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7)  제주 노동기본권의 현실 ① 

‘너는 나다’...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이 흘렀지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년 전 서울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산화한 청년 전태일을 기억한다. 2020년 11월 13일은 청년 전태일이 산화한지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제주지역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3회에 걸쳐 제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현황을 돌아보고자 한다. / 필자 주

① 관광산업의 어두운 이면 – 관광서비스 노동자
② 띵동 !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 택배노동자와 과로사 
③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양질의 일자리 보장을 약속하며 유치 된 제주신화월드, 현재의 모습은? 

대규모 관광 개발에는 일자리 약속이 따라왔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개발 사업자가 투자진흥지역에 투자하는 경우 국세․지방세 등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의무 사항으로 일정 부분의 지역 일자리 창출 계획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제주신화역사공원(제주신화월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의 대규모 개발 산업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주신화월드는 2014년 카지노와 워터파크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개발 사업 시행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용인력 5000명중 80%를 제주도민으로 우선 채용할 것을 조건으로 변경 승인을 받았다. 

2016년 당시 원희룡 도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제주신화월드를 투자 유치 상생의 성공 모델로 발표하기도 했다. 제주도민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취업 연계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제주신화월드는 대규모 채용에 앞서 동종 업계 최고의 수준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현재 제주신화월드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처음의 약속대로 그곳의 노동자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을까? 제주신화월드의 고용 영향으로 제주도 관광 산업의 일자리의 수준이 전체적인 상승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주관광서비스노동조합 신화월드LEK(Landing Entertainment Korea)지부는 14일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주관광서비스노동조합 신화월드LEK(Landing Entertainment Korea)지부는 14일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리 회사 자랑 좀 해보자! 
 
50년 전, 청년 전태일이 목도한 16시간동안 골방에 박혀 일하던 미싱사의 현실은 현재에 있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제주에는 관광 산업의 어두운 이면으로써 관광 서비스 노동자의 현실로도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개발 시 난개발 우려에 대한 목소리는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요구에 묻히곤 했다. 난개발은 지양되어야 하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개발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활용되곤 했다. 

2017년 제주신화월드의 공채를 시행하면서 업체에서 밝힌 ‘동종 업계 최고’로 공개된 초임 연봉은 2400~2600만원 수준이었다. 호텔 분야는 그보다 좀 더 낮을 수 있다고 했다. 월 200만원 안팎의 수준이다. 제주신화월드 카지노의 개장 후 3년 동안 임금은 동결되었고,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만 일부 임금 인상이 되었다고 한다. 2018년 제주신화월드 카지노가 매출액의 ‘잭팟’을 터뜨리는 과정에서도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없었다. 

지역에서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일자리의 노동 환경은 전체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제주신화월드 사업자인 람정개발에서 동종업계 최고로 월 200만원을 제시했다는 것은 현재 제주 지역 관광 산업 노동자의 낮은 임금 수준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예시이다. 도내 굴지의 호텔조차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 호봉표를 다시 책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물며 중소규모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조건은 더욱 열악하다. 

제주신화월드 카지노 노동자들의 집회 자리에서 한 노동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회사 들어와서 3년 동안 임금이 제자리입니다. 셔틀버스 정상화를 회사에 요구했지만 노동자를 무시하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내가 좋은 회사 다닌다고 자랑하는데, 진짜 우리 회사 좋은 회사라고 자랑 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관광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구조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제주신화월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향상은 지역의 관광 산업 노동자의 전체적인 노동 조건 향상을 견인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서비스업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이란 

과거에는 실내 흡연이 허용되는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 구역을 지정하여 실내·외 흡연구역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실내 흡연이 버젓이 허용되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신화월드 카지노 업장 내부다. 24시간 3교대 맞교대를 하면서 담배연기 속에서 일해야 하는 카지노 노동자들이 금연 구역 지정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손님들이 카지노 게임을 하며 담배를 펴야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흡연 가능 구역과 비흡연 구역이라도 구분하자는 요구에 대하여도 묵묵부답이다.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보다 고객 유치가 우선인 현장에서 카지노 노동자들은 간접 흡연이라는 유해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최근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버스 노동자가 마스크 착용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하는 보도도 잦다. 카지노 객장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되었다. 마스크 착용의무와 흡연 가능 서비스가 상충되자 카지노는 고객이 흡연 등을 위해 마스크를 내리는 경우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다시 마스크를 착용한 시점에 게임을 이어가도록 딜러들에게 지시했다. 이후 카지노 노동자들은 마스크 착용과 관련하여 고객으로부터 온갖 욕설과 폭언에 노출되는 상황이 늘어났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인권 침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객의 컴플레인에 대한 대응을 노동자들에게 맡겨놓고 있는 것이다. 

건설·제조업에서 노동자의 안전보다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어 노동자의 사고성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처럼, 서비스업에서는 고객 우선 주의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격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업이 고객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해당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 달성되어서는 안 된다. 

고객의 갑질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이 산업 재해로 인정되는 단계까지 와 있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대책은 미비하다. 노동자의 인격 침해에 대한 대응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진행 되어야 한다. 예컨대 고객에 의해 노동자가 폭언, 욕설에 노출되는 경우 가해자와 즉시 분리하고 휴식을 보장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을 통해 조직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신화월드 카지노 노동자들이 최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제주신화월드 사업자인 람정개발과의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람정자본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관광진흥법을 내세우며 탄압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50년 전 전태일이 친구들과 노동법을 읽고 사용자에게 개선을 요구했던 것과 같이 2020년 제주신화월드 서비스 노동자들도 기본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전태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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