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눈물바다로 만든 김두황 할아버지 재심개시 결정에 함박웃음...4.3 첫 일반재판 재심개시

제주4.3사건 재심 청구인이 김두황 할아버지가 8일 오전 10시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을 듣고 환한 모습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제주4.3사건 재심 청구인이 김두황 할아버지가 8일 오전 10시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을 듣고 환한 모습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70년 넘게 가슴에 파묻혀 있던 한이 풀리는 것 같아. 오늘 기분이 참 좋네”

예순이 넘은 자식들에게도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을 법정에서 쏟아내면서 오열해 법정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던 김두황(93) 할아버지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2019년 11월 재심 청구에 나선 김 할아버지는 꼬박 11개월인 8일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을 통보 받았다. 제주4.3사건 관련 일반재판의 재심개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할아버지는 재판부의 결정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70여년 전 기억을 쏟아냈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마을 내 실력단체인 민보단의 서무 계원으로 활동하던 1948년 11월 중순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갔다.

현장에서는 남로당에 가입했냐는 일방적인 질문과 폭행, 폭언, 허위 자백 강요가 이어졌다. 경찰은 총까지 겨누며 협박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하지도 않은 일은 인정할 수 없다”며 맞섰다.

보름 뒤 김 할아버지는 제주시로 다시 끌려갔다. 정식재판 절차 없이 죄명과 형량도 모른 채 고깃배에 실려 목포형무소로 향했다.

판결문에는 김 할아버지가 1948년 9월25일 오후 8시45분 난산리 김두홍씨의 집에서 김관삼씨 등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들에게 식량 제공을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4.3사건 재심 청구인이 김두황 할아버지(오른쪽)가 8일 오전 10시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 직후 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 첫번째는 재심재시 결정을 앞두고 올해 2월 고인이 된 생존수형인 故 송석진(1926년생) 할아버지의 장남이자 재심청구인 송창기(74)씨.
제주4.3사건 재심 청구인이 김두황 할아버지(오른쪽)가 8일 오전 10시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 직후 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 첫번째는 재심재시 결정을 앞두고 올해 2월 고인이 된 생존수형인 故 송석진(1926년생) 할아버지의 장남이자 재심청구인 송창기(74)씨.

1948년 9월28일 오후 9시에는 집으로 찾아온 2명에게 좁쌀을 제공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할아버지가 폭도들을 지원하며 국가를 위협했다는 내용은 사실상 날조된 공소사실이었다.

형기가 2개월 감형돼 1950년 2월 출소했지만 자신의 죄명과 선고 일자는 지난 70년간 모르고 지내왔다. 연좌제에 시달리며 과거를 잊으려 했지만 생전에 명예회복(재심)을 결심했다.

“안했다고 해도 때렸어. 장작으로 죽도록 얻어맞고 두 번이나 기절했지. 물을 얼굴에 뿌리고 또 때리는 거야. 안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잖아. 오늘 그 한을 푼 것 같아. 너무 좋아”

현장에는 재심재시 결정을 앞두고 올해 2월 고인이 된 생존수형인 故 송석진(1926년생) 할아버지의 장남이자 재심청구인 송창기(74)씨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아버지에게 4.3 얘기를 들었다. 자신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자식들이 직장에서 진급을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영전을 찾아 오늘 소식을 전해드리겠다”

2차 생존수형인 재심청구인 8명 중 故 송석진(1926년생) 할아버지와 故 변연옥(1929년생) 할머니는 심문 도중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고령의 생존자 6명은 재심 청구인이 된 고인의 자손 2명과 함께 비로소 정식 재판을 받게 된다. 생존수형인과 별도로 행방불명수형인에 대한 재심개시 여부도 조만간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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