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34)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인간 개별과 인류사회는 문명사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수렵과 채취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대와 농경을 통하여 자연의 제한적인 조건에 맞서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던 시기가 있었다. 근대 이전까지 인류사회는 자연의 품 속에서 그럭저럭 순응하면서 살아왔지만, 기계와 전기, 석유, 플라스틱 등 산업사회의 등장과 급속한 변화를 맞이했다.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근대산업사회의 개발논리는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공의 문명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고, 그 결과 인류사회는 기후위기라는 파국적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연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충청도 특유의 구릉지대를 휘돌아가는 금강의 모래밭과 함께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 산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한 미술축제인 금강(錦江)자연미술비엔날레(Geumgang Nature Art Biennale)가 열리고 있다.

1981년에 금강변에서 시작한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이하 야투)의 시간으로 치면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격년제 국제미술축제의 역사로 보면 9회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첨단의 문명과 조응하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그 속에서 생명의 서사와 감성을 일깨우는 예술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김준기.
2020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학술세미나 장면. 사진=김준기.

'2020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임수미 총감독은 '新석기시대 또 다른 조우'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대미문의 생태적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인류의 위기와 대응을 선보였다. 국내외 예술가들의 설치미술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이번 비엔날레 전시는 야투의 자연미술 운동 40주년을 맞이한다는 점에서도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술이론과 비평은 물론 사회학과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학술세미나를 열어 자연미술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의미와 가치를 새기는 자리를 가졌다. '자연미술의 새로운 접근과 비전'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11.20)에서 참가자들은 기후 변화와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에 예술의 역할에 대해, 특히 자연미술의 과제에 대해 숙의했다. 이 행사의 참가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팬데믹시대 자연과 예술의 미래를 의논했다. 

자연미술은 자연으로부터 삶의 진리를 깨닫고 배우는 예술적 태도이자, 가급적 인공적인 재료를 피하고 자연으로부터 나온 재료를 사용하려는 방법이며, 자연의 이치와 경이에 대한 성찰을 지향하는 이념이다. 그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라 뭇생명의 자연스러움으로부터 조화와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생명평화의 예술적 실천이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 속에서 창작의 내용과 방법을 찾아내는 자연미술은 이 시대의 그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도 외면할 수 없는 생태 의제와 맞물려 있다. 감성적 소통을 통해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면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자연미술 운동의 당사자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고승현 운영위원장은 40년전 금강의 모래밭에서 동료들과 함께 야투를 결성하고 자연미술운동을 시작한 멤버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40년간의 활동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미술관을 구상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삶의 태도와 예술의 지향을 동행과 공존의 선상에 올려놓은 자연미술이 서서히 2세대 자연미술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자연미술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사라지는 기억을 정리하고 후대로 연결하는 일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미술운동이 한 평생을 다 바친 후에도 미래 세대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려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이경호 작가의 설치작품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이다. 디자이너와 목수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기후 위기로 인한 미래의 대홍수 상황을 설정하고 자초한 방주를 연미산 언덕에 세운 것이다.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거대한 배모양의 구조물의 내부에는 아늑한 실내 공간이 있는데, 그 속에는 작품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더불어 기후 위기가 현실적 재앙으로 나타났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 동영상 작품이 있다. 생태 의제를 다루는 예술가의 의도가 설치 작품의 규모와 동영상의 디테일에 잘 담겨있어 현지의 방문객들은 물론 SNS 참여자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준기.
이경호,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공주시 연미산 숲 속 설치작품의 외부. 사진=김준기.
사진=김준기.
이경호,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공주시 연미산 숲 속 설치작품의 내부. 사진=김준기.

돌이켜보면 야투와 자연미술 등 이들의 활동이 요즘처럼 절실한 문제로 와닿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했다. 메르스나 사스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번지고 있는 코로나19를 맞이하여, 이제 전지구인들은 인류문명이 자초한 생태위기의 국면을 절박하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 열리는 행사이니만큼 자연미술에 대한 관심은 비엔날레 행사만이 아니라 자연미술 운동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지난 40년동안 이어진 자연미술 운동은 이제 한국 미술계의 여러 흐름들 중의 하나일 뿐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전체의 파국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공론의 장에 뛰어들고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 영어, 중국어, 일어판 원고는 추후 보강할 예정입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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