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돈먹는 하마’ 뼈아픈 성찰부터

“시련 끝에 맞이할 더 큰 영광을 바라보겠다”

함축적이었다. 엊그제 취임한 고은숙 제주관광공사 사장의 이 한마디는 여러 의미를 내포했다. 문장의 앞 부분은 공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보다 더 나빠질까 싶을 만큼 공사는 지금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앞날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더 큰 영광’은 언감생심이다.  

그가 말한 대로 공사의 존재 이유를 따져봤다. 관광산업 육성, 지역경제 발전, 주민복리 증진. 공사 누리집엔 ‘미션’으로 적혀있다. 2008년 설립 이후 미션을 얼마만큼 수행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도민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막대한 혈세를 까먹고 있어서다. 누적 액수로 자그마치 1500억원이라고 한다. 

시련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 중심엔 면세점이 놓여있다. 

시내면세점은 3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올해 사업을 접었다. 지정면세점도 줄곧 내리막 길을 걸었다. 올해 12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99억원을 들여 제주외항에 지은 항만면세점(지정면세점)은 크루즈가 끊기면서 운영비만 날리고 있다. 

황금알을 기대했을 것이다. 오산이었다. 사드, 코로나 19와 같은 외부 요인의 변화 때문 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능력이 모자랐다. 그걸 커버할 카드도 없었다. 모 도의원이 지적했듯이, 공사 지정면세점은 제주관광이 활황일 때도 수익이 줄었다. 

무책임도 한몫했다. 근시안적이었다. 이게 안되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행태가 반복됐다. 늪에서 허우적대다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든 형국이다. 

매번 그럴듯한 논리를 동원했다. 

2015년 7월, 시내면세점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당시 공사는 “중문관광단지의 위상을 다시 드높이겠다”고 큰소리쳤다. “롯데면세점이 제주시로 이전하면서(빚어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귀포시에 쇼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빈말이었다. 그렇게 허가가 난 것 뿐이었다. 2016년 5월 중문단지 롯데호텔에 둥지를 틀었던 공사 시내면세점은 2년도 안된 2018년 1월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로 사업장을 옮겼다. 제주시 이전을 갈망했던 롯데면세점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물밑에서 손을 잡았다는 이른바 짬짜미 의혹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중문단지 위상’을 운운했던 게 찜찜했던지, 신화월드로 이전할 때 공사는 “동일한 지역(서귀포시)에서 장소만 옮기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업계 안팎에선 ‘규모의 경제’ ‘승부수’ 등의 반응도 나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최초 지정면세점 허가를 받을 때, 성산포항 매장에 눈독을 들일 때, 추가로 시내면세점 진출을 노릴 때 어김없이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벌인 이전투구는 묻어두겠다. 

꼿꼿했던 그 결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당시만 해도 도민 여론은 상대적으로 공사에 우호적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JDC에 비해 반감이 덜했다. 하지만 여론은 변하기 마련이다. 

ⓒ제주의소리
시련을 겪고있는 제주관광공사가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 진단과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공사의 1차적인 과제다. ⓒ제주의소리

“차라리 사업(지정면세점)을 포기하고 JDC로부터 100억원을 받아낼 생각은 없느냐”

보다못한 도의원의 다분히 실리적인 제안을 일거에 물리치지 못한 수장의 태도에서 애처로운 공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떡 줄 사람’의 마음은 그 다음 문제다.

타개책으로 ‘입지 개선(지정면세점 장소 이전)’을 구상했던 고 사장은 급기야 면세점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 말이다. 시의적절한 결단도 일종의 리더십이다. 공사 면세점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어쩌면 결단 부족 탓일 수 있다. 앞으로도 도민 혈세를 계속 부어야 한다면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설립 목적인 관광 홍보 마케팅이 아니라 적자 나는 면세점 사업에 집중할 바에는 제주도가 위탁하는 사업만 하라”는 충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취임사를 떠올리게 된다.  

“앞에 있는 시련에 아파하기 보다는 시련 끝에 맞이할 더 큰 영광을 바라보겠다” 

명언을 남기기는 쉽다. 재수감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다. "나를 구속할 수는 있어도 진실을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을 측근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고 사장의 명언이 허언이 되지 않으려면 공사가 왜 시련을 겪고 있는지 철저한 원인 진단과 뼈아픈 성찰이 따라야 한다. 그게 여태껏 공사 존립의 물적 토대가 되어준 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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