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법
팬데믹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OOK世通, 제주 읽기] 177. 슬라보예 지젝, 강우성 역, ‘팬데믹 패닉’, 북하우스, 2020.
슬라보예 지젝, 강우성 역, ‘팬데믹 패닉’, 북하우스, 2020. 출처=알라딘.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시대의 스타 철학자이다. 라깡 정신분석학과 헤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해석한다. 대중문화와 친화력 있는 철학자라 비평가들의 비평가로 군림한지 오래다.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인지신경과학이 주류 과학이 된지 오래인 현대 심리학의 시대에 그의 이론이 낡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 그리고 때로는 그의 장황한 궤변이나 과장된 주장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그의 빼어난 솜씨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피로사회》로 이름을 널리 알린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지적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고백하는 지젝의 저술 작업은, 성과 사회가 빚어낸 자기 착취의 한 사례가 될 만큼, 부지런하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가 아닌가. 한시도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지젝은 어떻게 지낼까? 1949년생이니, 그 역시 노인이다. 다시 말해, 워낙 정력적인 비평가이자 달변가라는 이미지가 있어 독자들에게서 고령의 나이를 잊게 했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다는 말씀.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으로 표시하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서 이제는 정확한 페이지조차 찾기 힘들지만, 책 어디선가 읽었던 대목, 그러니까 지젝의 자녀들이 그의 외출을 걱정하는 대목이 특유의 화려한 사변과 이론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젝의 책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다른 저작들에 비해 이 책이 마음에 든다. 먼저, 이 책은 진솔한 정서를 은근히 드러내기에 그렇다. 팬데믹 시대에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우울감과 절망, 희망과 낙관을 그 또한 자주 교차해가면서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최근에 쓴 기고문들을 엮어 낸 책이라서 그런지 이 책은 지젝의 다른 본격적인 저작들에 비해 (어쩌면 가장?) 쉬운 편이다. 팬데믹의 현실들이야 철학 책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실에 새겨진 것들이니 어려울 것 없다. 이미 체험한, 그리고 여전히 체험하고 있는 팬데믹 패닉(!) 아니던가.

역자는 해설에서 이 책을 한 마디로 ‘바이러스의 정치학’으로 요약한다. 《팬데믹 패닉》은 지젝 색깔이 분명한, 독자적인 관점이나 이론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그만큼 공감하기엔 더욱 쉬웠다. 이 책 또한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보여준 반응과 성찰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를테면, 지젝 역시 생태학적 관점에서 팬데믹 위기를 성찰하자는 데 목소리를 더한다. 그 또한 취약한 계층, 심지어 “삶이 너무도 궁핍한 나머지 바이러스가 중요한 걱정거리가 못 되는 사람들”(182쪽)에 관해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터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트럼프 류의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자가 격리가 가능하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가 격리를 할 집이라고 할 만한 거처가 없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안전하게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에 필수적으로 근무지에서 자리를 지키거나 일자리조차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 법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지만, 그 고통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지젝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공산주의의 형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거듭 시사하고 난 뒤 알랭 바디우와 한병철과 다른 많은 인물들에게,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두루 비판받았고 심지어 조롱당하기도 했다.”(121쪽)고 고백한다. “이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방도가 ‘공산주의’의 형태라고 했다가 여러 군데서 비웃음을 샀다”(115쪽)지만, 그는 그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국방물자조달법’을 꺼내들거나 기본소득 도입을 고려하는 트럼프가 그의 옹호 논리를 위해 등장한다. 

아마도 공산주의라는 카드(레드카드?)를 쉽게 꺼내든 그의 호언장담처럼 자본주의가 바이러스에 쉬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적어도 한국의 상황에서는 국가 차원의 공적 자원 분배와 동원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상상력’이 필요할 만큼, 기존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명해야 한다. 또한, 지금의 팬데믹을 성찰하는 데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단순히 중국 인민의 활달한 식문화를 점검해보는 기사보다는 훨씬 의미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잠재적으로) 병원체가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메커니즘, 산업화된 농업, 전 지구적 경제의 급속한 발전, 문화적 관습들, 국제적 소통의 폭발적 증가 등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감염병은 자연적, 경제적, 문화적 과정들이 복잡다단하게 서로 묶여 있는 하나의 혼합체다.” (142쪽)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팬데믹의 현실은 바이러스에 관한 생물학적 사건이거나 의학적 사태만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지구 행성의 주인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인류를 뒤흔든 사건의 배후를 캐기 위해서는 ‘행성의 규모로’ 우리의 사유가 확장되어야 할 터. 

지젝이 인용한 브뤼노 라투르의 말처럼, 지금은 최종 예행연습일 뿐이다. 앞으로 더 큰 위기, 더 잦은 위기, 즉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적 위기를 맞아 우리의 생존조건을 재설정하는 것일 뿐이다. ‘행성의 윤리’가 실천되지 않으면 다음 번 사태는 절멸(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은 이 단어를 허풍과 엄살이 심한 문학도처럼 비유나 과장의 수사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로 마무리될 것이다. 인류는 지구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가 되어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우리가 바이러스에 최초로 보인 반응은 곧 깨어날 악몽으로 치부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며, 바이러스의 세계에서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통스럽게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43~144쪽)

지젝의 말처럼, 우리가 팬데믹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이 꿈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이 꿈 깨기야말로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길이다. 행성의 윤리, 그리고 연대와 협력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나가는 일이 우리 손에 달렸다.

▷ 노대원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