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8) 제주 노동기본권의 현실 ②

‘너는 나다’...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이 흘렀지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년 전 서울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산화한 청년 전태일을 기억한다. 2020년 11월 13일은 청년 전태일이 산화한지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제주지역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3회에 걸쳐 제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현황을 돌아보고자 한다. 

① 관광산업의 어두운 이면 – 관광서비스 노동자 
② 띵동 !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 택배노동자와 과로사 
③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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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원종 추모, CJ대한통운 규탄 제주지역 대회'가 지난달 17일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아침 일찍 배달되는 택배,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요즘 “갔다올게”라는 한 보험사의 광고문구가 눈에 띈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당연한 일상을 이루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해 2,4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노동재해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제주시청 앞에는 제주지역 택배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근무 도중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그 노동자가 소속되어 일했던 국내 택배업계 1위의 CJ대한통운에 대한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전국에서 올 한 해 동안만 10명의 노동자가 택배운송 중 장시간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 과로사만 헤아린 죽음의 숫자이고, 사회적으로 알려진 죽음의 숫자만 그러하다.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면서 국민 1인당 택배이용률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한 해 국민 1인당 평균 49회의 택배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경제활동인구수로 계산하는 경우 1인당 연간 100회에 달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 수치는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에서도 택배 이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밤 12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 귀갓길에 마주치는 택배차량부터 새벽녘에 도착한 “문 앞에 배송하였습니다”라는 문자는 도내 택배업이 사실상 24시간 근무체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계속 문제가 되자 택배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가 진행되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노동자의 과로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장시간노동을 포함하여 교대제업무, 휴일부족업무, 야간업무, 육체적 고강도 업무 등 부담업무가 많은 경우 과로사와 업무사이의 연관성을 크게 판단하고 있다. 

택배노동자의 실태조사 결과 택배노동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택배노동자의 운송업무 외의 것이 존재했다. 

택배노동자의 그림자 노동 

전국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의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택배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으로 나타났다. 산재보상보험법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12주간 동안 1주 60시간이 넘는 경우 만성과로로 인정하고 있다. 택배노동자가 평균적으로 모두 과로에 노출되어 있다는 수치였다. 

노동시간이 높은 이유는 택배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감내하는 물류의 양도 그러하지만 그들이 배송을 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물류를 분류하는 업무까지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는 위탁계약형식을 체결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업체와의 위탁계약에서 운송비로 건당 수수료를 받을 뿐 분류작업에 대해서는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동안 업계관행으로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의 것으로 떠밀려져왔고, 최근 물량증가로 인하여 분류작업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하루의 업무 중 평균 40%가량을 분류작업에 투여하고 있다고 한다. 분류 작업이 그림자 “무료 노동”으로 이뤄지고 있고, 이로 인해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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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에서 근무하는 김지환(43)씨. 어깨에 짊어진 박스만큼이나 택배노동자들의 삶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을!

최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이슈가 되면서 택배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 택배를 이용하는데 결과적으로 택배노동자의 과로로 이어지는 구조를 비판하기 위한 것일테다. 

도내에서 택배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약 1000여명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추정되는 이유는 아직까지 택배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기준으로 한 도민들의 택배만족도 조사사업이 있었지만 실제 종사자에 대한 노동환경 등에 조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아직까지는 도내에서 택배노동자의 과로와 관련된 드러난 사고는 없지만, 택배업계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언제라도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조속한 실태조사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50년 전 전태일이 준수하라고 외치던 근로기준법은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택배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적용도, 주 40시간의 적용도, 휴일휴게시간의 보장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배송료로 결재되는 2,500원. 그리고 제주도선료 추가로 결재되는 추가배송료. 우리가 지불하는 배송료가 과연 정당하게 배분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자.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지 말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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