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제주4.3생존수형인 재심사건 무죄 구형...김정추 할머니 “그때는 부끄러웠다”
제주4.3 재심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사상 첫 무죄 구형이 이뤄지면서 70년 넘게 한 맺힌 삶을 살아온 생존수형인들도 비로소 웃음을 보였다.
제주지방검찰청은 16일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두황(93) 할아버지 등 4.3생존수형인 8명에 대한 재심사건 결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부산에서 딸과 함께 법정을 찾은 김정추(90) 할머니는 법정에서 자신을 서귀포시 하효마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고향에서조차 출신을 숨기며 살아온 모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김 할머니는 1947년 해녀 가입 원서에 이름 세 글자를 쓰면서 4.3의 광풍 속에 휘말렸다. 바로 옆에는 4.3재심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오희춘 할머니도 있었다. 당시 이들은 17세 소녀였다.
이 문서가 남조선노동당 가입 원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군경이 가슴에 총을 겨누고 배후를 캐물었다. 졸지에 남로당 당원이 된 김 할머니는 서귀포경찰서로 끌려갔다.
1948월 영문도 모른 채 군법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구금 이유는 물론 공소 사실조차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불법 재판이니 판결문도 있을 리 만무했다.
법정에 선 김 할머니는 “부산에서 왔다. 나는 31년생 서귀포 하효 사람이다. 부산에서 70년간 살면서 제주를 숨겼다. 징역살이 한 여자가 대접도 못 받을까봐. 그때는 부끄러웠다”며 흐느꼈다.
김 할머니는 “어머니 생전에 제주를 몇 번 찾았지만 4.3이 두려워 마을 사람들에게 얼굴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17살 처녀가 왜 교도소 끌려갔는지 그동안 하소연 할 곳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검찰 무죄 구형직후 이제 제주에 살 것이냐는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의 질문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심 청구 과정에서 고인이 된 故 변연옥 할머니도 생전에 4.3이야기를 가족들에게 꺼내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경기도에 터를 잡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난 아픔을 이겨내며 70년을 버텨왔다.
故 변연옥 할머니의 딸 이소향씨는 “어머니가 평생 응어리진 마음으로 살았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뒤늦게 모든 아픔을 잊었노라고 한 어머니 말이 더욱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더 늦기 전에 살아계신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바란다.제주를 넘어 모든 국민이 4.3이 어떤 사건인지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故 변연옥 할머니는 재심 개시 결정을 앞둔 7월2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앞선 2월에는 故 송석진 할아버지도 영면에 들면서 2차 재심청구인 8명 중 2명이 재심 판결을 앞두고 생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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