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힘내라! 내 또래의 20대 청춘들이여 / 고대산 

내 또래의 청년들 사이에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 중에 “~ 때문에 죽겠다” “~라서 죽고 싶다” 등의 말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1위, 전 세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인구조사 수치(World Population Review)에 따른 것으로 21세기의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의 사회 경쟁 풍토가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큰 짐이 되고, 결국은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압박을 가한 탓이 크다. 물론 그 외에도 학교폭력 등 다양한 사유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살률은 실제로는 10대 청소년보다 20대~30대가가장 심각하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글쓴이 고대산(23, 사진 가운데)이 2018년 여름, 멕시코의 몬테레이 공과 대학교 탐피코 캠퍼스에서 현지 학생들과 찍은 기념사진. 당시는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잡은 덕분으로 멕시코가 16강 진출이 확정됐던 시점이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검색사이트 구글에 ‘Suicide rate of South Korea’ ‘대한민국 자살률’을 검색해 보면 아주 특이한 수치를 보게 된다. 당연히 경험이 부족하고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혹독한 입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중·고등학생 등 10대 청소년들이 자살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2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률이 41.3%(세계보건기구 WHO)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게 된다. 다들 가장 높을 것으로 예단했던 10대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중 자살률은 27.1%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 힘든 입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20대의 청년들의 자살률이 더 높을 수 있나?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20대면 성인이고 청소년과 달리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할 나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막 사회에 진출한 20대 청년들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질풍노도의 세대들이다. 그런 20대들의 자살 사건은 안타깝게도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에 비해 우리 사회가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20대 청년들이 무엇이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 자살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장 큰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실과의 충돌 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OECD국가 교육과정을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의 적성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다. 만일 어떤 학생이 수학을 못하면 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아가는 충분한 시간을 준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은 어떤가? “대학입학 수능시험을 잘 봐야한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가야 인생이 성공한다” 등 청소년들에게 답을 미리 정해준다. 그렇다면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 다음은?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무책임하다. 

20대 청년들의 고민과 혼란, 10대 때보다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거기에 대한 도움을 주는 사회적 시스템은 너무 부족하다. 거기에다 대한민국 사회는 개인의 심리치료, 혹은 개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터부가 분명히 있다. 

자살이라는 선택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심리적 고통을 반복하고 버티고 버티다 일어난다. 심각한 우울증세로 이어진 후 그다음은 천천히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린다. 깎아 내릴 만큼 깎아 내린 후 마침내 자존감이 제로가 되는 순간, 너무나도 어둡고 외롭고 차가운 길바닥 같은 암울한 공간에 내버려 지게 된다. 심리적으로 말이다. 이 공간은 나에게도 한때 익숙했던 곳이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캐나다로 진학한 대학에서 2학년을 맞은 어느 여름. 난 그 차가운 공간에 2달 동안 갇혀 있었다. 나 스스로 삶의 가치가 제로라고 확신이 들었을 때 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만약 오늘 죽는다면, 넌 무엇을 하다 죽을래?” 였다. 그 순간 난 내가 초중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우리 가족이 살던 중국 상하이에서 베트남까지 버스를 타고 간 기억을 떠올렸다. 번뜩하고 “난 죽더라도 여행을 하다 죽을래.” 그리고 짐을 쌌고 토론토 아파트를 떠나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21살이었다. 지갑에는 돈 한 푼 없었고 유일 한 게 있었던 건 멕시코 동쪽끝에 있는 해변이 아주 아름다운 탐피코라는 마을의 목적지 주소밖에 없었다. 탐피코에는 나의 유일한 멕시코 친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히치하이킹 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미국 땅을 건너 남미 멕시코까지 땡전 한푼 없이 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뭘 먹고? 어디서자고? 교통은? 비자는? 걸림돌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죽을 각오로 나선 나에겐 현실적인 벽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먹을 게 없으면 굶으면 되고, 잘 곳 없으면 밖에서 자면 되고, 탈것이 없으면 히치하이크라도 해보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비자? 그것 역시 대한민국 여권만 있으면 웬만한 국가는 무비자로 갈 수 있어 문제가 안됐다. 

