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한라산 자연·문화 자원 미래세대 전달될 수 있도록 정책 펼쳐야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비정기적으로 싣습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라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민족의 영역 범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한라산은 ‘제주!’하면 떠오르는 제주이미지 상징 1위이자, 가장 대표적 제주문화상징이다. 한라산은 제주사람들에게 정복하기 위한 산이라기보다는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고픈 영원한 모성이며 그리운 고향이다.

한라산은 제주민간신앙의 본향당신 할로산또(한라산신)의 발상지이자, 제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 전설, 신선 사상의 불로초와 백록 전설, 불교의 오백나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한라산은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천태만상의 얼굴을 가지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한라산을 보면서 날씨를 예측하고 계절의 흐름을 읽었다. 한라산은 제주의 랜드마크로 조선시대에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경계짓는 기준점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시군과 읍면을 가르는 행정구역의 기준이 되었다.

한라산은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영산(靈山)의 하나이면서, 북녘의 백두산과 더불어 우리 민족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성산(聖山)이다. 뿐만 아니라 한라산은 몽골강점기, 일제강점기, 제주4.3의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와 세계가 한라산의 경관적, 생태적,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한라산을 천연기념물(1966년)과 국립공원(1970년)으로, 유네스코에서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과 세계자연유산(2007년)과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지정함으로써 한라산은 민족의 영산을 넘어 인류의 영원한 자산이 되었다. 한라산은 인류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가치를 가진 유산인 것이다. 

등산로가 없던 시절엔 한라산은 오르기가 쉽지 않았고, 한라산 중턱까지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이삼일이 걸렸다. 하지만 5.16도로, 산록도로, 1100도로 등이 생기면서 정상까지 하루에 다녀올 수 있고, 반나절만 투자하면 1700미터인 윗세오름까지 다녀오면서 한라산의 주요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한라산 등반로는 언제나 만원이고, 주말과 연휴, 특히 털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단풍이 붉게 물드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는 늘 초만원을 이룬다. 한라산 탐방객은 2015년 125만500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2016년 106만5000명, 2017년 100만1000명, 2018년 89만1800명, 2019년 84만 8000명, 2020년 상반기 35만3754명 등으로 점차 줄고 있지만, 대략 연평균 100만명 내외로 잡는다. 2015년을 정점으로 한라산 탐방객 수가 줄어드는 것은 2017년 중국의 사드보복조치, 2019년 일본의 경제규제조치, 2020년의 코로나19확산 등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줄어든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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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이 절경을 이루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성판악 주변도로는 불법주차로 인해 몸살을 앓고, 등산로는 방문객으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털진달래와 철쭉, 단풍, 눈꽃 등 한라산이 절경을 이루는 시기가 되면 성판악 주변도로는 승용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한라산 등산로는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말, 연휴, 등반성수기 때는 성판악 주변은 교통체증은 물론 안전사고의 위험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한라산은 수많은 등반객의 답압(踏壓)으로 등산로와 생태계가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성판악 주변도로 불법주정차 단속문제와 한라산 탐방예약제가 논의되었고, 제주도에서는 2월부터 탐방예약제(1일 성판악코스 1000명, 관음사 코스 500명)를 실시하고, 2020년 5월부터 위반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관광객 감소라는 이유로 탐방예약제는 주정차단속은 시행도 못해보았고, 탐방예약제는 12일 만에 중단했다. 

10월 15일 제주도교통항공국을 상대로 한 행정사무감사에서 김희현 의원의 성판악주변도로의 불법주정차 단속과 탐방예약제 관련 질의에 문경진 교통항공국장은 “제주국제대 5.16도로 접한 곳에 199면 주차공간이 있는 환승주차장을 만들고 있고, 11월 주차장이 조성되면 성판악 입구부터 양쪽으로 총 6km 구간에 대해 불법 주정차를 단속할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지만 서귀포시 쪽에서 올라가는 탐방객들에 대한 배려는 없는 상황이어서 그것만으로 불법주정차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판악 주변도로 불법주정차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주말과 연휴, 그리고 등반성수기에는 제주대입구와 서귀포산업과학고 사이를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한라산 탐방예약제도 더 이상 미룰 문제가 아니다. 세계유산본부는 2019년 12월 23일 보도자료에서 “2020년은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세계유일의 4대 국제보호지역인 한라산의 적정 탐방을 보장하고 자연자원 보호 및 탐방객들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고려한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2020년 2월부터 탐방예약제를 시범운영한다. 한라산의 자연자원을 보전하여 그 가치를 후세에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시행초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탐방객들의 많은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라산탐방예약제는 운영된 지 보름도 못 넘기고 2월 13일 신종 코로나19 사태로 내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관광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제주경제에 큰 영향이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한라산 탐방예약제가 제주관광과 제주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조사된 바는 없다. 하지만 제주도 관광객 감소는 중국의 사드보복, 일본의 경제규제조치,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등으로 인한 것이지, 한라산 탐방예약제가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지구 등 탐방객 수용방안 및 관리계획 수립 용역 결과에 따르면, 한라산이 수용할 수 있는 1일 적정 탐방객 수는 성판악코스가 생태적 수용력 482명, 물리적 수용력 774명이고, 관음사코스가 각각 319명, 543명으로 나타났다. 그리 본다면 한라산 탐방예약제에서 정한 1일 탐방객 수를 성판악코스 1000명, 관음사 코스 500명으로 잡은 것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물론 탐방예약제와 1일 탐방객 수를 기계적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고, 평일과 주말․공휴일, 등반 성수기와 비수기 등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탐방예약제는 이미 지리산, 설악산, 내장산, 속리산 등 전국 국립공원 21개 탐방로에서 잘 시행되고 있다. 세계유일의 4대 국제보호지역이면서 우리나라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한라산국립공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탐방예약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라산 탐방예약제야말로 제주관광을 발목잡는 게 아니라 제주관광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이제 한라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판악 주변도로 양쪽에 길게 늘어선 승용차들로 그 지역을 지나는 차량과 등반객들이 위태위태하다. 세계유산본부에서도 진정으로 한라산의 자연자원과 문화자원이 영원히 지속되고 미래세대에게 전달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기를 바란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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