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7) 책이 부르는 계절, 제주시 도평동 ‘북스페이스 곰곰’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푹푹 찌던 여름을 소리 없이 밀어내는 가을, 가을은 힘이 참 세다. 살랑살랑 다가온 바람이 책 곁으로 우리를 불러 앉힌다. 가을 분위기 완연한 시월에, 지금까지와 달리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월산 정수장 교차로에서 좌회전하고, 다시 외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도천 줄기와 도근천 줄기를 끼고 앉은 도평동, 심심찮게 지나다니는 길이다. 그런데 3년 동안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도대체 난 눈을 뜨고 다니는 걸까, 감고 다니는 걸까.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심 냄새에 도서관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그렇게 나는 ‘북스페이스 곰곰’ 책방지기 김지연 씨를 만났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커피 가는 소리에 이어 ‘쪼르록 똑똑’ 커피 내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에 놓인 화분에서 트리안이 자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하게 된 계기”
김지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천성적으로 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빌리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결국, 일도 책과 함께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 책에 관심이 많았던 김지연 씨는 서울에서 10년 정도 어린이 책을 만들었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10년 동안 논술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이게 인연이 되어 제주에서는 논술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김지연 씨가 논술 수업을 하다 보니, 의외로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다. 좋은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엄마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이의 꿈이나 관심사와 상관없는 책을 골라주는 엄마도 계셨다. 책과 가까워지기는커녕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좋은 책을 골라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좋은 책을 가져다 놓는다면…….’ 김지연 씨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팔을 걷어붙였다. 책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평동에 책방 하나가 생겼다. 3년 전이었다.

10년 전쯤, 글쓰기 스터디를 할 때였다. 스터디를 이끄는 선생님은 농사를 지으셨는데, 모든 게 관찰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굉장한 시력을 갖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농사를 지으며 관찰 중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을 들려주셨다. 참 희한하더라는 말로 시작하셨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사용해 봤을 제초제나 영양제, 선생님께 깨달음을 준 건 바로 이 제초제와 영양제였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하여 제초제를 뿌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더란다. 제초제를 뿌린 곳에 잡초가 말라 죽으며 주변 식물까지도 황폐해진 것이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영양제를 뿌렸을 때다. 영양제를 먹은 농작물은 보답이라도 하듯 야들야들 자랐다. 덩달아 주변 작물도 야들야들 자랐다. 제초제와 영양제가 보여준 건 한 마디로,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에 따라 나의 삶도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책방지기가 시작하게 된 책방이 곧 영양제는 아닐까. 이제 책방지기 주변 아이들이나 엄마들은 더 효과적으로 책을 읽으며 재미도 누릴 것이다. 지금, 책방지기 김지연 씨는 도평동에서 독서란 영양제를 뿌리는 중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에 독서대 형식으로 놓인 책 알림판.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물질 만능의 시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의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방만으로 돈벌이는 힘들다. 그런데 김지연 씨는 왜 하필 책방을 선택했을까.

책방지기 김지연 씨는 여섯 살까지 시골에서 살았다. 그 후 제주로 올 때까지 도시에서 살았다. 당연히 어렸을 적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밑바탕 저편엔 육화된 많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기억 저편엔 아름다운 시골 생활이 있었다. 어찌 보면, 결혼 후 귀촌해서 살자는 꿈을 지니게 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김지연 씨 부부는 제주에 사는 형님네를 보러 왔었다. 그리고 제주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두메산골도 번화한 대도시도 아닌 딱 그 사이, 귀농은 아닐지라도, 귀촌을 꿈꾸는 부부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제주엔 형님네도 계셨다. 김지연 씨 부부는 이렇게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몇십 년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나 김지연 씨 부부는 별 미련이 없었다. 하던 일이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주 이야기가 나오고, 석 달 만에 정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김지연 씨 부부가 그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2층엔 다락이 있다. 책을 대여하면 이곳에서 맘껏 뒹굴며 책읽기를 즐길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내가 자랄 때는 한창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다. 새마을 운동으로 새벽부터 마을 안길 쓸기, 공동우물 청소, 이런 게 다반사였다. 어렴풋하지만, 교과서에도 야산을 일궈 과일나무 한 그루 더 심기, 두메산골에서 도시로 시집간 누나를 그리는 이야기도 있었다. 난 이러한 글을 읽으며 도시를 우러렀다. 일, 일, 일, 밭일이 싫었다. 