그렇게 나는 해냈다. 나는 캐나다를 출발한지 20여일 만에 약 4,500km의 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멕시코 탐피코의 친구 집에 도착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탐피코에 도착해서도 인근에 있는 멕시코의 어느 대학 여름 캠프에서 어린이들에게 동양문화(한국, 일본, 중국문화)를 가르치며, 하루에 밥 두 끼를 해결했다. 그리고 여름캠프가 끝나면 토론토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대학 측과 어느 학부모가 공동으로 후원해주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하필 그 당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겨 멕시코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함께 일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 달 동안 매일 어딘가로 초대받았다 누구 조카의 생일 잔치며, 남미에서 여성이 16살 되는 성인식을 킨센니에라라고 하는데 이런 성인식에, 어느 할머니의 생신 파티에, 그 외에도 각종 파티나 장례식까지 한달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문화와 그리고 사람을 경험했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캐나다 토론토에서 멕시코까지 무전여행을 하던 당시의 사진들. 왼쪽 위 사진은 히치하이킹으로 멕시코로 이동하던 중 길에서 만난 푸드트럭에서 하루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푸드트럭 주인으로부터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누에보 라레도, 멕시코 국경까지 가는 버스표와 미국돈 50불을 받았다. 가끔은 트럭 짐칸에 얻어 타기도 했다.(왼쪽 아래 사진). 종이 박스를 재활용해 만든 표지는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면서 내가 늘 들고 다녔던 것(오른쪽 사진)이다. ALMOST THERE (거의 다 왔어) 라고 적었다. 힘들때마다 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떠올리며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멕시코 몬테레이 공과 대학교 탐피코 캠퍼스의 여름캠프에서 동양문화를 담당했던 고대산(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2018년 여름방학 주5일 하루 4시간 동안 현지 어린이들에게 한국·중국·일본 문화와 언어를 가르쳤다. 나는 한국인이면서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중국에서 자랐기에 한중일 문화를 전하기엔 내가 제격이었다. 어린이들은 특히 딱지 만들기와 종이 접기를 너무 좋아했다./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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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몬테레이 공과 대학교 탐피코 캠퍼스 여름캠프 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했다.(앞줄 왼쪽에서 5번째가 고대산)이다. 캠프의 모든 것을 대학생들 스스로 진행 하는점이 특이 했다. 대부분 또래들이라 금방 친해졌다. 흰옷은 스포츠담당 대학생팀 리더, 초록색 옷은 고등학생 인턴들, 그리고 검은색 옷은 수업과 캠프 진행을 담당했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불과 두달 전 내가 스스로 평가한 나의 자존감이나 스스로의 가치가 제로였다면, 이 여정을 통해 내 가치는 100, 아니 그 이상을 추구하게 되었다. 토론토로 돌아온 나는 완전히 변해있었다. 미래의 꿈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죽을 각오로 노력 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나는 현재 복수 국적을 갖고 있다. 나는 지난 2018년, 군 입대를 위해 아버지의 고향이자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제주도로 돌아왔다. 해병대 장교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신체검사에서 평발 판정을 받아 4급을 받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임명 받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발령 받아 제주국제공항에서 근무했다. 지금도 코로나19  때문에 캐나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학 3학년 과정을 제주도에서 온라인으로 수업 받고 있는 중이다. 

현대 철학자 앨런 와츠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와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 유일한 진실은 현재 이 순간” 이라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래와 과거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로지 지금 하고 싶은 것,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20대의 또래 친구들이 있다면 난 물어보고 싶다. 만약 지금 너의 가치가 제로이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만약 오늘 네가 죽는다면 무엇을 하다 죽을래?”라고 말이다. 더 잃을 게 없다는 것은 바꿔 생각하면 이젠 얻을 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앨런 와트가 말한 것처럼 과거와 미래 같은 것은 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죽을 각오로 달려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스무 살은 그 어떤 것보다 무섭고 강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런 20대 청춘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죽을 각오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지닌 상상 이상의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힘을 내라고, 앞으로 살길은 멀었다”고.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대형 트럭의 기사님들은 히치하이커의 친구라고도불린다. 트럭기사님들은 매일 장거리주행을 해야한다. 약 8시간에서 13시간 동안 혼자 운전을 해야돼 트럭 내부에는 이단 침대, 냉장고, 티비 등을 갖춰 놓아 마치 캡슐 모텔을 닮았다. 기사님들은 장거리 운전에 이야기할 대상이 필요했고 히치하이커에게는 장거리를 이동할 교통수단이 필요해 히치하이크는 1960년대 부터 이어져온 문화다. 히치하이커와 트럭 기사님들 사이엔 무언의 우정 같은 것이 있다. / 사진=고대산 ⓒ제주의소리

 

* 글쓴이 고대산(23)은?

고대산
고대산

고대산은 제주에서 태어나 생후 5개월 쯤부터 중국에서 생활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제주도가 고향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1980년대 일찍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상하이에 정착하면서 글쓴이도 초·중·고를 중국에서 보냈고 대학은 캐나다로 유학 중이다. 디아스포라학 그리고 이슬람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에서 올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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