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왼쪽)과 박찬호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오른쪽)이 지난 10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국인 성폭행 혐의 사건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국정감사까지 등장한 제주지역 중국인 성폭행 사건에 대해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하면서 공소사실 유지에 집중해온 검찰이 머쓱하게 됐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중국인 A(43)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11일 기각했다.

검찰 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인 A씨는 2019년 12월24일 거주지에서 성관계 요구를 거부하는 중국인 여성 B(44)씨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경찰과 검찰조사를 받고 진술조서까지 작성했지만 재판을 앞둔 올해 3월7일 돌연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 제주는 코로나19로 중국인들이 대거 출국길에 오르던 시점이었다.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법정 출석을 위한 국제사법공조 신청을 하지 않았다. 논란이 이어지자, 검찰은 항소 제기후 뒤늦게 중국에 대한 국제사법공조를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진술서만으로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 형사소송법상 예외사항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7월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석방됐다. 관련 절차에 따라 A씨는 강제출국 절차를 밟게 되지만 검찰은 출국정지를 신청하고 항소했다.

결국 A씨는 석방직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다시 보호되는 사실상의 구금상태에 들어갔다. 출입국관리법 제51조에 따라 도주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외국인을 보호시설에 가둘 수 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A씨는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진술조서를 토대로 법원이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재판부의 제안을 수락해 재판을 이어갔다.

형사소송법 314조(증거능력에 대한 예외)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진술하지 못하면 그 조서 등을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같은 법 제318조(당사자의 동의와 증거능력)에는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을 동의한 서류 또는 물건에 대해서는 진정 성립을 조건으로 증거 채택이 가능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여보’ ‘자기’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범행 수일 전에도 3차례나 성관계를 가졌고 범행 직후 집을 나서지 않고 피고인과 함께 있있던 점 등에 의문을 제기했다.

피고인이 범행에 사용했다고 주장한 흉기를 피해자가 직접 사용하다가 나중에야 경찰에 임의제출 하고 형사 고발도 범행 후 며칠이 지나서야 하는 등의 행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도 언급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 휴대전화 조사도 제때하지 않았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며 항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정작 A씨에 대해 출국정지와 보호처분 조치가 내려져 피고인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상고할 경우 출국정지 조치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의 경우 출국정지와 보호조치가 모두 해제돼 A씨는 강제출국 절차를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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