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4.3평화재단-제주민예총, '4.3가족문화제-식구' 성황리 개최

엄숙하고 경건했던 제주4.3평화공원에 모처럼 따뜻한 가을볕과 화사한 웃음꽃이 퍼졌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엄마로부터 딸에게, 할머니로부터 손녀에게 전해진 4.3의 기억은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보듬게하는 힘이 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 주최하고 (사)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이 주관하는 '4.3 72주년 가족문화제'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이번 가족문화제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4.3어버이상과 4.3장학생 가족을 대상으로 100여명의 관객만 초청했다. 

'식구(食口)'라는 부제를 내건 이날 문화제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방역 지침에 따라 입장 시 4.3 위령 광장에 마련된 '거리두기 가족 텐트존'에 자리잡았다.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500명 1000명을 모시고 싶었는데 코로나19의 제한으로 100명밖에 모이지 못했다. 여러분의 뒤에는 4.3영령들이 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미소를 짓는다면 영령들도 함께 기뻐하고 위안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많은 박수와 많은 웃음을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식구란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4.3유가족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 모두가 4.3이라는 역사 아래 모두 가족이고 식구라는 의미를 담아 이번 문화제를 마련했다"며 "도민 모두가 다 같이 손을 잡고 4.3의 진상규명과 4.3특별법 개정의 성과가 있을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행사장 개장을 시작으로 전문 사진 작가와 함께하는 가족사진 촬영 순서가 마련됐다. 참가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함께하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은 보정을 거쳐 추후 가족들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본 행사에서는 문화제에 참여하는 희생자 가족에 대한 특별 영상이 상영됐다. 이어 '4.3어버이상' 대표자 1인과 '4.3장학생' 대표자 1인의 편지 낭송이 이어졌다.

4.3평화재단은 지난 2009년부터 생존 수형인, 후유장애인, 4.3희생자의 배우자, 고령 유족에게 4.3어버이상을 시상하고 있다. 4.3의 아픔을 극복하고 고통의 세월을 이겨낸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취지다. 4.3장학생은 지난 2015년부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4.3유족 자녀들을 격려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4.3어버이상 수상자인 김복희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오늘 이 자리를 하늘나라에서 반가워하실 것"이라며 93세인 어머니 변춘화 할머니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 절절한 사연을 전했다. 

김복희씨는 "4.3때 남편과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하나 밖에 없던 남동생은 군인으로 불려가 전사해 태극기 하나만 덜렁 내려왔다. 4.3때 집은 불에 타 없어지고, 외할머니와 어머니, 저까지 3대가 키가 큰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초가집에 살았다. 어머니는 남의 일, 농사일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 그간의 아픔을 토로했다.

이어 "저는 자식과 손자·손녀까지 잘 보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옆에서 항상 저를 돌보셨다"며 "이제까지 많은 일을 겪은 어머니는 앞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시겠다. 남은 생에 가족들 사랑 듬뿍 받으며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지를 듣던 변 할머니도 연신 눈가를 훔쳤다.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4.3의 기억을 담은 영상 '그해 다시 봄'을 제작하며 4.3장학생에 선발된 영주고 2학년 고유정양은 4.3을 '학생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고 양은 "어릴 때 할머니가 동화책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처럼 4.3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머니가 산으로 도망가다 총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뎌 내창 밑으로 떨어졌고, 군인들에게 맞은 후 치료도 못받고 7살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쪽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멀쩡한 손과 발을 갖고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고생 많으신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겠다. 계절마다 예쁜 꽃이 피면 꽃보러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신나는 노래도 부르며 앞으로 평생 즐겁게 살아가겠다"고 사랑을 표했다.

편지 낭독 이후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족퀴즈쇼'가 이어졌다. 가족, 제주, 4.3이라는 주제의 퀴즈가 출제되면 참가한 가족들은 태블릿 PC를 통해 정답판을 공개했다.

옛 제주 향토음식 문제부터 기민한 센스를 요하는 넌센스 퀴즈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문제에 곳곳에서 함박웃음이 터져나왔다. 

퀴즈쇼가 끝나고 폭넓은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조명섭과 십센치(10cm)의 문화공연까지 이어졌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입장 시 발열 확인, 참가자 명부 작성, 소독을 실시했다. 참관객과 스태프 모두 마스크를 필수적으로 착용했다.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24일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민예총 주최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가족문화제-식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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