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43) 2014년 취임 선언의 반복, 제2공항 도민결정권 인정해야

25일 송악선언을 발표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5일 송악선언을 발표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최근 원희룡 제주지사가 난개발 논란이 일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청정제주 송악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나흘 전에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송악선언을 예고하며 도내·외의 시선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원 지사는 송악산을 배경으로 ‘송악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원 지사는 “제주의 자연은 모든 국민이 누릴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고, "청정과 공존은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라고 운을 떼며 “아직 남아 있는 난개발 우려에 오늘로 마침표를 찍겠다”고 했다. 제주 자연의 공공성과 공익적 가치를 강조했고, 최근의 정치적 행보에 맞게 그 범위와 대상 역시 ‘대한민국 국민’과 ‘헌법적 가치’라는 표현으로 확대했다.

난개발 마침표 아닌 쉼표 찍나?

이어서 난개발 논란이 일고 있는 개별사업 하나하나에 대한 짧은 입장이 발표되었고, 이를 해설하는 ‘청정제주 송악선언 설명자료’가 나왔다. 원 지사는 송악산 뉴오션타운개발과 중문관광단지 내 부영호텔의 경관 사유화를 언급하며 송악산과 중문 주상절리를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오라관광단지는 현재 제주도의 개발사업 심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도민사회 신뢰가 형성되는 경우에 한 해 추진한다고 했다. 동물테마파크는 맹수사육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인수공통감염병 전파 가능성 등을 고려해 근본적 문제의식하에 면밀히 검토하여 추진하겠다고 했다. 비자림로 확장은 영산강유역환경청의 보완 요구사항을 반영한 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개발사업에 대해서 환경보전 중심의 입장 정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찬찬히 들여다보면 원 지사가 얘기한 ‘난개발 우려에 오늘로 마침표’를 찍은 것인지 혼돈스럽다. 그나마 원 지사가 입장을 명확히 한 송악산 개발과 주상절리 호텔 개발사업은 도의회 부동의와 대법원 판결 등으로 사실상 사업추진의 동력을 잃은 사업이다. 

나머지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원 지사는 환경보전을 원칙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제주도의 설명자료를 보면 모두 사업 추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오라관광단지는 도민사회의 신뢰가 형성된 후, 동물테마파크는 근본적인 문제가 검토된 후, 비자림로 확장은 환경저감 대책을 마련한 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난개발 우려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를 찍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좌초된 6년 전 선언의 반복

원 지사가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과 함께 개별사업에 대한 도정의 정책방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7월 원 지사는 민선 6기 도지사 취임 한 달을 맞으면서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제주도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원 지사는 “제주도 가치의 기초 전제는 청정한 자연”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관광은 양적 관광을 뛰어넘어 체재일수, 체재활동과 생활방식, 만족도와 재방문율 등의 질적 지표를 중심에 두겠다”고 했다. 또한 “적정 인구수, 물과 에너지 소요량, 교통인프라 규모, 숙소 총량, 폐기물 처리용량 등 예측 가능한 총량 계획하에 개발의 내용과 형식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모두 함께 제주의 가치를 높여가고, 그 과실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고 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청정한 자연과 제주의 미래가치를 높이겠다는 제주도의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어 왔을까. 양적 관광을 뛰어넘어 질적 지표를 중심에 두겠다는 약속은 현재 제주도정이 밀고 있는 제2공항 건설사업만 보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질적 관광으로의 전환은커녕 현재 1500만 명의 관광객도 모자라 왕복 4500만 명의 수용능력을 갖춘 공항 인프라를 구축하여 더 많은 관광객을 늘리는 양적 팽창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적정 상주 인구수는 물론 상하수도와 전기, 교통, 숙박, 쓰레기 등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 가능한 총량 기준에 맞춘다는 계획도 제2공항 건설 추진으로 요원해지고 말았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도민 모두가 제주의 가치를 높이고, 그 과실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지만 제2공항 건설로 특정 부류가 이익을 독점하게 되었다. 사업지역 주민들은 농지와 고향을 빼앗기고, 인근 피해지역 주민들은 평생 소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자연경관을 해치거나 부동산 개발·분양 위주의 사업은 중단시켰다”고 하지만 도심지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도시공원마저 부동산 개발의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등봉 공원, 중부 공원에 15층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면서 도시숲이 사라지고 도심지 경관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원 지사의 ‘송악선언’은 자칫 6년 전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 정책추진이 흐지부지된 사례의 반복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산간 지역의 신규 개발사업에 대하여 개발허가 기준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후 제주도정의 개발사업에 대한 정책방향이나 현재 원 지사의 정책결정을 보면 제주의 미래가치를 높이는 지속가능한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송악선언’의 실현을 위해서

송악선언이 제주도정의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6년 전 기자회견 발표의 경우 세부적인 정책 내용까지 제시했던 것에 비해 이번 송악선언은 정책의 방향성은 추상적이고, 내용적 범위도 극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꺼내 든 내용은 구체적인 방향과 계획 없이 원칙 수준의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원 지사는 송악선언의 부제를 “다음세대를 위한 제주의 약속”으로 적었다. 회견문에서는 “다음세대도 제주의 자연과 깨끗하고 안전하게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원 지사가 추진하는 제2공항 건설은 제주의 개발수요를 급격히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찬성론자들이 제2공항 건설을 제주의 제2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이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 이상의 난개발을 불러올 것이고, 다음세대에게는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다음세대의 권리를 우리 현세대가 짓밟는 것이다. 따라서 원 지사는 “다음세대의 권리를 위하여 청정 제주를 지키겠다”는 약속이 허언이 아니라면 송악선언의 구체적인 실현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언급된 난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분명한 마침표를 찍는 실행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나아가 제주지역 최대 난개발 사업인 제2공항 건설 논란에 대해 도민결정권을 인정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이영웅·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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