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6차산업人] (17) 같이의 가치로 제주 6차산업 앞장서는 이종인 보롬왓 제주한울영농조합법인 대표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바람 부는 드넓은 밭, 제주 중산간 턱진 자리에 얹힌 텅 빈 황무지 땅 위 메밀을 키우면서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누구나 가고 싶은 명소를 만들어 낸 이종인(44) 제주 보롬왓(제주한울영농조합법인) 대표.

조금 허술하더라도 자신만의 진심어린 가치를 담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일념으로 33만578여㎡(약 10만 평)의 땅에서 농사를 뛰어넘어 농업을 실현하고 있는 6차산업인이다.

메밀을 중심으로 유채, 튤립, 보리, 라벤더, 수국, 맨드라미 등 다양한 작물을 기르며 사람들을 끌어들여 제주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종인 대표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제주의소리
이종인 제주 보롬왓 대표는 메밀을 통해 제주를 알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며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6차산업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농업을 실현 중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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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롬왓에서 재배하고 있는 메밀. 수확된 메밀은 가루를 비롯한 제조과정을 거쳐 미스트, 라떼 등 다양한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제주의소리

이 대표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곤경에 빠진 친구를 도우면서부터다. 농업 후계자인 친구를 돕다 2010년 안정적으로 다니던 금융계를 과감히 떠나 본격적으로 메밀 경작에 뛰어든 것. 

고교 시절 농사짓던 집안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생계 곤란에 처하면서 농사는 절대 안 짓겠다고 다짐했건만, 결국 돌아오게 된 곳은 거무튀튀한 밭 위였다. 든든한 배경이나 부모의 지원 없이 시작한 농사는 단단한 마음가짐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가진 땅이 없어 임대 방식으로 농사지을 수밖에 없었던 탓에 수지 균형이 맞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제주 시내 토지가가 천정부지로 뛰면서 농사로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묘안을 떠올렸다. 제주도 관계 법령에 따라 농지를 보유할 경우 농경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점을 파고든 것.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인근 토지 소유자들을 만나 농사를 지으며 토지를 관리하겠으니 무상으로 임대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토지 문제를 해결하고 메밀을 기르던 그는 한가지 문제를 더 발견했다.

열심히 농사지은 메밀이 헐값에 넘겨지는 탓에 가면 갈수록 농민이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 이 같은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한 끝에 농사 기반의 1차 산업에 가공을 더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더불어 제주가 국내 제1의 메밀 주생산지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봉평군보다 알려지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많은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제주이기 때문에 축제를 연다면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 것. 

보롬왓에는 메밀밭 외에도 일년 내내 갖가지의 경관작물들이 도민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인하고 있다. 사진=보롬왓. ⓒ제주의소리
보롬왓에는 메밀밭 외에도 일년 내내 갖가지의 경관작물들이 도민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인하고 있다. 사진=보롬왓.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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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롬왓의 맨드라미는 9월부터 11월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제주의소리

이 대표는 절치부심하고 2015년 제주가 지닌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메밀 축제를 열어 최대 생산지임을 알림과 동시에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농사에만 머물러 있던 농촌 흐름을 뒤집어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주에 알린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는 척박하고 외진 곳에 사람이 찾아오겠냐는 주변 우려에도 굴하지 않고 △이윤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긴다 △하나를 주고 둘을 얻는다 △자본의 힘보다 차별화된 아이템을 믿는다 등 세 가지 철칙을 세우고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면세점에서 버려지는 나무 팔레트를 얻어와 밭을 꾸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평소 접하기 힘든 메밀 도정 모습을 보여줘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넓은 대지에 펼쳐진 메밀꽃과 함께 체험장을 운영하니 방문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첫해 2000명 방문을 시작으로 입소문을 타 이듬해 2만5000명을 기록하고, 꾸준히 성장해 올해 35만 명이 방문하는 성과를 달성한 것. 여행사나 다른 자본 지원 없이 오로지 농부의 힘으로 일궈낸 쾌거다. 과도하게 꾸미지 않은 제주 자연과 어우러진 농촌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이 대표는 “위기 속에 기회는 항상 숨어있다. 답만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문제 자체를 의심해 생각을 수평적으로 넓혀 가는 트리즈 기법을 농사에 접목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리즈는 창의적 문제해결이론을 일컫는 말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보다 문제가 생겨난 근본적인 모순을 찾아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론이다. 

