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가 존재하는 이유
‘좋은 시’가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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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80.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2020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2020. 출처=알라딘.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2020. 출처=알라딘.

1.
세상은 숱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타인에게 건네는 말과 혼자 내뱉는 말이 제 각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세상을 맴돈다. 각종 미디어가 발달해서인지, 말들은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자신의 말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온갖 시청각적 분식(扮飾)이 우리의 감각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말의 알맹이는 온데간데 없고 그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미사여구와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되, ‘좋은 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이 자리는 이에 대해 갑론을박 논의하는 게 아닌 만큼 최근 내가 만난 ‘좋은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예의 논의를 대신하기로 한다.

2.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을 음미하는 내내 나도 모르는 새 허공에 시선을 수차례 던지곤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곤 하였다. 간만에 ‘좋은 시’를 접한 감흥에 흠뻑 취했다. 가령, 

내가 살아가는 지구地球는 우주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

나는 아주 작은 한 방울의 물에서 생겨나
지금 나같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조금 작은 한 방울의 물로 살다가
다시 아주 작은 한 방울의 물로 돌아가야 할 나는
나무 물방울 풀 물방울 물고기 물방울 새 물방울
혹은 나를 닮은 물방울 방울
세상 모든 물방울들과 함께 거대한 물방울을 이루며 살아가는

나는, 지나간 어느 날 망망대해 인도양을 건너다가 창졸간에 문득 지구는 지구가 아니라 수구水球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끝없는 우주를 떠도는 푸른 물방울 하나

― ‘푸른 물방울’ 전문

위 시는, 우리가 무심결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발본적 성찰을 보여준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곧 둥근 땅을 “우주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로 인식하는 이 도저한 시적 인식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흔히들 인간은 지상에 살고 있는 최상의 존재로서 대지를 중심으로 한 세계인식에 자연스럽다. 그리하여 대지적 상상력은 인간이 땅 위에서 비루한 존재일지라도 비루함을 넘어서는 존재의 위의(威儀)와 숭고성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한다. 땅은 생명의 터전이며 인간은 대지모신(大地母神)을 숭배하면서 땅의 우주적 생의 리듬에 충실히 적응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위 시에서는 이러한 땅이 “우주를 떠도는 푸른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며, 이 푸른 물방울은 보다 작은 숱한 물방울들을 품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생명과학 및 우주과학의 전문 지식을 갖고 시인의 이러한 시적 성찰에 대한 과학적 진리 여부를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터이다. ‘좋은 시’의 시적 성찰은 과학적 진리로 포괄할 수 없는, 또 그것에 구속되지 않는 우주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의 길에 우리를 동참시킴으로써 ‘나’와 뭇 존재에 대한 성찰의 문을 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문득 지구는 지구가 아니라 수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시적 인식이야말로, 물방울로 이뤄진 개별 존재들이 저마다의 독립성과 자족성을 갖고 있으면서 물방울과 물방울이 서로 자연스레 합쳐지는 생명의 속성을 갖는다는 깨우침에 이른다. 이 깨우침은 “나는 아주 작은 한 방울의 물에서 생겨나”란 시행과 어우러지면서, 인간 개별 존재들은 물방울이 그러하듯이, 다른 개별 존재들과 자연스레 함께 합쳐져 뭇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도록 한다.

이러한 시적 성찰은 이번 시집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몽골 고비사막의 체험을 녹여낸 시편 중 몽골 유목민의 전통 악기인 마두금 연주에 대한 심상을 노래한 시편을 귀 기울여보자.

