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사회적경제, 성장위주 목표에 휘둘리지 말아야 / 김효철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얼마 전 원희룡 지사가 내놓은 송악산 선언을 놓고 말이 많다. 대권을 향한 존재감 살리기라는 비판과 함께 구체적 실행계획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잇단 난개발로 옛 모습을 잃어가는 제주를 생각할 때 송악산 선언이 제주 사회를 확 바꾸어놓은 큰 전환점이 된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기엔 선언이 선언에만 그치지 말아야 한다.

원지사가 내세운 또 다른 선언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다. 원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때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제주를 36호 공약으로 밝혔다. 스스로를 사회적경제 시이오(ceo)에 가깝다고 자부하는 원지사가 내세운 공약이었기에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만들기에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시범 도시를 넘어 선도도시를 꿈꾸는 제주도 사회적경제 상황을 볼 때 공약은 공약일 뿐 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지난 10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주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을 담은 2차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 기본계획이 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위원회 의결로 확정됐다. 기본계획수립 과정은 쉽지 않았다. 중간보고와 최종보고에서도 명확한 비전 제시를 비롯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계획을 세울 것을 바라는 요구가 높았다. 2차 기본계획은 도사회적경제위원회에서도 한 차례 심의 연기하며 보완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만큼 제주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높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난 5년(2016~2020) 제주 사회적경제에 대한 평가는 선도도시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번 2차 기본계획에서 평가한 1차 종합계획 실적을 볼 때 사회적경제 육성을 위한 예산 집행률은 투자계획 대비 27.3%에 그쳤다.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과 사회적경제 비지니스 고도화 사업 2개 분야 29개 세부사업에 모두 1197억9000만 원을 들인다는 계획이나 실제 집행은 326억8700만 원이 전부다.

2015년 251개인 사회적경제 기업을 2020년 2,000개로 늘리고 1만3,156명을 위한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도 2019년 말 기준 470개 기업이 2,820명을 고용한 데 그쳤다.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사회적경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0.64%에서 5%로 늘린다는 목표 역시 전체 사업체 매출액 대비 0.22%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사회적경제 선도도시를 만든다는 제주도의 공약은 지난 5년간의 평가로 미뤄보아 공약에 그칠 위기에 놓였다. 과도한 목표 설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계획, 실천 노력이 부족했던 결과다. 앞으로의 사회적경제는 1차 기본계획에서 나타났던 양적 성장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을 향한 고민과 실천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는 어려움 속에 피우는 희망이다. ⓒ제주의소리

수치로만 볼 때 사회적경제 선도도시를 만든다는 공약은 공약으로 그칠 위기에 놓였다. 과도한 목표 설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계획과 실천 노력이 부족한데서 나온 결과다.

예산 집행이나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행정 체계 마련 등 제주특별자치도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 부분은 분명하다. 예산 집행률이 낮은 것도 그렇고 전국 대부분 광역지자체에 사회적경제과가 있으나 제주특별자치도는 아직 팀제에 머물고 담당 인력도 3명이 전부다. 그나마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자리를 옮기는 일도 많아 선도도시를 바라는 행정체제로는 빈약하다. 사회적경제가 단순히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나 일자리, 문화, 환경보전 등 공공영역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때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적절한 예산 집행이나 행정지원체계 마련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지난 5년이나 앞으로 5년 후 있을 사회적경제 성패에 대한 책임을 행정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사회적경제는 국가와 시장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 영역임과 동시에 그 주체는 분명히 민간이다. 국가 주도나 시장주도로 사회적경제가 커나갈 수는 없는 이유다. 아쉬운 예산 뒷받침이나 행정지원은 따로 비판하더라도 사회적경제를 스스로 키워나가는 힘은 사회적경제 주체나 도민들에게 있다. 정부 지원이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마중물이 될 수는 있으나 정부 지원만으로 사회적경제가 지속가능할 수는 없다. 나아가 사회적경제기업은 정부지원을 받고 살아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벗어야한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적경제 이념을 다시 생각해볼 때다.

이를 반영하듯 2차 기본계획은 도민이 주도해 제주 공동체 이익을 실현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적 경제 육성과 성장을 이끈다는 기본방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도민이 주도하고 책임지는 원칙을 바탕으로 민관 협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2차 기본계획을 통해 1차 계획에서 나타났던 지나친 양적 성장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을 향한 고민과 실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성장주의에 신음하는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마저 사회가치 추구라는 본질보다는 성장위주 목표에 휘둘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1차 계획 때 과도한 기대를 바탕으로 설정했던 목표를 크게 낮춰 잡은 것은 다행이다.

2차 기본계획을 보면 사회적경제 기업 수를 현재 470개에서 목표 연도인 2025년 834개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또 일자리도 2,820명에서 3,779명으로 늘린다. 1차 계획보다는 한참 낮은 지수이거니와 실제 증가폭도 초라해 보이나 차라리 현실성은 있다는 생각이다.

2차 기본계획이 새롭게 밝힌 비전은 ‘사회적 가치 확산으로 공존하는 제주’다. 코로나로 인한 공동체 붕괴나 일자리 감소, 환경 파괴, 경제 양극화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며 공존 가능한 제주사회 만들기를 요구하고 있다. 무겁지만 사회적경제가 지켜나가야 할 목표이자 과제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2차 기본계획이 변화와 함께 공존하는 제주사회를 대비한 사회적경제 전략과 실천계획으로서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본계획을 만들 때부터 다양한 요구와 진통이 있었음이 이를 말해준다. 내년 시행을 앞둔 2차 기본계획이 5년 동안 실행 과정에서 변화하는 환경과 여건을 반영해 세부 실천 전략과 계획을 끊임없이 보완해야 할 이유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사회적경제는 어려움 속에 피우는 희망이었다. 19세기 유럽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겨났으나 이들을 챙겨주는 사회 시스템은 없었다. 국가도 시장도 실패한 시절이다. 그때 사람들은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문제를 풀어갔다.

또 다른 위기와 변화 시기를 맞고 있는 제주사회가 사회적경제 선도도시라는 약속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효철 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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