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주도, 2년간 미적…‘7년 논의’ 결실 맺어야

공짜가 묘미는 있을지언정 자칫 감흥을 잃을 수 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겪어봐서 안다. 

경험에 의하면, 공짜표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영화도 그렇고, 공연도 그렇다. 졸음을 쫓으려는 사투의 강도도 달라진다. ‘덤’이라는 내 안의 인식이 마음가짐을 흐트려놓았을 수 있다. 

제 값을 치르는 게 당연지사가 된 요즘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느덧 지금은 공짜를 바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제 값’에는 관객을 위해 애쓴 이들에 대한 예의가 내포되어 있다. 즐기는 입장에서 보면 응당 내야 할 비용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얹혀가는 여행은 현지 속살을 들여다보기 힘들다. 여정을 허투루 보내기 십상이다. 

제주도가 도입을 추진해온 환경보전기여금(가칭) 얘기를 하려다가 그만 서설이 길어졌다. 

우선 오해부터 경계하고 넘어가야겠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공짜 여행을 즐긴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과다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 오염 유발의 책임을 나눠 지자는 것이다.  

제주도가 구상하는 환경보전기여금은 관광객에게 생활폐기물·하수 배출, 대기오염, 교통 혼잡 등에 따른 비용을 ‘분담’케 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오염 원인자 부담인 셈이다. 이미 2017~2018년에 한국지방재정학회를 통해 연구 용역까지 벌였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기여금은 숙박, 렌터카, 전세버스 이용요금에 부과된다. 평균 징수 금액이 1인당 8170원으로 예상됐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환경 개선, 자연환경 및 생태계 보전·복원, 환경부문 공공일자리 창출 등에 쓰이도록 설계됐다.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그만큼 제주는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았었다. 환경적으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이은 코로나 19 사태로 잠시 주춤했지만, 또 언제 관광객이 밀려들지 모른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 여행 패턴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말이다.

“청정 자연을 지키는 일은 제주의 가치를 키우는 일입니다…(중략)…제주의 깨끗한 이미지가 훼손되면 도민들은 삶의 기반을 잃게되고 제주를 찾는 이들도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중략)…상·하수도, 쓰레기, 축산폐수를 비롯한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확실한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환경보전기여금은 원희룡 지사도 2018년 11월15일, 시정연설을 통해 제도화 근거 마련을 공언한 바 있다. 또한 ‘동북아 환경수도 조성’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도 있다.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는 여야 모든 후보가 공약할 정도로 지역사회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주변에서도 반대 의견을 접하기 어렵다.  

환경보전기여금은 환경총량제와 더불어 관광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쌍두마차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진척이 없다. 멀게는 도입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2013년, 가깝게는 2018년 11월 토론회 이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거창한 약속이 구두선에 그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급했듯이, 환경보전기여금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용을 분담하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도민들은 이미 오염 유발 비용을 일정부분 떠안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전면 시행된 차고지증명제, 역시 진통 끝에 올해 첫 부과 예정인 교통유발부담금제가 그 사례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관광세를 부과하고 있거나, 도입을 추진중인 나라가 여럿 된다고 한다.  

제주도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부 관광업계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엿보인다. 미적댔던 이유가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업계의 반대 때문이라면 그동안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2년 전 나온 연구 결과를 바이블처럼 받들라는 것도 아니다. 

업계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제주 관광의 질적 전환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관광업을 한 두 해 하고 말게 아닐진대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제도 도입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제주도의 복안은 제주특별법을 고쳐 제주 만의 특례조항을 담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앙부처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어쩌면 이보다 근본적인 과제가 있다. 관광객에게 그만한 메리트를 부여해야 한다. 여행객들이 기여금을 내고도 만족감을 가지려면 더 쾌적하고, 청정한 환경을 조성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원 지사의 말이 옳았다. 청정 자연을 지키는 일은 제주의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오늘 12일, 드디어 기여금 제도 도입에 따른 도민설명회가 열린다고 하니 이번에는 총의가 모아질지 주목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