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4. 소 거름보다 돼지 거름이 좋을까

* 쉐걸름 : 소 거름
* 돗걸름 : 돼지 거름

요즘은 시골에서도 ‘걸름’이란 고유의 제주방언을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거의 안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표준어인 ‘거름’은 더러 쓰이지만 한자어인 ‘비료’ 쪽이 훨씬 많이 쓰인다.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를 선호하는 관념 때문이다.

걸름이란 말을 쓰던 시절과 비료란 말을 쓰는 오늘을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어쩌지 못한다. 옛날에는 ‘밭을 걸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농사지어야만 입에 풀칠을 하던 농부들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말이다. 밭을 기름지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흙을 비옥(肥沃)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농사가 잘될 게 아닌가. ‘문전옥답’란 말의 ‘옥(沃)’이 바로 ‘비옥’하다의 그 글자다. 땅이 비옥해야 농작물이 자랄 만큼 자라 수확도 풍성할 것은 말할 게 없다.

그래서 옛날 농촌에서 거름을 만드는 데 여러 방법을 썼다. 마소의 배설물 또는 가축을 기르는 외양간이나 돼지우리에 깔았던 짚, 가축의 똥오줌을 최고로 쳤다. 이게 두엄이다. 거름 중 으뜸으로 치던 게 두엄이라 두 말이 헷갈리기도 한다.

한 가지, 집집마다 마당 구석이나 모퉁이에 ‘걸름 눌’이란 게 있었다. 이젠 시골 마을을 뒤져봐도 없는 그 시절의 독특한 풍물이었다. 촐눌이라 보릿집눌이 아닌 걸름 눌.

돼지우리에 짚을 두껍게 깔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것이 발효해 ‘유기질 거름’이 되었다. 그게 ‘두엄’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퇘지통에 들어가 걸체로 그 썩은 짚을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담아다 마당 구석에 쌓아 놓는다. 그냥 쌓지 않고 사이에 새 짚을 깔았다. 그게 누적돼 썩으면 두엄이 곱절로 불어날 것 아닌가.

옛 돼지우리를 재현한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옛 돼지우리를 재현한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갈중이 입고 그 썩은 물통에 들어가 거름이 다돼 있는 두엄을 퍼 나른 조상들. 그래서 잘 숙성시켜 씨앗을 뿌리기 전에 혹은 후에 밭에 가서 뿌렸으니, 전후해서 밑걸름, 웃걸름이다. 그렇게 농사를 지었다. 

두엄에 그치지 않았다. 인분, 오줌, 재, 풀 섞인 깻묵, 쌀겨, 정어리나 멸치 그리고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인 등북. 이 모든 것을 밭에다 뿌리거나 흙에 섞으면서 깔았다. 워낙 박토였지만 날로 토질을 개선하려 애썼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개똥도 좋은 거름이라 했으랴.

‘한 사발의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의 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은 우리 농부들이 ‘걸름’을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를 잘 빗대 말한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었다.

‘한 해 동안 집안사람들의 오줌을 모으면 백묘(百畝, 묘는 30평, 백묘는 3000평)의 논밭을 걸를 수 있다'고.

쉐걸름은 쉐오줌 정도로 썩혔지만, 돼지걸음은 사람의 배설물, 돼지 똥·오줌에도 수없이 내리던 빗물이 합쳐지면서 물통이 됐으니 거기 넣은 짚들이 썩을 대로 썩어 마구간에 비할 바 아니었다. 당연히 ‘돗걸음’이 으뜸일 수밖에.

요즘에 화학비료를 뿌려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 산성화 아닌가. 점점 밭이 황폐해 가고 있다. 화학비료에 농약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니 흙이 제대로 작물을 키울 수 있겠는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쉐걸름, 돗걸름이란 말을 대하면서 ‘걸름’이란 말에 옛일들이 깊이 꽂히는 바람에 글이 조금 길어지면서 출렁이기도 한 것 같다. 소년 시절에 돼지 통에 들어가 아버지를 도왔었으니까.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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