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女 氣UP’ 창업현장](4) 제주문화·언어 버무린 창작활동 모인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경력단절 여성이 일하려면 바닥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20여 년간 육아를 비롯한 가정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하던 일을 이어가긴커녕 경력조차 쌓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이력서에 줄 하나 만드는 일이 왜 그렇게도 힘든지…….”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김효은 대표 인터뷰 중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 등 가족이란 이름 아래 자신의 삶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여성들. 세월의 흐름은 야속하게도 젊은 시절 사회를 누비고 다녔던 그들의 경력을 앗아갔다. 다시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와도 갈 곳이 마땅찮은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의 높은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이들이 있다. 눈앞에 놓인 한계를 깨부수고자 2018년 제주도와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누군가의 엄마, 아내가 아닌 당당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지고 경력단절의 연결고리를 당차게 끊어낸 그들을 [제주의소리]가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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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을 통해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김효은 대표(사진 가운데), 오현주 이사(사진 위), 윤영주 사무장.ⓒ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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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은 제주문화와 언어를 버무린 예술 활동을 통해 제주를 알리고 있다.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2013년 남편과 함께 차린 카페 공간을 꾸미기 위해 시작한 캘리그라피로 인생 전환점을 맞게 된 김효은(46) 대표. 

우연찮은 기회로 캘리그라피 강의를 나가게 된 김 대표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밤새며 준비한 강의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을 찾게 된 것. 그 순간 어딘가에 속한 호칭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김효은’이 됐다.

김 대표는 그 이후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경력단절 여성을 돕고자 강의 활동에 매진하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캘리그라피를 예술로 승화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김 대표를 따르는 교육생들은 제주캘리연구회 동아리를 만들고 본격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김 대표의 도움을 통해 경력을 쌓은 이들은 교육활동을 통해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적성과 잘 맞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희망은 자신감을 높여가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이들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제주 여성을 돕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 내디뎠다. 김 대표를 중심으로 각자 강의를 나가고 있던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모여 노하우를 전수하며 어려움을 함께 분담하는 등 다양한 가치를 담기 위한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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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안에는 팻말을 비롯한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놓여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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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를 빠져나오는 뱃머리 뒤에서 바라본 풍경을 캘리그라피로 표현해낸 김 대표의 작품. '그래 나를 그대로 놔두라 그게 나를 사랑하는 거다 수평선이 날 놔두듯 그렇게 놔두라'. ⓒ제주의소리

20여 년 이상 주부로 살아온 오현주(47) 이사는 “자격증이 많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직업으로 연결되거나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김 대표를 만나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잊고 있던 내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로 인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오 이사는 김 대표의 캘리그라피 강의를 통해 적성을 찾고 실력을 키워 협동조합을 함께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런 엄마의 도전을 아들 역시 응원했단다. 

이를 통해 오 이사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힐링의 시간을 마련하고, 자신감을 키워 스스로를 위로하는 등 힘이 돼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가지는 등 평생직업을 찾았다.

부산에서 해운업에 종사하던 윤영주(36) 사무장 역시 강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올해 3월 협동조합에 참여해 미래를 위한 걸음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협동조합은 경력단절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고 학생들에게는 교육을 통해 좋아하는 일로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좋아하는 일에 가치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직업으로 삼아 자아발전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이다. 

김 대표는 “경력단절 여성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무언가를 하기에는 자본이 없고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부분을 도우며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해나가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 이사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면서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더불어 좋아하는 것을 배우니 즐거움은 배가 됐다”면서 “혹시 좌절을 겪고 있을 사람을 돕기 위해 협동조합에서 기꺼이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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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귀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를 써내려가고 있는 김 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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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협 다문화가정 나만의티셔츠 만들기 활동.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덕분에 단단한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초기 자본금을 통해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교육을 통해 내부역량을 키워갈 수 있었다는 것.

더불어 사업기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이나 제출해야 하는 서류와 회계정리 방법 등 창업 필수요건들을 알려준 덕분에 협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단다.

이를 통해 마련한 협동조합을 통해 구성원들은 캘리그라피의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단순히 예쁜 글씨를 쓰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제주의 문화와 언어를 담아내는 노력을 통해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중이다. 

전시회와 사회공헌활동, 체험, 재능기부, 기업강의 등 캘리그라피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 이 과정서 김 대표는 캘리그라피 작가로는 처음으로 예술인이 참여하는 국제 행사에 참여해 제주를 알리고, 제주돌문화공원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캘리그라피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으니 김 대표는 “캘리그라피 전문 민간자격증 발급 기관으로 거듭나 활동하는 분들이 함께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자격증 발급을 통해 전문성을 부각하고, 활동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일에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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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주국제아트페어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김 대표.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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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평화인권 인문학콘서트에서 펼친 퍼포먼스.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좋아하는 글귀가 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영원히 지지 않는 꽃보다 시들지 않도록 열정적인 꽃을 피우고 있는 자신이 좋다는 이유다. 그는 이 글귀가 해녀의 숨비소리 같은 감동의 한 줄이란다.

오 이사는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윤 사무장은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말했다. 이어 용기가 필요한 경력단절 여성들을 향해 한마디를 부탁하니 윤 사무장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을 말했다. 

윤 사무장은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는 말처럼 꾸준히 꿈을 향해 가다 보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꿈을 가진 분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오 이사 역시 “첫발을 떼기까지 많은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지만, 이렇게 시작하고 나니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고 말을 보탰다.

김 대표는 “나 역시 40대에 캘리그라피를 시작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함께 나누면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으니 자신감과 열정만 가지고 함께 했으면 한다”며 “우리 협동조합 역시 길이 열려있으니 언제라도 문을 두드려달라. 함께하면 재미있는 일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말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과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협동조합을 키워가고 싶다는 이들이다. 꽃필 차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희망을 피워가는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의 미래가 기대된다.

업체명 : 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고마로 15길 4, 2층
홈페이지 주소 : link.inpock.co.kr/hyoncalli
인스타그램 : jejucalli_coop
대표번호 : 064-721-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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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김효은 作.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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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가고싶다, 김효은 作. 사진=제주캘리그라피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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