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女氣UP’ 창업현장](7) 내 아이 살아갈 희망찬 제주 만들기 위해 뭉친 ‘인문놀이협동조합’

“제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이 어떤 곳일지 불안했어요. 그래서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제가 먼저 세상으로 나왔죠.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조금 다르더라도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그래서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부소문 인문놀이협동조합 대표 인터뷰 중에서)

주부, 논술 강사, 사회복지사, 어린이집 통학 차량 운전기사, 춤 강사 등 다양한 곳에 있던 이들이 인문학을 중심으로 뭉친 여성공동체가 있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며, 제주의 환경·문화·역사·사람 등 다양한 주변의 것들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관찰하고 생각해보는 ‘인문놀이협동조합’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겠다는 이들은 2018년 제주도와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내 아이가 살아갈 희망찬 제주를 만들고, 경력단절 여성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고 싶다는 인문놀이협동조합 부소문(35) 대표와 조합원인 김신숙(41) 시인을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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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을 극복하고 더 나은 제주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주의 것들을 인문학적 관점서 자세히 살펴 가치를 재발견하는 여성공동체다. 부소문 대표(사진 오른쪽)와 조합원 김신숙 시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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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함께 신문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책 안의 주인공을 표현하는 인문학적 요소가 담긴 프로그램을 진행한 인문놀이협동조합.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무럭무럭 자라던 아이가 경계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며 남들보다 조금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된 부소문 인문놀이협동조합 대표.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가 만나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밤낮없이 고민을 이어가던 와중에 인문학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우연히 접한 인문학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갖게 됐고, 남들과 조금 다르더라도 인정받는 세상에서 내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품은 채 세상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서 부 대표는 아이와 가정생활에만 집중하던 주부에서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 이 과정서 큰 힘이 돼준 사람은 함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신숙 시인이다. 

김신숙 시인은 “책 읽기 모임서 만난 부 대표가 아이 얘기를 하며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다 문득, 대학도 나온 데다 결혼과 출산 전에는 뛰어난 능력도 가진 이들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재미있는 상상에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인문학 바탕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고 소개했다.

경계성 발달장애는 중증장애와 비장애 사이 어딘가 애매모호 한 위치에 놓여있다. 김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도 섞이지 못하고 저기도 섞이지 못하는 장애’다. 

중증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수교실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소외당할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본격적인 협동조합 창업에 나섰다.

아무것도 모르고 의욕만 가진 상태에서 여성공동체 지원사업은 창업하겠다 뛰어든 이들에게 실무와 행정절차 등 필요한 내용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중간점검과 심사를 통해 내실을 다질 수 있게 도와줬다.

부 대표는 “8년 동안 애만 키우다가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뛰어드니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씩 이뤄나가니 아이만 키우고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는데 어느 순간 성장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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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놀이협동조합은 책과 작품을 떠나 활동 속에서도 인문학적 요소를 찾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주 들꽃 재주 들꽃’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들꽃을 공부하고 배우는 인문학적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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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시 수업 활동 모습.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인문놀이협동조합은 지원사업을 통해 받은 초기 자본금을 통해 조합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그림책지도사, 노인문학활동지도사, 영화예술심리상담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 어르신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어울릴 수 있는 인문학 콘텐츠를 개발해 제주에 있는 모두와 함께하고 싶었기에 다양한 자격증 취득에 나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유아들을 위해 도서관 축제서 ‘조랑말 극장’을 운영하고, 청소년이 진단하고 기록하는 ‘청진기’ 프로그램을 통해 시집을 활용한 청소년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은 문학에 조예가 깊은 김 시인의 공이 컸다.

더불어 20대 청년과 중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며 공동체 의미를 되살리는 ‘라떼는 말이야’ 캠프, 어르신을 대상으로 1대1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나이는 달라도 우리는 동무, 동무릎’ 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놀이협동조합은 이와 함께 환경, 문화, 역사 등 고유한 제주의 콘텐츠에 인문학이라는 숨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나는 예술여행 지원사업’에도 선정돼 ‘4.3이 청춘에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4.3이 청춘에게는 제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관록을 쌓아온 시인들과 젊은 제주·도외 시인들이 함께 4.3 유적지를 걷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눠보는 프로그램이다.

김 시인은 “우리는 제주 사람들인데 왜 서울에서 만들어내는 출판물만 봐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접근한 것이 시작”이라며 “제주 콘텐츠를 활용한 한글 깨치기 놀이나 제주 관련 아이템을 통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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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진행된 ‘4.3이 청춘에게’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4.3 당시 관련 있는 나무를 찾아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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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청춘에게 프로그램을 통해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에서 묵념하는 모습. 이후 참여자들은 북촌초등학교와 마을을 둘러보는 등 아픔이 담긴 제주4.3 답사에 나섰다.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여성공동체를 통해 정말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을 주변 도움을 받아 해내고, 이런 마음이 저를 더 성장시켜줬어요. 그래서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통로가 돼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협동조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 있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부소문 대표 인터뷰 중에서)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김 시인은 “함께 모여 협력하고 협동조합을 도와주는 지원사업과 기관들이 있으니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런 활동들이 개인 성장 동력이 되는 것”이라며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섬세하게 보듬어줬다. 이를 통해 단단한 우리의 경력을 쌓아가고 선택한 그 길 위에 무늬를 그려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을 만나며 삶의 큰 변화를 맞이했다. 처음엔 손해 본다는 생각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새로운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보고 확신이 생겼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니 가치는 배가 됐고, 연이어 즐거운 일들이 따라 왔다”고 말했다.

부 대표는 “솔직히 나는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수없이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많이 성장한 데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 있더라”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일궈간다는 것은 엄청나다. 함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사람의 근원과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인문학. 어린아이부터 청년, 어르신 등 세대를 막론하고 삶의 길 위에서 자신만의 무늬를 새겨갈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을 알리는 이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업체명 : 인문놀이협동조합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천수로 52, 2층(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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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청춘에게 프로그램 중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추모비를 방문한 모습.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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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나는 예술여행 지원사업’에 선정된 ‘4.3이 청춘에게’ 사진=인문놀이협동조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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