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1. 새 며느리는 물 길어다 쓰는 거 보면 안다

* 메노리 : 며느리
* 물 질어당 : 물 길어다(가)
* 보민 : 보면

옛날 제주도에서나 있었던, 아마 가장 ‘제주적’이 이야기일 것이다.

제주에는 물이 귀했다. 물을 찾아 산촌에 살다 해변, 바닷가로 내려왔지만 물이 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물을 동네 사람들이 팠지만 물이 풍족하지 못했다. 장마가 긴 해에는 여름 한 철(우기) 우물에 물이 가득 찰 때도 있었지만. 비가 적으면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우물 바닥에서 물이 촐촐촐 약하게 솟아나면서 조금씩 고이기를 기다려, 그 물을 작은 사발로 떠 허벅(찰흙으로 구워서 만든 물을 나르던 사기 그릇)에 따라 가득 채웠다.

그러고 나서 허벅을 집까지 나르고, 정지(부엌)에 있는 커다란 물항아리에 붓는 일을 해야 한다. 우물이 동네에 있으면 다행인데, 5리쯤 떨어져 있으면 그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식구들의 타는 목을 축일 뿐 아니라, 물이 있어야 밥을 한다.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여성들이 먼 데서 물허벅을 지어 나르고 항아리에 부어 담는 고된 일에 시달리가가, 남자들이 등에 지는 물지게가 등장했다.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허벅이 작지 않은데다, 가득 물을 길어 놓으연 상당히 무거웠다. 그걸 구덕(대 등으로 역어 짠 큰 바구니)에 놓아 등짐으로 지어 날라야 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상황이 아니다. 물 가득 채워진 물허벅을 물항아리에다 부어야 한다. 허벅을 등에 진 채로 몸을 왼쪽으로 잔뜩 기울여 허벅의 주둥이가 항아리 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도록 잘 맞춰야 한다.

까딱 잘못해 물허벅이 등에서 빠져나오는 날엔 그게 깨져 물난리가 나고 마는 것이다. 그냥 실수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낭패다.

바로 이 대목이다.

시집오기 전에 물 길어 허벅에 붓는 요령을 충분히 습득했어야 하는 것인데…. 물허벅으로 항아리에 물을 담는 것 하나만 봐도 며느리가 살림을 잘할 것인지 못한 것인지 자질을 능히 알아 볼 수 있었다 함이다.

그러니까 새 며느리, 태어날 때부터 살림을 잘할 수 있는 자질도 있어야 하지만, 어릴 때 가사를 돌보지 않고 빈둥대며 헛되게 보냈다는 것이니, 그런 생활 태도로 살림을 해나가기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요즘 말로 시집살이 첫 고비에 찍히고 만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제주여성들이 먼 데서 물허벅을 지어 나르고 항아리에 부어 담는 고된 일에 시달리가가, 남자들이 등에 지는 물지게가 등장했다. 남자들이 어렵지 않게 날랐고, 나르는 물의 양도 허벅에 비교가 안되게 많았다. 

물지게 다음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먹는 물을 콸콸 쏟아냈다. 제주여성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다가왔다.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산업화였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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