고비를 노래하는 마두금 곡조에 고비가 운다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을 들으며 못내 운다
거짓말같이 바람이 울고
갓 태어난 새끼를 밀쳐내던 낙타가 젖을 물리며 운다
아닌 듯이 구름이 눈물짓고 꽃이 젖는다
별의 눈물이 떨어지고 바람이 글썽인다
고향을 모르는 사내들이 울고 엄마 품을 잊은 아낙들이 운다
마두금이 울고 고비가 운다

― ‘마두금에는 고비가 산다’ 부분

마두금 소리를 들어본 자는 단박에 위 시의 매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마두금 연주자는 몽골 전통 현악기를 켜면서 수천년 동안 고비 사막에서의 유목 생활과 자연 생태를 마두금 소리로 재현한다. 마두금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고비 사막에 불어대는 바람 소리와 흡사한 소리를 듣게 되며, 마두금 소리의 고저장단과 흐느낌에 교응하는 고비의 뭇 존재들의 삶과 죽음의 정동(情動)을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시인은 마두금 소리의 떨림과 울림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비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의 울음과 다를 바 없다. 

3.
‘좋은 시’는 이처럼 우리의 낯익은 일상에 새롭고 발본적인 시적 성찰의 틈을 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시집에서 각별히 눈에 띄는 시편들은 3부에 수록된 것으로, 4.3항쟁과 관련하여 씌어진 시편이다. 그 중 안동 사람 문상길 중위를 다룬 시편은 그동안 발표된 4.3시문학의 성취를 진전시키고 있다. ‘기와 까치구멍집’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시적 대상인 문상길 중위는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로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다. 이 사내의 고향이 안동임을 알게 된 안상학 시인은 동향(同鄕)의 이 사내의 내력을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다. 실제 인물 문상길이 해방공간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여 역사의 시공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듯이, 그가 살던 곳은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로,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이다. 여기서, 우리는 묻자. 이토록 시인이 문상길의 내력을 추적하여 그가 태어나 살던 곳을 힘겹게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해방공간의 제주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를 뭍사람 문상길이 함께 한 역사적 결단에 대한 시적 경외감의 표출일 뿐만 아니라 당시 통일독립과 진정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4.3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향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의 정동을 시인이 표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안상학의 이러한 시적 정동은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서 자행된 분단의 폭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서 4.3항쟁이 못다 이룬 분단의 경계를 없애고 참다운 해방의 가치를 향한 시적 전언을 타전한다.

남과 북이 맞닿은 그곳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산간지역과 해안지역이 맞닿은 그곳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언제쯤이면 경계를 지우고 어우러질까요
거기든 여기든 해와 달이 오고 가고
여기든 거기든 착한 계절들이 가고 오는데
잃어버린 마을에는 언제쯤 사람들이 살아갈까요
갈라섬도 맞닿음도 없이 살아갈까요

― ‘중산간 지역’ 부분

3부에 수록된 시편들을 음미하면서, 4.3시문학이 제주의 시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4.3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제주 바깥의 또 다른 웅숭깊은 시선으로 탐구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4.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시인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한 점의 꽃 그림에 훈기가 피어난다. 비록 시인의 시가 거칠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의 말들의 사위에 있더라도 그는 욕망한다. 어렵고 힘든 현실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꽃 그림에서 향기를 맡고 봄의 훈기와 정취를 만끽하기를. 이렇게 안상학의 ‘좋은 시’는 우리에게 살포시 다가온다.

꽃 그림 한 점 보냅니다
나비는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계실 당신이 있으니까요
벌써 향기를 맡고 계시는군요
한 폭의 그림입니다

― ‘봄소식’ 부분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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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사려니 2020-11-23 17:15:16
다시 아주 작은 한 방울의 물로 돌아가야 할 나는 용기있게 살아 갈 수 있을까
문상길 중위님의 죽음은 대의를 여는 길, 아주 작은 물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시대의 대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비가 내리기만을 고대하는 길에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바로 직시할 수 있을까
나는 따라갈 수 있을까, 자본과 사회에 오염된 의식 속에서 가능할까
정녕 위태로운 나날들이 아닌 날들이 어실꺼지만 그래도 , 그럼에도
살아가는 동안 여유로운 마음, 흘러가는 물처럼 살고 싶은 희망
223.***.***.194

이문호 2020-11-23 09:58:04
가슴이 팍 뚫리는 시와 평론이네요. 웃드르,알드르 경계의섬,4.3이시작.
건필부탁합니다.
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