이를 통해 메밀 판매 소득을 높이기 위한 품질개선이나 원가절감, 생산확대 등 직접적 문제 해결보다 휴경 기간을 활용해 체험과 함께 가공 접목시켜 소득원을 창출하는 등 농사 근본을 통째로 바꾸는 창조적 혁신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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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곡물 안에 들어가서 놀 수 있게 만든 '메밀 놀이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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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롬왓에서는 깡통열차를 타고 밭을 돌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메밀 놀이터를 만들어 아이들이 만지고 놀 수 있도록 해 접하기 힘든 통메밀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고, 재배하는 꽃들을 활용해 미스트, 핸드크림 등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법을 꾀한 것. 여기엔 메밀이 여문 모습을 보여주고 감동을 끌어내 자연을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도 깃들었다.

이 같은 창의력이 더해진 보롬왓은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온 끝에 올해 ‘제8회 농촌융복합산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서 전국을 상대로 최우수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같이의 가치에 농업을 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조합원과 직원 30여 명이 10년간 흘린 구슬땀의 결실을 거둔 것이다.

이처럼 쉬지 않고 달려오는 과정서도 손 놓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제주 농촌에 청년 유입을 이끌겠다는 다짐이었다. 제주농업 발전을 통해 청년 인구 유입을 이끌고 메밀 산업을 성장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배경 없이 성장해온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강연을 통해 희망을 틔우겠다는 목표도 가졌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와 함께 강연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상고 출신인 이 대표와 공고 출신인 김 교수는 ‘상공인’이라고 이름 붙인 강연을 진행하고, 청년인생학교를 운영하는 등 청년들을 힘껏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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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대표가 설립한 식물은행. 식물 재배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갈수록 악화되는 지구환경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자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됐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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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롬왓 입구를 들어서면 수염 틸란드시아 터널을 만날 수 있다. 공중식물로 공기 중 수분과 먼지를 먹고 자라는 수염 틸란드시아는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보롬왓은 환경 문제를 자연스레 인식할 수 있도록 터널을 조성했다. ⓒ제주의소리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오랜 꿈이었던 은행장을 할 생각이다.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식물은행을 통해 개인 차원의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꿈꾸는 식물은행은 씨앗 파종과 구근 심기, 나무 삽목 등을 통해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자는 생각에서 착안됐다. 식물을 성공적으로 길러냄으로써 자존감 향상을 돕고 환경에 대한 의식을 심는다는 목표다.

식물은행은 화분과 흙을 구매한 손님에게 무료로 통장을 개설해 메리골드 씨앗을 대출해주고, 꽃을 피워 대출했던 씨앗을 갚게 되면 예금이자를 더해 튤립 구근을 제공한다. 나아가 튤립을 키워 구근을 수확해 오면 수국나무 가지를 주고, 꺾꽂이를 통해 뿌리내림에 성공하면 예금만기로 ‘플랜트 마스터’ 자격증을 수여하는 제도다.

이 대표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식물은행 과정을 진행했는데, 처음엔 참여한 학생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자라나는 새싹을 보며 정성을 들이는 등 변화를 끌어냈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심적 위로, 환경 문제 인식 개선 등 효과를 보였다. 나중엔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씨앗을 심어 싹을 길러내고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는 생명의 근원, 농사의 가치를 위해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 보롬왓. 새싹 같은 청년들의 희망을 틔우기 위해 건강한 땅이 되어주는 보롬왓의 미래가 주목된다.

제주 보롬왓(제주한울영농조합법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번영로 23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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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가루와 라벤더 핸드워시, 메밀·수국·라벤더 스프레이 등 보롬왓에서 재배하는 작물로 가공된 제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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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롬왓 농장 내부 카페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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