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제주4.3재심 사건 관련 국가배상 소송을 방청하기 위해 29일 제주지방법원을 찾은 4.3생존수형인 양근방, 부원휴, 박동수 할아버지(왼쪽부터).
사상 첫 제주4.3재심 사건 관련 국가배상 소송을 방청하기 위해 29일 제주지방법원을 찾은 4.3생존수형인 양근방, 부원휴, 박동수 할아버지(왼쪽부터).

“억울하게 피고인석에 앉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피고입니다. 국가가 책임 져야합니다”

제주4.3 생존수형인을 상대로 한 첫 4.3관련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이 시작되면서 배상의 근거가 되는 피해 입증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이규훈 부장판사)는 29일 생존수형인 양근방(88) 할아버지와 유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3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형사 재심청구를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양 할아버지를 포함해 부원휴, 박동수 할아버지가 직접 현장을 찾아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청구인측 유족들도 방청석에서 자리를 지켰다. 

생존수형인과 유족들은 위법한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구금 과정에서 발생한 아이의 사망, 출소 이후 전과자 신분으로 인한 명예훼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했다.

실제로 오계춘(95) 할머니는 1948년 겨울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10개월 된 아들과 이유도 없이 군경에 끌려갔다. 불법적인 군법회의로 목포형무소에 수감됐지만 아이는 생을 달리했다.

부원휴 할아버지의 경우 농업중학교 재학 당시 군경에 이끌려 옥살이를 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재학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고 구금으로 인한 미래의 피해까지 위자료로 산정했다.

제주4.3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을 앞두고 생존수형인 양근방 할아버지(왼쪽)가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4.3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을 앞두고 생존수형인 양근방 할아버지(왼쪽)가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근방 할아버지는 “중학교 때 1등을 하던 큰 아들이 제약회사 취직했는데 내 범죄경력 때문에 경찰이 계속 찾아가 결국 회사를 그만 뒀다”며 연좌제 피해를 직접 언급했다.

반면 정부법무공단은 원고측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 사실에 대한 불법성이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민사소송의 기준이 되는 소멸시효 완성도 주장했다.

70년 전 각 원고의 개별적인 피해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103억원에 이르는 청구 금액 자체가 과하다고 맞섰다.   

재판부 역시 “원고별로 구체적 입증 내용이 있어야 한다. 포괄적 사실 입증이 될지는 의문이다. 입증과 관련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원고측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민법상 소멸시효는 통상 5년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10년으로 더 길다. 국가 배상 청구는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손해나 가해자를 안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반면 변호인측은 재심을 통해 공소시각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년 안에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며 정부측 주장을 반박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증명력에 대해서는 기존 간첩사건이나 과거사 사건과 같이 피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입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25명의 진술 영상을 법원에 제출했다.

원고측 소송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는 “다른 과거사 사건도 객관적인 증거 없이 당사자 진술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인정한 사례 많다. 국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기존 간첩조작 사건에서도 가족들의 피해가 객관적인 방식으로 현출되지 않지만 진술을 통해 어떤 피해를 받고 명예훼손을 당했는지 확인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심도 있는 자료 검토를 위해 석달 후인 2021년 1월28일 2차 변론기일을 열어 양측의 의견을 다시 듣기로 했다.

생존수형인들은 2017년 4월19일 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해 2019년 1월17일 역사적인 공소기각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를 근거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배상을 하라며 2019년 2월22일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이에 법원은 기한 6개월을 앞둔 그해 8월21일 53억4000여만원 배상을 결정했다. 

2019년 11월29일에는 마지막 절차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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