하지만 아련하고도 그리운 기억이 더 많다. 밭을 매다가 발견한 보랏빛 뚜껑별꽃이 고왔다. 잡초고 뭐고 집에서 키울 요량으로 따로 두었다. 그러나 집에 올 때 보니 이미 말라 있었다. 제주상사화 같은 경우도, 이름은커녕 꽃과 잎이 따로 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느 철에 보면 잎만 무성하고, 어느 철에 보면 꽃만 있었다. 그러므로 같은 꽃이란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께선 상사화를 도채비(도깨비)꽃이라고 하셨는데, 꽃만 피어 있는 걸 보면 정말 도깨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잎이 수선화를 닮아서 임의대로 들수선화라고 이름을 붙이는 등 나의 어린 시절은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식물과 함께였다. 나이를 먹고 글을 쓰다 보니, 이러한 기억은 나의 재산이었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글 한 편 쓰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건 어린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추억이 재산이다.

과거는 지나갔다. 그러므로 소용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건 과거다. 과거를 무시할 수 없음이다. 책방지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섯 살까지 시골에 살았던 기억이 귀촌을 꿈꾸게 하였고, 그 꿈이 다시 책방지기를 제주로 오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책방을 열게 된 계기가 시골에서 자란 6년 때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 잡는 선무당의 ‘꿈보다 해몽’일 뿐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서가에 꽂힌 책은 판매하지 않으며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다. 한 손님이 책을 살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같이의 힘”
굳이 교인이 아닐지라도 성경 1독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완독은 쉽지 않다. 책방지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 1월부터 김지연 씨는 엄마들 네 분과 성경 읽기에 도전했다. 하루 넉 장 정도 정해진 분량을 읽고, 발췌한 내용을 단톡방에서 공유하기로 했다. 함께하는 것에는 확실한 힘이 있었다. 용암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읽게 되었다. 이처럼 ‘같이의 힘’을 알기 때문에 김지연 씨는 모임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교인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성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타자로 쳐볼까도 했다.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안이한 태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 시월, 춘천에 사는 한 선생님과 함께하기로 했다. 그 선생님은 기독교 신자로 예전부터 성경 필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터, 뜻을 같이하는 우리가 SNS에서 만났다. 

필사로 할까 하다가 타자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타자한 것을 밴드에서 공유했다. 구약과 신약, 만만찮은 분량이다. 가끔은 밀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가 올린 걸 보면서 분발할 수 있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올 6월 초,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20개월이 걸렸다. ‘같이의 힘’이었다.

“달라졌어요”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 가족이다. 그러고 보면 오전에 엄마들 모임은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관심 분야의 모임을 진행하기 때문인지, 김지연 씨가 모임을 모집한다고 하면 별 무리 없이 모였다. 

아이들이 변화하기 위해선 엄마부터 바뀌어야 한다. 책방지기 김지연 씨에게는 엄마들을 위한 모임 ‘엄마와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을 통해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아이와 그림책을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안내하고 스터디하는 오전 모임이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믿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반신반의로 오는 분도 계시고, 별 기대 없이 오는 분도 있다. 뭔지도 모른 채 신청하고 오는 분도 있다. 

세 자녀의 엄마가 계셨다. 김지연 씨를 만나기 전, 이 엄마는 아이들과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독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기 전 항상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말이 그렇지, 날마다 세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엄마는 자녀들에게 책 한 권을 읽어주기 위해 애썼다. 어떤 책을 일어줘야 할지 몰라서, 전집 중 한 권을 뽑아 번갯불에 콩 볶듯 읽어줄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책 한 권 읽었으니 빨리 자라.’고 한다. 어쩌면 형식적인 책읽기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내부 그림책이 진열된 공간.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두 공간 모두 대여료는 두 시간 기본으로 4,000원이다.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를 만나면서, 세 자녀의 엄마는 아이들과 책 읽는 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독촉하며 읽거나 숙제처럼 여기면 좋은 독서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차츰 좋은 그림책이 어떤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독서라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방법 또한 중요하다. 모임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엄마는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나 생각을 아이들과 나누게 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숙제인 양 이어지던 책 읽는 시간을 아이들이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알게 되며, 엄마는 아이를 잠재우는 시간이 좋아졌다. 의무적으로 책 한 권 읽어주고 스스로 위안을 받다가, 책방지기를 만난 뒤부터 진정한 독서의 씨앗을 마음 밭에 뿌리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가 책방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은 경우도 있다. 근처에 책방이 생기고, 방학이 되자 책방엘 오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처음 데리고 왔을 때 3학년이던 그 아이가 어느새 6학년이 되었다. 3년 내내 책방 고객이 된 아이다.

