해진 독특한 문화...일상 된 비대면 ‘기대와 우려’ 교차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

1798년 8월14일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 일가의 일기 ‘하와일록’과 1582년 2월15일 경북 예천군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의 ‘초간일기’에 적힌 글이다.

약 54만점의 민간 기록유산을 보유한 한국학진흥원이 추석연휴를 앞두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를 공개하면서 500년 후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선을 끌었다.

조선시대조차 역병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후손들에게 알려지면서 유교사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제주도의 관혼상제도 조명 받고 있다.

섬의 특성상 제주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예로부터 독특한 혼례와 장례 문화가 만들어졌다. 가족과 사돈을 넘어 궨당(친척)과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만남과 교류가 그 중심에 있다.

1960년대 제주의 결혼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60년대 제주의 결혼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혼례의 경우 혼인 전후 각종 잔치 문화가 등장한다. 돼지 잡는 날을 시작으로 가문잔치와 결혼식, 신부집 잔치, 신랑집 잔치 등 장장 3~5일에 걸쳐 갖은 잔치가 한바탕 벌어진다.

이중 가문잔치는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혼사를 논의하는 자리다. 친지와 하객들에게 음식을 접대하는데 결혼 당일보다 손님이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3일 잔치는 전날 잔치나 당일 잔치로 간소화됐지만 여전히 피로연이라는 이름으로 종일 잔치는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신랑과 부신부라는 도우미들도 생겨났다.

다른 지역은 식이 끝나면 식권을 나눠준 후 식을 대부분 마무리한다. 반면 제주는 피로연이 등장한다. 당일 잔치를 하더라도 밤늦게까지 음식과 술을 나눠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주만의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예식문화지만 정착민이 늘고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를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보다 합리적인 결혼문화를 요구하는 세대의 목소리도 점차 늘고 있다.

1980년대 제주의 결혼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80년대 제주의 결혼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2018년 11월 발표한 ‘제주지역 결혼문화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9%(중복 선택)가 ‘실속 있는 결혼식’을 가장 선호하는 결혼 방식이라고 답했다.

‘당사자 주도 결혼식’을 선택한 신혼부부도 84.8%에 달했다. 이어 ‘2∼3시간 이내의 피로연’(69.1%), ‘100인 미만 소규모 결혼식’(65.3%)이 뒤를 이었다.

장례 문화도 짧게는 사흘에 걸쳐 이어졌다. 혼례와 마찬가지로 궨당과 마을 공동체가 어우러진다. 유교 문화에 민속신앙이 더해지면서 다른 지역과 달리 팥죽이 등장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관을 만드는 날 사돈집에서 쑤어 온 팥죽을 먹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례를 앞두고 잡귀를 쫓는 의식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후에는 성복제를 지내고 입관을 한다. 발인 전날에는 일포제를 지내고 문상객을 받는다. 발인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계를 만들어 상여를 들고 봉분을 쌓는 일에도 함께 했다.

일포 역시 온종일 이어진다. 상주는 수육과 순대, 떡 등을 준비하고 문상객들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겹부조도 등장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가 따로따로 부조금을 주고받는다.

1990년대 제주의 장례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90년대 제주의 장례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90년대 들어 매장 대신 화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현재는 묘에 산담까지 쌓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상당수는 화장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봉분 없이 평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묘가 줄면서 벌초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음력 팔월 초하루를 전후해 조상의 묘를 찾아 봉분의 풀을 베어내고 산담 주변을 깨끗이 가꾸는 벌초 인구도 점차 줄고 있다.

문중 전체가 참여하는 모둠벌초는 더욱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수십여 명이 항렬순으로 줄지어 제를 올리는 모습은 조상을 기리고 가문의 세력도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이 일상화 되면서 잔치도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야 하는 씁쓸한 시대가 됐다. 결혼식과 장례식도 간소화 되면서 관혼상제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제주의 관혼상제도 바뀌었다. 현실과 소통하며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들 가족과 마을, 공동체와 함께해 왔다.

코로나19로 또 다른 격변의 시대가 찾아왔지만 조상을 섬기는 후손들의 마음과 혼례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지키려는 노력만큼은 한결 같기를 기대해 본다. 

1960년대 제주의 장례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60년대 제주의 장례식 풍경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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