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골령골에 파묻힌 제주 청년들 ‘4.3재심 눈물바다’
대전 골령골에 파묻힌 제주 청년들 ‘4.3재심 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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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행불인 33명 재심 청구 첫 심문 절차...대전위 희생자 대다수 골령골 총살 암매장
4.3당시 큰 형 강찬수씨를 잃은 강승수(왼쪽) 할아버지와 아버지 백운기씨와 오빠 백대경씨를 잃은 백여옥(오른쪽) 할머니.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른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한국전쟁 직후 대전 골령골에서 총살을 당했다.
4.3당시 큰 형 강찬수씨를 잃은 강승수(왼쪽) 할아버지와 아버지 백운기씨와 오빠 백대경씨를 잃은 백여옥(오른쪽) 할머니.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른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한국전쟁 직후 대전 골령골에서 총살을 당했다.

“아버지는 군경에 끌려가 행방불명되고 오빠는 총살당하고. 제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재판장님. 정말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제주4.3사건으로 아버지(백운기)와 오빠(백대경)를 잃은 백여옥(79)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이 법정 진술을 통해 전해지자, 방청석에 있던 4.3유족들도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26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사라진 4.3행방불명인 33명의 재심 청구사건에 대한 첫 심문 절차를 진행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대전위원회로 나눠진 피고인들은 1948년 4.3을 전후해 행적이 끊긴 희생자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전 골령골에서 총살 당해 암매장됐다.

재심 청구인인 백여옥 할머니는 1948년 4.3 당시 만 6세였다. 마을이 불바다로 변하자 아버지 등에 업혀 산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삼남매는 그렇게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마을로 내려오면 살려주겠다는 군경의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1949년 1월17일 오빠는 북촌초등학교(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총살을 당했다. 당시 10살 남짓 어린이였다.
   
주정공장으로 끌려간 나머지 가족들은 몇 달후 풀려났지만 아버지는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죄명도 모른 채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했다.

몇 달 후 편지 한통이 제주도로 날아들었지만 그 뿐이었다. 잘 지내라는 안부 인사와 함께 아버지와의 연락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전 골령골 학살터에 세워진 비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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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행방불명인 대전 골령골 희생자 위령제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7월초 대전에서는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수적 열세에 놓인 우리 군은 결국 대전에서 퇴각했다.

그 사이 군 헌병대와 경찰은 그해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수형인 등을 집단 학살했다. 그 장소가 대전 골령골이다.

희생자는 4.3 관련 수감자와 보도연맹 등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에 이른다. 이중 4.3희생자는 3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백여옥 할머니는 “아버지는 기일도 몰라 생일에 제사를 지내고 오빠는 총살 당한 날 제를 올린다. 가족 중에 남자들이 모두 죽어 어머니와 정말 어렵게 살아왔다”며 오열했다.

이어 “유족회와 대전 골령골도 찾아갔지만 지금도 아버지 유골을 찾지 못했다. 이 억울함을 누가 알아주느냐. 억울하고 원통하다”며 흐느꼈다.

유족을 대표해 진술에 나선 강승수(86) 할아버지도 4.3사건으로 6남매 중 자식 3명을 잃은 부모님의 가슴 시린 사연을 생생하게 전해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봉개동 출신인 강승수 할아버지는 4.3 당시 큰형(강찬수)를 잃었다. 이른바 소개령이 내려지자 부모님은 1948년 11월 6남매를 이끌고 절물오름 인근 일본 진지동굴에 몸을 숨겼다.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큰 형을 제외한 5남매는 부모님과 마을로 내려왔다. 군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 가족을 주정공장으로 끌고 갔다.

두 달여 만에 가족들은 풀려났지만 큰 형은 불법 군사재판을 받아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가 씌워져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형의 나이 23세였다.

강승수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형이 끌려간 후 토벌대에 맞아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그 사이 누나도 행방불명되고 둘째형도 연락이 끊겨, 어머니는 홀로 삼남매를 먼저 보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더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강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 재판장이 잘 해달라. 부탁드린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감췄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2019년 6월3일 법원에 행불인수형자 10명에 대한 첫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2월18일에는 행불인수형자 393명이 추가로 청구에 나섰다.

서류미비 등을 이유로 제외된 인원을 적용하면 실제 재심 대상자는 349명이다. 재심청구인은 342명이다. 6월8일과 9월14일, 10월19일에 이어 오늘까지 98명에 대한 심문 절차가 이뤄졌다.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하면 70여년만에 4.3행방불명인 수형자에 대한 첫 재심 정식 재판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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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2020-10-27 09:53:14
4.3억울한죽음,억울한 행불자!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제주도 3방울 국회의원들은 지난총선때처럼 적극적인 모습으로 해결책을 내놓고, 해결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되는데...3방울이 해결한다! 합창을 했는데...제주토박이 도민들이 또 속았네...그 속임에 또! 도민들은 눈물만 솟고있네...!!!! 토벌대대장질을한 아들놈은 버젖이 국회의원을 하고있고...이게 누구때문인가....지금 부터라도 제주도 정치인은 제주토박이 도민들이 뽑아야한다! 전국에있는 제주토박이 도민은 제주도 투표에 참여하고.....깽깽이와 더불아히롱당 인간들은 라도에서 투표하게 해야한다! 각자 본인 고향에서 투표권리 행위를 해야한다! 그래야 제주가 바뀐다!
27.***.***.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