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59) 바다주름살/ 고혜영

섭지코지 뒤편 바다 ⓒ김연미

물질 작업에도 은퇴가 있으시대요
칠십 년 물질 생활 퇴출을 당하던 날
울 엄마 흐르렁대며 바다처럼 우셨대

그날부터 울 엄마 섭지코지 찾으신대
갱이발 문어발 뒤뚱뒤뚱 걸음으로
일출봉 뜨고 지는 해 등짐으로 지신대

내 다린가 미역 다린가 마른 뼈 만지시며
오늘도 장판을 펴고 섭지 바다 파는 엄마
구십 년 뒤척인 바다에 주름살이 더 깊다

- 고혜영, <바다 주름살 전문> 전문

내게도 해녀였던 시어머님이 계시다. 눈 뜨면 밭으로, 해 뜨면 바다로 나가시던 분이다. 미역철이면 미역을 건져 올리고, 소라철이면 소라를 잡으셨다. 태풍보다 먼저 오는 너울성 파도 치는 날이면 바다에 나가 감태를 주워 모으셨다. 작은 마을 골목길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셨던 어머님. 고단했던 어머님의 삶을 우렁우렁 지탱해 주었던 게 뭘까, 가끔 생각을 하다 그만두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의 끈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았던 고혜영 시인의 시집 [미역짐 지고 오신 바다]를 읽는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단숨에 써 내려간 듯한 시편들을 읽다보면 바다의 짠 물기 가득 배어 나와 괜스레 눈가에 손이 가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의 햇살 같은 시어들이 있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칠십 평생을 해녀로 살면서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물질을 하지못하게 되었을 때 일출봉이 보이는 섭지코지 한편에 ‘장판을 펴고 섭지 바다’를 팔기 시작하신 어머니. 바다를 유영하며 어류처럼 해초처럼 바다를 건져 올렸던 해녀의 마지막 도리처럼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장판을 펴신 것이다.

자식된 도리는 부모님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따라가며 보살펴 드리는 것. 바짝 마른 미역 줄기처럼 햇빛에 그을려 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이야 ‘바다 주름살’ 그보다 더 나을 것도 없지만, 시인은 오늘도 어머니의 모습을 묵묵히 시로 그려낼 뿐이다. 글은 기록하라고 만든 것. 기본에 충실한 시인의 정진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