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57) 홍시 / 윤현자

반쯤 남은 가을. ⓒ김연미
반쯤 남은 가을. ⓒ김연미

반쯤 남은 
가을이
노을 끝에 달랑 걸려

남은 반쪽
더 
빨갛게
물이 드는 저물녘

가만히
올려다보는
볼도 붉게 젖습니다.

-윤현자, <홍시> 전문-

며칠 동안 참 분주하게도 살았다. 해야 할 일들은 꿈속까지 따라와 나의 정신을 흔들어 깨우고, 나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서 몽롱한 채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나의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저녁. 

자신이 외면된 시간동안에도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시집에서 <홍시>를 읽는다. 동동거리던 시간 동안 흔들렸던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상처입고 상처 입히던 언어의 가시들도 천천히 풍경을 읊는 시어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그 뾰족함을 거둔다.  

평범한 풍경, 평범한 시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요즘. 평범하게 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시 한 편을 읽으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이 저녁, ‘반쯤 남은’ 가을이 내 옆에 와 앉았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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