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17일 제주교구장 퇴임 감사미사...“4.3으로 현대사 다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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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8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강우일 주교(가운데)의 제주교구장 퇴임 감사 미사가 봉헌됐다. ⓒ제주의소리

제주를 사랑한 노(老) 성직자가 도민들에게 남긴 퇴임 전 마지막 당부는 단순하면서 무거웠다. 

“여러분, 평화를 위한 동지가 되어 달라.”

강우일(76) 베드로 주교는 17일 오후 8시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강 주교는 22일자로 18년간 봉직해온 제주교구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강 주교는 평소 제주4.3을 비롯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난개발, 난민 등 사회 문제를 알리고 약자들을 위하는데 힘써왔다. 제주교구 신자와 청소년들을 비롯해 강정마을 주민, 예멘인 포함 이주민들이 이날 강 주교를 위해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한 것도 이런 이유다.

강 주교는 성당에 모인 신자들에게 “제주4.3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들을 데리고 제주에서 놀다 간 적 있다. 그런데 제주교구 주교로 내려오리라 꿈에도 상상 못했다. 제주에 내려와 살다 보니, 제주는 같은 한국땅이지만, 너무 많이 달랐다”면서 “4.3때 제주도민이 얼마나 많이 죽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제주도민들 뵙기에 너무 죄송하고 가슴이 따가웠다”고 솔직한 감정을 내비쳤다.

강 주교는 “분단은 단순히 38선의 지역적 경계가 아니라, 피를 나눈 겨레, 동네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철천지 원수처럼 적대하도록 타율에 의해 강요된 사회적 분단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제주도 바깥에,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제주도민들의 한과 고통의 역사를 모르고, 그냥 관광지로 놀러만 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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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감사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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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주민이 마음을 담아 강우일 주교에게 퇴임 선물을 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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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장 퇴임 미사에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제주의소리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은 공동체를 갈라놓은 또다른 강요된 분단이라는 게 강 주교의 인식이다.

그는 “그 일(해군기지 사업)이 있기 전 강정마을 주민들은 한 가족처럼 가깝게 왕래하고, 누구집 제사가 있다면 함께 제삿밥을 먹던 사람들이다. 그런 공동체를 두 쪽으로 쪼개 놨다. 그리고 강정의 아름다웠던 바닷가를 콘크리트로 덮어놓고 군사기지를 만들었다”면서 “그 후로 저는, 우리가 국가 없이 살 수 없지만, 국민을 섬기기보다 괴롭히는 국가는 감시하고 브레이크를 걸고, 성토를 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에 와서 저는 왜 예수님이 이스라엘도 로마도 아닌 하느님의 나라라는 말을 입에 올리셨는지 느끼게 됐다. 제주에 와서 저는 국가가 저질러온 불의와 폭력을 속죄하기 위해,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강 주교는 “전 세계인 모두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사람은 하느님이 만드셨고, 국가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하느님 자녀로 존중하고 아끼는 자녀가 되도록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면서 “제가 평화의 일꾼으로 일하고 싶은 소망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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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감사 미사는 금악리 삼위일체 성당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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