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봄, 3월 초 새 학년이 개학 하는 날, 키 작은 훌륭한 교장선생님이 바람 많은 모슬포 학교 운동장 조회 훈화(訓話) 시간이다. 오래전 추억이지만 말씀의 줄거리만 기억하는 것은 말씀이 주는 신선한 화두(話頭)가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2시 방향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이지요. 한라산(漢拏山)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저는 아침에는 부처로 보이고 10시부터 햇빛을 받기 시작하면 한라산은 큰 우의를 입은 장군으로 보이고 오후에는 강의하기 위해 칠판 옆에선 교수님의 옆모습으로 보입니다. 여러분도 어느 분야에서든지 한라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여러분이  50-60년 지난 후 이 운동장에 와서 다시 한 번 ‘한라’를 보십시오. 한라산(漢拏山)이 한라(漢拏)로 보일 것 입니다.“

‘한라(漢拏)’ 같은 사람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퍼뜩 60년 세월이 지났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 꿈과 희망을 주는 한라산.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 꿈과 희망을 주는 한라산.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세월이 나이는 흘러 70대 말, 그 때 꼬마들은 할아버지가 됐다.

백발에 접어든 친구들이 몇이 교정에 모였다. 모슬포 읍내 출신의 공부 잘하는 친구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 일류 약품회사 사장을 지냈다. 한 학년 밑에 요망진 김 군은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육사(陸士)를 나와 제주에서 처음으로 별 넷 4성(星) 장군(將軍)이 됐다.

웃드르 광챙이에서 모슬포를 두 시간 걸어 학교를 다녔던 고 군은 전남대(全南大) 의대를 나와 인천서 산부인과 병원장을, 돌부리에 채이면서 같이 걸었던 나는 동경대(東京大)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大學敎授)가 됐다.

높은 한라산은 60년 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다. 각자의 작은 오름 하나씩 오른 것에 불과한 짧은 인생. 73세의 나훈아는 <테스형> 노래를 부르는데, 세계적인 노벨상을 받는다면 한라형(兄)이라 부를 수 있을까.

11월엔 한라진산(鎭山)을 오르면서 한라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한라(漢拏)처럼 높은 하늘 위 은하(銀河)를 붙잡으려는 기개(氣槪)로 살라’는 말씀인 것을.

교장선생님 말씀에 눈시울이 뜨겁다.

#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으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RMIT대학, 독일 뮌헨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기술부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 공학부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에 선정됐다.

현재 감귤과 커피나무 유전자 DNA 결합을 후성유전자 현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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