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 등장한 제주지역 중국인 성폭행 사건이 피해자의 법정 진술없이 유무죄를 가리게 됐다. 억울함을 호소한 피고인은 작심한 듯 공소유지에 허점을 드러낸 검찰을 맹비난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중국인 A(43)씨를 상대로 28일 항소심 결심공판을 열었다.

검찰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인 A씨는 2019년 12월24일 거주지에서 성관계 요구를 거부하는 중국인 여성 B(44)씨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경찰과 검찰조사를 받고 진술조서까지 작성했지만 재판을 앞둔 올해 3월7일 돌연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 제주는 코로나19로 중국인들이 대거 출국길에 오르던 시점이었다.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법정 출석을 위한 국제사법공조 신청을 하지 않았다. 논란이 이어지자, 검찰은 항소 제기후 뒤늦게 중국에 대한 국제사법공조를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진술서만으로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 형사소송법상 예외사항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7월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석방됐다. 관련 절차에 따라 A씨는 강제출국 절차를 밟게 되지만 검찰은 출국정지를 신청하고 항소했다.

결국 A씨는 석방직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다시 보호되는 사실상의 구금상태에 들어갔다. 출입국관리법 제51조에 따라 도주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외국인을 보호시설에 가둘 수 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A씨는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진술조서를 토대로 법원이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재판부의 제안을 수락해 재판을 이어갔다.

형사소송법 314조(증거능력에 대한 예외)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진술하지 못하면 그 조서 등을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같은 법 제318조(당사자의 동의와 증거능력)에는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을 동의한 서류 또는 물건에 대해서는 진정 성립을 조건으로 증거 채택이 가능하다.

변호인측은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로 피고인은 구금 상태에 있고 불가피하게 조서 증거에 동의한 것이다. 1심은 절차적 문제지만 항소심은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여보’ ‘자기’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범행 수일 전에도 3차례나 성관계를 가졌다”며 “세입자가 있는 집에서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행에 사용됐다고 주장한 흉기를 피해자가 사용하다 나중에야 경찰에 임의제출 했다. 일반적인 피해자의 심리상태로 이 같은 일이 가능하냐. 비현실적이다”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우리는 사귀는 사이였다. 흉기로 B씨를 위협해 성폭행한 적도 없다. B씨가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나에게 접근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어 “국제사법공조를 왜 이제야 신청하냐.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 때문에 10개월 넘게 구금생활을 하고 있다”며 “내가 한국인이었다면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검찰은 “피해자가 수사과정에서 이뤄진 3차례 조사에서 일관되게 진술하고 신체에 폭행 흔적도 있는 점에 비춰 유죄 가능성이 높다”며 피고인에 1심과 같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조서와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며 항소심 선고기일을 11월11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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