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작가 정복언, 두 번째 수필집 '뜰에서 삶을 캐다' 발간

황혼의 나이, 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제주 작가 정복언이 두 번째 수필집 <뜰에서 삶을 캐다>(정은출판)을 펴냈다.

저자는 2016년 시인 등단, 2017년 수필가 등단에 이어 벌써 3권의 작품집을 선보일 만큼 글쓰기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새 책에서는 어느때 보다 일상의 기록에 초점을 맞췄다.

아내와의 산책, 콘택트렌즈 착용기, 호박 모종 심기, 오일장 풍경, TV프로그램에 대한 단상 등 소소할 수 있는 풍경들이 정복언 특유의 정성스러운 필체로 다시 그려진다.

눈에 띄는 점은 이전 글보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눈, 치아, 청력에불면증까지. 그래서 일까. 정복언의 글은 관조적인 감정이 한 층 더 짙게 묻어난다.

비록 걸음은 늦어졌지만, 시선은 한층 깊어졌다. 아담한 정원 풍경, 돌멩이 하나, 백합 한 송이 같은 작은 주변에도 저자의 성찰은 차분하고 또 정성스럽다. 황혼의 석양을 함께 보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은 저자의 진심 어린 감정이다.

나이 들면서 행동반경은 줄어들고 나를 반겨줄 사람도 적어진다. 그러나 자연은 변함없는 정을 베푼다. 마당은 어머니의 품을 잃지 않는다. 온갖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 준다. 심고 매고 뽑는 즐거운 놀이터다. 그러면서 배운다. 생명은 경이롭고 아름답게 순환한다. 머지않아 홍시에 취하고 단풍에 가슴 탈 게다.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가고, 나는 즐겁게 하루를 보내며 다시 맞을 것이다. 인생의 종점에는 나를 기다리는 선물이 있다기에
- <뜰에서 삶을 캐다> 가운데

며칠 전 아내는 대낮까지 별채 현관의 형광등을 끄지 않았다고 타박했다. 맨송맨송 겉도는 말이 오갔다.

"뇌세포가 많이 파괴되어서 그래요."
"그러면 죽을 수 밖에."
"나도 그러고 싶어요."

이런 메마른 대화라도 나눌 말이 있어야 외로운 노년의 길을 터벅터벅 걸을 수 있을 것이다.
...
부부가 해로하는 힘, 그건 아무래도 쫀득한 정인 성싶다. 사랑이 활화산 같은 거라면,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정은 따스하게 지펴 오는 군불일 것이다.
참나무 잉걸이 되고 싶은 날이다.
- <늙음을 나누며> 가운데

김길웅 수필가 겸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에서 "대부분 소재가 '뜰에서 캔 삶'과 무관하지 않아, 자연 친화적이다. 거기다 종국에 존재론적 접근으로 양자가 혼융하는 것, 그의 문학이 깊은 사유에서 빚어나온 것이라 철학의 둘레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그리고 풍부한 어휘 구사와 적확한 표현의 치밀한 문장, 탄탄한 구성력은 장차 정복언의 수필이 확장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라 적시해 준다"고 호평했다.

나아가 "인생은 축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곧 행복이다. 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크므로 원망하며 절망할 때도 있지만, 음악을 듣고 독서에 빠지고 작가는 글을 쓴다"고 당부했다.

정복언은 책 머리에서 "비켜 가지 않는 세월, 남은 나의 가장 젊은 날을 되뇌면서 노을의 전주인 양 병원을 들락거린다. 식사 거르지 않고 굼뜬 걸음이나마 디딜 수 있음에 감사한다. 주어진 과제처럼 사유의 발자국을 좇아 헤멨지만 몇 줄 건져낸 게 없어 허하다"며 "하늘이 맑고 높다. 천연색 저 푸른 천을 끌어다 포근히 생채기를 덮는다면 깊은 한숨이 잦아들까. 따스한 마음의 손길 내미노니 누구라도 혹시 잡아준다면 어설픈 글이 행복해 미소 지으련만"이란 소감을 남겼다.

저자는 1949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출신으로 1972년 공주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단에 입문했다.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 '문학광장'에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다음해 '현대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다. 수필집 <살아가라 하네>와 <뜰에서 삶을 캐다>, 시집 <사유의 변곡점>을 펴냈다. 현재 제주문인협회, 제주수필문학회, 동인脈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40쪽, 정은출판,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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