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6) 이제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돼야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10년 전 충남 당진의 한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용광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용광로가 허술한 난간 사이로 떨어지는 동료를 삼켜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동료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행방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며칠이 지난 후, 용광로가 식고 나서야 바스러지기 직전의 뼈 가루 몇 점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 사고에 대한 기사에 당시 한 네티즌이 위 내용의 댓글을 달았고 단신으로 처리되곤 했던 노동자의 죽음에 대하여 온라인상의 추모의 물결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온라인 상에는 ‘그 쇳물 쓰지마라’ 노래 챌린지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가수 하림이 10년 전에 쓰인 위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어 ‘그 쇳물 챌린지’를 제안했다. 챌린지 참여 방식은 노래를 부른 뒤 동영상을 본인의 SNS계정에 올리는 것이다. 현재는 동료 가수들을 비롯하여 노동 재해 당사자, 노동 재해 사망 유족을 넘어 정치인까지 확산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을 해시태그로 달아 법안의 도입을 통해 재해 사망을 줄이자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다. 사고 발생 후 10년이 지났고 지난 10년간 정부 통계로 잡힌 인원만 1만9140명이 산업 재해로 사망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의 죽음과 알려지지 않은 죽음까지 합하면 한해 2400명이 넘는다. 하루 6~7명 꼴 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을 통해 사업주 스스로 노동자의 안전 예방책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은 매 국회마다 제안되었지만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것이 사람들이 10년 전 청년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추모하고 행동하는 이유가 되었다. 

노동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나의 가족,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 노동재해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국회의원이나 정부에서 상정한 것이 아닌 국민 10만 명이 개별적으로 전자서명방식의 동의를 통해 상정된 ‘국민 동의 청원’ 방식으로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의소리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청원동의 사진. ⓒ제주의소리

먼저 제출된 법안의 명칭은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차이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공중 이용 시설이나 공중 교통 수단을 운영하는 기업에도 적용되며 적용 대상은 소속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설 이용객 등 일반 시민에 까지 적용된다. 사용자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 및 보건 의무를 위반하여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소속 노동자뿐만 아니라 하청 노동자 및 그 이용객에게 발생한 재해에 대하여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즉, 바꾸어 말하면 일하는 노동자나 이용객 등 일반 시민에게 중대 재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기업이 기본적인 의무를 다할 것을 강조하는 법안이다. 또한 인·허가와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공무원에게도 그 의무를 부과했다.

지난 2018년에 삼다수 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하여 당시 제주개발공사 사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고가 발생한 기계가 노후하여 자주 멈춰 섰고 이에 대해 지적도 받았지만 이를 묵인하고 생산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검찰은 무혐의 이유 중 하나로 ‘유사한 산업 재해를 고려했다’고 했다. 그동안 중대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일정 규모이상의 기업에서는 경영 책임자가 직접 책임을 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꼬리 자르기식의 처벌만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사고는 반복되었다. 

제출된 법안에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하지 않아 사람이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을 도입했다. 음주운전은 ‘살인 행위’라는 사회적인 인식 하에 도입된 윤창호법과 비교해보면 쉽다.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케 하는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음주운전이 개인의 과실이 아닌 살인 행위인 것처럼, 기업이 안전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노동자 사망 사고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고,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죽음이다. 

지난 9월 24일 제주에서 새로운 단체가 출범했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 안전과 현장 실습생과 청소년의 노동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노동 안전과 현장 실습 정상화를 위한 제주네트워크(노현넷)’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 단체는 2017년 현장 실습 중 사망한 故이민호 학생을 추모하며 창립되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남은 자들의 추모와 행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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