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人터뷰]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하는 강우일 주교...“제주의 자연과 환경 그대로 둬라”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교회와 성직자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기쁘게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직무유기입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사회적 약자들 편에 있다. 어떤 현안에서도 성직자의 양심에 따라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강우일(76) 베드로 주교. 이미 제주사회의 어른인 그가 지난 18년의 천주교 제주교구장을 퇴임하면서 건넨 말이다.

강 주교는 퇴임식을 앞둔 13일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한 시간 가량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1945년 10월 서울 태생인 강 주교는 경기고와 일본 동경 상지대를 거쳐 1973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2월에는 주교 수품을 받았다. 당시 만 41세였다.

2002년 10월 김창렬 주교에 이어 네 번째로 제주교구장 자리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제주와의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강 주교는 부임 직후부터 4.3 문제를 수면 밖으로 끌어냈다. 4.3 UN 인권 심포지엄에서 기조 발제를 하고 4.3의 정의를 통한 사회치유 한미공동위원회 미국 방문단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제는 제주4.3이 많이 알려졌지만 이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4.3을 겪은 분들의 아픔과 상처를 속속들이 후손들이 알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1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날의 기억을 후손들이 기억하도록 더 많은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강 주교는 찬반 갈등이 격화된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문제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는 강정생명평화대행진 행렬에 합류해 직접 걸으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24명이 연행된 2015년 1월31일 해군 군관사 철거 과정에서 망루에 직접 오른 일화도 있다. 칼바람 속에서도 강 주교는 주민들과 대화화고 경찰에는 안전을 요구하며 추가 충돌을 막았다.

그해 9월에는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성금을 십시일반 모아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세웠다. 강 주교는 초대 센터장을 맡아 참된 평화를 나누는 배움의 장으로 이끌었다. 

“강정 주민들은 그동안 너무 고생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반된 생각과 자세를 하루아침에 하나로 모으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프란체스코 평화센터를 건립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는 곳입니다. 당장 드러나지 않지만 서서히, 조용히, 의미있는 작업들이 이 곳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지역사회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제2공항 건설과 각종 난개발에 대해서는 ‘제주의 환경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라’며 훼손의 가속화를 우려했다.

“18년 전 부임하고 제주의 자연을 몸소 겪으면서 대통령도, 이건희 회장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요. 자연은 돈으로 생산해낼 수 없습니다. 파괴되면 재생과 회복이 불가능하죠.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손을 대지 않는 일입니다. 이제는 개발이 아니라 훼손된 환경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을 앞둔 강우일(76) 베드로 주교가 13일 제주 카톨릭회관 제주교구청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퇴임에 따른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잘 알려진 천주교의 아픈 과거 ‘신축교안(辛丑敎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강 주교가 2002년 제주교구장 취임과 동시에 대외적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신축교안에 대한 사과였다. 

신축교안은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란으로 '이재수의 난'으로 불린다. 당시 관리들의 부당한 세금 징수와 그 과정에서 가톨릭교도들이 토착 신앙과 민간 풍습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로 수백여 명의 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지역 사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역 사회에 큰 몫을 차지하는 무속종교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미흡했죠. 그래서 오해가 오해를 낳고 물리적인 충돌도 일어났습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아픔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큰 틀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문화를 이루는데 교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다시 말을 잇는다. 

“일반적으로 종교인은 교회나 사찰에서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고 곁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종교는 사람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돕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와 성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쁘게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보직에서 물러나지만 저를 찾는 곳이 있으면 앞으로도 기쁘게 달려갈 생각입니다”

강 주교는 17일 오후 8시 금악에 위치한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퇴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22일자로 교구장 임기를 마무리한다. 퇴임 후에도 성직자로서의 본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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