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추석특집 인터뷰] 전통혼례로 부부 연 맺은 아민·하민경 씨...“부모 형제 생각” 눈물 글썽

흩어졌던 친지와 가족들이 모여 조상님께 정성껏 차례를 지내고 모처럼 떠들썩하게 보내는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뚜렷이 형성되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이지만 공항이며 시장이며 곳곳 풍경이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다. 

그러나 잠시 주변을 돌아보라. 명절이면 고향의 가족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이들이 있다. 그리우면 찾아가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게 명절은 마냥 즐거운 시간은 아니다. 

자국의 내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에 떠나온 예멘 난민들. 그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민족명절 추석을 어떻게 맞고 있을까? 

추석 명절을 맞아 [제주의소리]가 제주시 삼도2동서 중동·할랄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민(37, 예멘)·하민경(40, 한국) 씨 부부를 만나봤다. 신랑은 예멘 난민으로, 신부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봉사자로 만나 아름다운 백년가약의 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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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삼도이동 '아살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민(왼쪽), 하민경 씨 부부.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예멘에서 온 아민 씨는 민경 씨를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내전 중인 고향에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민경 씨는 그런 그를 곁에서 늘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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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중동·할랄 음식점 '아살람' 레스토랑. 식당 이름인 아살람은 아랍어로 '평화'를 뜻한다. ⓒ제주의소리

“(가족들이) 예멘에서 건강히 잘 기다리고 있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 평화가 찾아온다면 제주로 초청해 제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예멘에서 나와 사우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거쳐 고향 가족들을 먹여 살린 난민 아민 씨.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절망의 끝에서 겨우 잡은 동아줄은 평화의 섬 제주였다.

2018년 말레이시아에서 제주로 입도해 지난해 하민경 씨와 결혼하며 도민이 된 아민 씨는 민경 씨와 함께 제주시 삼도이동 ‘아살람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아민 씨와 민경 씨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건 2018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내전을 피해 제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국악과 한국무용을 전공한 민경 씨는 이 일이 있기 전부터 100㎡ 남짓의 지하연습실을 예멘 난민들에게 숙소로 제공했다.

지하연습실을 다녀간 예멘 난민들만 해도 300여 명이 넘을 정도로 그들은 민경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굶주림에 지쳐 음식을 얻기 위해서나 의사소통이 안 돼 사소한 감기약조차 살 수 없을 때, 목적지를 한글로 적어달라는 등 사소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2018년 5월 갑작스런 대규모 난민 신청 소식이 들려오자 제주 사회는 온갖 괴소문이 떠돌며 난민을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그들에게 민경 씨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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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살람 레스토랑에서는 예멘 난민들이 만드는 장신구를 판매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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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나디아'는 손재주가 좋아 가방을 직접 뜨기도 한다고 했다. ⓒ제주의소리

따가운 시선에 예멘 난민들은 나라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과 더불어 움츠려진 몸을 더 낮춰야만 했던 것.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배회한다는 소문은 그들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Koran)’에 따르면 알코올은 금지 음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아살람’ 역시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민경 씨는 “지하연습실에 머물렀던 예멘 친구들은 대부분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갔다. 자신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거나 겨우 밤에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깐의 푸념조차 그들에겐 사치였다. 전쟁을 피해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며 “도민들이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들 역시 이해하고 더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민경 씨는 한국사회가 무슬림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접하는 무슬림 소식은 무장세력이 일을 저질렀다는 언론 보도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마주한 그들은 똑같은 사람이었단다.

그렇게 예멘 난민들을 살피던 민경 씨는 ‘와르다’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아랍어로 꽃이라는 의미다.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으니 “그전 보도에서는 꽃이라는 의미가 엄청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됐지만 사실 부르기 편한 이름이라 붙여 준 것이다. 제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었던 것”이라고 숨겨진 사실(?)을 밝히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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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 씨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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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아민 씨의 바람대로 부부는 제주향교에서 2019년에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제주의소리

민경 씨는 예멘인들을 돕다가 할랄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차려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고 제주 최초 중동·할랄 음식점을 열었다. 남편 아민 씨는 셰프를 구하는 과정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게 된 것이다.

무슬림인 아민 씨와 천주교 신자인 민경 씨 부부는 지난해 결혼 당시 제주향교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한국식으로 치르겠다는 아민 씨의 의지 덕분이다. 

아민 씨는 제주에 들어오기 전까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 셰프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관광 온 손님들이 식당에 방문하면 종종 알아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가 탄탄한 말레이 식당을 그만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차별’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머물 때 여권을 안 갖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돈을 빼앗아갔어요. 목숨 내놓고 살아가는 예멘인들이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용한 거죠. 심지어 어느 레스토랑은 1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서도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식당 바닥에서 재우기도 했어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경 씨는 말레이 방문 당시 부부가 여권이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다가도 예멘인인 아민 씨에게만 벌금을 부과해 돈을 받아갔다고 말을 보탰다.

아민 씨는 “결국 문제가 생기거나 비자를 취득하지 못하게 되면 예멘인들은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원치 않는 내전에 휘말려 목숨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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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 씨가 직접 그린 예멘 수도 '올드 사나'. 계속된 전쟁으로 지금은 많이 파괴됐다고 한다. 사나의 옛 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빼어난 경관과 아랍 고유의 문화를 지니고 있기로 유명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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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살람 레스토랑 안에 마련한 무슬림 기도실.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제주의소리

한국의 긴 명절 연휴를 앞두고 고향 생각이 나진 않냐는 물음에 “예멘에도 한국의 추석과 같은 명절이 2개 있다. 하나는 1990년 예멘 통일을 기념하는 휴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교에서 행해지는 ‘라마단’이 끝남을 축하하는 ‘이드(Eid)’다”라고 했다. 

이드(Eid)는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단식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라마단(Ramadan)’이 끝남을 축하하는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의 준말이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 날부터 추석과 비슷하게 3일간 음식을 즐기며 정을 나누는 종교적 명절이다.

아민 씨는 “한국의 추석이 3일간 이뤄지는 이드 알피트르와 비슷하다 보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아직 내전이 벌어지는 예멘에는 가족들이 머물러 있는데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조카들이 생각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부부는 예멘 난민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덜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할랄 음식을 맘 편히 먹을 수 있게끔 돕기 위해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 안에는 자유롭게 오가면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실도 마련했다. 식당을 이용하지 않아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뒀다.

가게 영업시간 역시 다른 식당에서 일하거나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넉넉하게 운영 중이다. 일이 늦게 끝나는 예멘인들에게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부의 목표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당장 시간을 조정할 생각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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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밖에는 식당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기도하고 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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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제주의 돌하르방이 많은 것을 나타낸다. 서로를 배척하기 보다 포용하며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부부는 보여준다. ⓒ제주의소리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민경 씨는 “제주도를 사랑하고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많다. 난민 인정 기준이 조금은 완화됐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민 씨는 “예멘에 가족과 친구를 두고서 떠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금만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일자리나 돈을 뺏기 위해 한국 제주에 넘어온 게 아니라 전쟁을 강요받고 목숨을 내놔야 하는 처지를 살펴달라”면서 “도민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다른 문화와 피부색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년 하고도 4개월여가 흐른 지금 예멘 난민으로 인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은 누구보다 한국, 그리고 제주에 녹아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사무치는 고향을 생각할 그들이 이번 추석에는 평화의 섬 제주에서 한국의 정이 담긴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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