엄마랑 같이 오기도 하지만, 혼자 오기도 하면서 자기 연령대에 맞는 책을 스스로 골라보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볼 때 책방지기는 이들이들 자라는 새싹을 떠올린다. 어릴 때 책 읽는 즐거움을 경험한 이 아이들, 어른이 돼서도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행복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구매한 고객에게 책방지기가 계산을 돕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주말이면 책방지기 김지연 씨는 학원에서 논술 수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책방에서는 많은 걸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이’의 힘을 알기에, 가능한 엄마들과 모임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한다. 이름 있는 작가들의 북 토크 같은 행사보다는, 소소한 엄마들의 모임과 꾸준한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모임 구성원을 위하는 김지연 씨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엄마들 수업이나 아이들 수업은 모두 신청받아서 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거라 믿고, 책방지기는 9월 모임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가 횡횡해도, 사실 제주는 조심만 하면 그다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하반기가 되며 제주 자체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도 조심했지만, 더 조심해야 했다. 대부분 모임을 휴강했다. 새로 오픈해야 할 모임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휴일이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동네 카페에서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카페는 문 닫을 시간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하고 애월 해안도로로 갔다. 외출 자제라든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곳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아무리 코로나를 외쳐대도 사람을 가둬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책방지기 김지연 씨도 나도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임도 모임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책방이다. 판매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고객은 모임의 대상인 엄마도 있을 것이고, 외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스페이스 곰곰’에는 어떤 고객층이 주를 이룰까.

의외다.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났는지, ‘제주 책방 지도’를 들고 찾아오는 분이 꽤 있다고 한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몇 년 전 한창 유행이었다. 여기에 제주가 코로나19에서 청정지역이라는 의식이 한몫을 했는지, ‘제주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종종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지며 자리를 잡을 즘, 코로나19가 초를 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낙천적인 건지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 책방지기는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생각의 차이였다. 물론 코로나19로 모임이나 수업이 지체되긴 했다. 그 대신 코로나19 때문에 도서관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찾아오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 구속된다거나 탓하며 무기력해지는 것을 책방지기는 원하지 않았다. 장사가 아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책방지기의 마인드가 돋보였다. 

“책방지기의 저서”
김지연 씨는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이뿐만 아니라 논술 교재를 쓰며 논술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상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저서도 냈을 것 같다. 내 짐작은 적중했다. 김지연 씨는 아이들을 위한 정보서를 다양하게 쓰고 있었다. 《이순신의 거북선 노트(김지연 글, 경혜원 그림, 주니어RHK 출판)》, 《나의 소원(김지연 글, 손영경 그림, 제제의숲 출판)》 등이 이미 출판되어 시판하고 있었다.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이었으며, 《세계문화유산》도 출판을 앞두고 있었다. 작업 의뢰도 있지만, 굳이 작업 의뢰가 아니어도 김지연 씨는 계속 책을 쓸 계획이다. 하지만 책방 운영에 수업까지 겹치다 보니 솔직히 소화하기 어렵다. 작년까지만 해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뭘 버려야 되나.’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선택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 김지연 씨의 저서 표지 “이순신의 거북선 노트”(좌), “나의 소원”(우)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행복과 상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봤을 때 ‘논술’ 하면 논리와 이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책방지기도 만나는 순간 이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가을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책방 안에 웬 봄바람이 부는 듯했다. 그 느낌과 함께 책방지기에게서 처음 보았던 이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피는 꽃, 색깔이 같아도 느낌은 사뭇 다르다. 가을에 피는 꽃은 봄에 피는 꽃보다 색도 훨씬 강하고 짙다. 거기에다 을씨년스럽다는 느낌도 한몫을 한다. 대화 중 이를 살짝 드러내며 입꼬리를 올릴 때, 책방지기는 영락없이 봄에 피는 꽃이었다. 그만큼 표정이 화사했다. 감성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감정의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도 궁금하다. 책방지기 김지연 씨가 책방을 운영하며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김지연 씨에게 행복은 그저 소소한 것들, 기분 좋게 느끼는 정도의 평범한 것들이다. 아니,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일과 개인적인 삶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책방 운영, 엄마들 모임, 아이들과 하는 수업에서 문제없이 지내는 게 행복이다. 가능한 갈등의 요소를 없애고, 개인적인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것들이 행복이다. 아이들이나 엄마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책 속에 파묻힐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복이다. 책방지기에겐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이 줄줄이 널려 있다.

