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76. 옌롄커, 《침묵과 한숨》, 김태성 옮김, 글항아리, 2020.

출처=알라딘.

1.
중국을 떠올릴 때마다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중국은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세계 동서문화 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몫을 담당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옛 소련 중심으로 양극화된 냉전체제 질서에 균열을 내면서 중국식 사회주의(수정 자본주의)를 표방하더니, 현재 이른바 G2국가로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군사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강국을 실현시키기 위한 중국몽(中國夢)으로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야심차게 기획하여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 중국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분명 서구중심주의와 다른 주목할 만한 실천을 함의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 안될 것은 중국의 이러한 실천들 사이에 자리한 억압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은 현재 급부상하는 중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마다 ‘뭔가 이것은 아닌데’, 하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쉬이 떨쳐내기 힘들도록 한다. 에돌아갈 필요 없이, 내 생생한 경험에 비추자면, 중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게 가장 적확한 실체일 터이다. 그것은 중국사회와 정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바, 중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정직하게 파헤치는 진실한 말과 글을 표현하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만큼 중국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그래서 중국 작가 옌롄커의 《침묵과 한숨》은 내게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한국에서 출간되었다고 하지만, 옌롄커는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중국의 민낯을 신랄히 비판함으로써 자칫 정치적 억압과 박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보는 것은 깊은 밤 숲속의 어둠과 공포”(23쪽)임을 응시하면서, 그의 삶과 글쓰기 활동에서 겪은 중국 문학의 문제점들을 매우 예각적으로 그리고 웅숭깊은 비판적 성찰을 수행한다. 

우선, 옌롄커의 《침묵과 한숨》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주목해보자.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전개된 중국의 역사에서 국가주도로 기억이 선택되더니, 중국의 아픈 상처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든지 아예 망각하기를 강요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을 빌리면, “국가적 기억상실의 역사적 공정”(44쪽)을 밟고 있으며, 중국문학은 이에 대해 속수무책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그는 “중국인들이 기억상실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민족의 기억이다. 그런 다음 현실 속에서의 모든 사실과 진상을 잃”(47쪽)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그는 서슴없이 중국의 어두운 면과 이것에 자의반타의반 공모한 중국문학에 대한 냉철한 자기고발을 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제 지적은 중국과 중국문학(문화) 전반에 대한 현재적 비판으로 중층적 문제를 적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왜곡과 변형, 불규칙, 새로운 상태의 기형기에 처해 있어 돈과 시장, 권력, 신매체인 인터넷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는 다른 중국의 위대한 ‘신중국 문학’과 문학 속의 ‘중국식 인류’의 창조와 생산이 전대미문의 유혹 및 압박을 형성하고 있다. (67쪽)

표면상, 위 지적은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것과 무관한 듯 보인다. 위 지적은 중국과 중국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한국문학의 문제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중국도 그렇듯이 한국도 인터넷을 비롯하여 첨단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과 대중에 미친 파급력으로 인해 종래 문학의 위상과 역할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스마트폰의 위력은 사회 전 분야에 퍼져나가고 있는바, 각종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흘러넘치는 미디어 시장에서 종래 종이책 문학의 문화적 권능이 추락해가고 있다. 여기에다 종이책 문학을 대신하는 전자북 형태의 문학콘텐츠마저 급부상하면서, 옌롄커의 말처럼 ‘신중국 문학’과 흡사한 ‘신한국 문학’이 출현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서, 옌롄커의 위 언급을 음미해보면, 중국사회의 언론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 부재는 첨단 미디어의 시장 권력 속에서 표피적 감각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데 자족하는 독자층을 위한 문학이 양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현재 중국문학은 중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과 반성이 허락되지 않는 그래서 중국이 국가적으로 온힘을 쏟고 있는 ‘대국굴기’에 적극 동참하는 문학을 권장하고 그러한 문학을 제도적으로 보증하는 문화예술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한 문학이 자본주의 시장 권력에 투항한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하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중국의 현실에 대해 옌롄커는 “오늘날 중국에서 ‘즐겁게 죽는 것’은 허용되지만 현실을 마음대로 사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129쪽)는 뼈아픈 발언을 내뱉는다. 

3.
그렇다면,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가 이렇게 비판하고 있는 중국 내부에서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상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책 《침묵과 한숨》은 중국에서 출간되지 않았고, 대만에서 2014년에 첫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인데, 30여 년 전만 해도 이 정도의 비판 수위가 높은 책이 중국 밖에서 출간될 경우 투옥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해외 출판이 허용되고 포용되고 있다.”(156쪽)는 사실에 대해, 작가는 중국 정부의 “포용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싶은 것이다!”고 하여, 뼈가 있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옌롄커의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이 문장의 이면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그의 진실을 더듬어본다. 해외 출간을 허용하는 중국 정부의 포용은, 뒤집어 생각하면, 설령 그 해외 출간에 대한 소식이 중국 인민에게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그 소식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적 억압장치를 완비하고 있으므로 걱정이 전혀 안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중국 정부의 언론과 사유의 통제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옌롄커는 중국의 이러한 엄혹한 현실 아래 자신의 글쓰기를 ‘신실주의(神實主義)’로 수행한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의 가장 밝은 햇빛 속의 음지와 가장 밝은 빛 속의 어둠을”(23쪽)을 대면하면서, “표면적인 논리관계를 포기하고 존재하지 않는 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찾는 소설 미학을 지칭”(23쪽)한다고 그가 직접 밝히고 있다. 옌롄커도 매섭게 비판하듯, 중국문학이 서구미학에 붙잡힌 채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형상화하고 있지 않은 채 현실정치에 매몰된 글쓰기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그만의 저항적 글쓰기를 정립하고 있다. 사실, 옌롄커의 비판적 성찰은 그와 중국문학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한국문학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고, 그 도정은 한국 민주주의 성취와 맞물려 있는 만큼 이런 점에서는 중국문학보다 진전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서구미학의 전횡으로부터 여전히 종속돼 있는 점, 그리고 정치적 상상력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점,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예각적이고 웅숭깊은 문학을 향한 활력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점 등속은 옌롄커의 중국문학 비판과 그 문제의식이 포개진다. 

4.
끝으로, 《침묵과 한숨》에서 우리가 곱씹어야 할 정치와 문학/글쓰기의 관계에 대한 옌롄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문학이 현실, 즉 권력과 정치가 완전히 스며들어 있는 현실 생활에 관심을 가질 때, 작가들은 좀더 높은 차원에 서 있어야 하고, 작가들의 글쓰기가 현실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고 높아야 하는 것이다. 작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는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생활적(정치 생활이 아님)이어야 하고 생활 정치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치와 정치에 푹 젖어 있는 생활보다 더 크고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247쪽)

21세기, 어쩌면 코로나와 함께 해야 할 한국문학에 절실한 것은 ‘정치 생활’이 아니라 ‘생활 정치’를 하는 글쓰기여야 하고, 그것은 “좀더 높은 차원에서” 그러면서 “글쓰기에 거대한 비천함”(61쪽)이 있는 이 모순의 진실을 겸허히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