책방지기 김지연 씨는 아이들 책을 읽으면서도 종종 철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다. 읽으면서 김지연 씨는 ‘왜 사나, 뭐가 행복일까.’ 등에 대하여 생각한다. 생각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습관적인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기준이 없으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흔들림’의 대명사인 갈대는 뿌리가 튼튼하다. 그렇기 때문에 늘 제자리에 있다. 책방지기에게는 기준이 중요하다. 그 기준을 중심으로 언제나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한쪽에는 다회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지구별가게와 함께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물품들도 판매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세상 어느 곳이든 양면성이 존재한다. ‘북스페이스 곰곰’도 그렇다. 물론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크게 상처받을 일도 거의 없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은 마음을 다칠 때가 있다. 그림책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책방 입구 쪽에서 쓰윽, 그렇게 훑어보고는, “그림책밖에 없네.” 하고 나가는 사람들, 그럴 땐 “흑흑” 그림책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림책이 어때서?”라며 판매대에 누운 그림책들이 발딱 일어나 손님에게 대들 것만 같다. 

어른이 알아야 아이에게 골라줄 수 있다. 또 어른이 봐야 할 정말 좋은 그림책도 많다. 표지만 봐서 제대로 알 수 없는 책도 너무 많다. 더군다나 오래도록 어린이 책을 만들어 온 책방지기에게 그림책은 분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도 그림책의 가치를 몰라주는 건 괜찮다. 하지만 하찮게 취급될 땐 다르다. 누구라도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김지연 씨는 가능한 감정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도서정가제 재검토를 앞둔 지금, 책방 한편에서는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린다. 책방지기는 자본의 논리로 도서정가제가 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개정에서 대폭 할인이 적용된다면 우린 책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이 될지도 모른다. 할인율이 높아지는 만큼 출판사에서 신간의 정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개정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판사든 서점이든 대기업의 서점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큰 출판사나 대형서점에서 박리다매 형식으로 할인율을 높이고, 인터넷 서점에 풀어 버리면 작은 책방들은 견딜 재간이 없다. 독립출판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는 동네 책방 또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네 책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의 소리 없는 외침.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가 생각하는 ‘책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삶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다르게 살 수 있는 것, 습관적으로 살지 않는 것, 사고방식이 미처 닿지 않았던 곳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목적이나 가치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 없이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거기서 또 다른 발견을 하게 된다. 

책은 하나의 매개체다. 힘들 때 다독여주고, 어려운 일은 또 조금이라도 쉽게 해준다. 하지만 발견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읽지 않으면 발견도 깨달음도 없다.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 여기에 책이 함께 한다면 우리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에 놓인 화분에서 자라는 워터코인.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에 놓인 워터코인 앞에 앉았다. 물에서만 자란다는 나의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편견 또한 습관이다. 이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숙제다. 

워터코인
고봉선

분가 후 분양받은 장독대 뚜껑에서
단 하루 휴일 없이 수면 위를 구르더니
어느새 동전이 가득, 벌써 부자 되었네

“북스페이스 곰곰은”
책의 계절, ‘북스페이스 곰곰’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문학과 인문학 도서들이 있습니다. 논술교재를 만들며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인 책방지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간 대여료는 두 시간 기본 4,000원, 책과 함께 차를 마시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우평로 45-1 바인빌딩 1층 
영업시간 : 낮 12시 ~ 오후 8시 
인스타그램(Instagram) : gomgom_jeju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