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김헌범 논설위원·제주한라대 교수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대법원의 최종판결에도 반성 없는 보수언론들의 대권후보 만들기

선팅

이명박 전대통령이 대법원에서 17년간의 형을 확정받고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그동안 1심과 2심에서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나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간 지 8개월 만이다. 당초 중범죄인에게 보석을 허용한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전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유전무죄’의 법리를 흔히 보여주는 사법부의 현실임을 감안하면 ‘그들만의 각별한 휴머니즘’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없었다.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불과 몇 천원의 빵을 훔쳐 먹은 어느 편의점의 ‘장발장’에게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더라도, 수백, 수천억 원의 회사공금을 빼돌린 재벌 회장들에게는 솜털만큼 가볍게 눈을 감아주던 사법부가 아니던가. 

그러나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는 법. 백일하에 드러난 명백한 진실 앞에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풀려났다가 다시 구속되는 것이 심리적으로 몇 배 더 힘들다는 통설이 보여주는 광경이었을까. 짙은 선팅으로 내부를 완벽히 감춘 검정 승용차를 타고 구치소로 들어가던 이 전 대통령은 마지막 송별 인사를 위해 저택 앞에 늘어선 친이계 의원들과 지인들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납빛으로 변해 있었을 자신의 얼굴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그의 공식적인 소감은 최종 선고 당일 변호인의 서면 대독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그의 발표문을 읽어보자.

횡령과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은 이명박 씨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횡령과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은 이명박 씨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꼼수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내가 재판에 임했던 것은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문장 그대로는 자신의 안위에 의연한 글귀처럼 보이지만 행간에 숨은 꼼수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사법부가 유죄를 선고한 것은 내가 정말로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법리에 벗어나는 엉터리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구차하게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판에 응했던 것도 감옥에 갇히는 것이 결코 겁나서가 아니었다. 단지 문재인 정부에서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시험해보기 위한 것뿐이었다. 역시 예상한 그대로였다. 이 판결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사법부가 전직 대통령에게 내린 치졸한 정치적 보복에 불과하다.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회전한다. 정말로 나는 다스의 주인이 아니다. 진실은 영원하다.” 

광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비로소 보이는 것이 오직 “열흘 붉은 꽃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권력의 무상함뿐이던가. 최종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기반성을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패소한 것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권력이 없는 탓을 한다. 다스라는 회사의 공금횡령, 삼성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그리고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갈취 등 이번 재판의 쟁점들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증과 증언은 차고 넘친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도 오천만 명의 국민들 중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확실한 사실이 입증돼도 자신에게 불리하면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이다. 

반면에 사실관계라곤 억지밖에 없는 그의 “새빨간 거짓말”은 어떨까. 유력대권후보로 부각되던 시절 한나라당(현재 국민의 힘) 당원교육 현장에서 BBK의혹과 도덕성 논란에 대한 그의 해명은 지금도 기억이 선하다.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청중을 향해 “(나의 결백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우리 모두 믿습니까”라고 외치는 모습은 마치 수난을 앞두고 광야에 서서 하느님께 절규하던 예수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흥분된 군중의 심리는 종교적 맹신과 맞닿는 것일까. 그가 띄운 분위기에 한껏 도취된 청중들은 어김없이 “예”라고 응답했다. 아니, “예”라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은 이명박씨가 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이씨는 검찰 출석 후 동부구치소로 재수감 된다. 사진=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은 이명박 씨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이씨는 검찰 출석 후 동부구치소로 재수감 된다. 사진=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상인 

그의 주장이 거짓으로 확정된 것은 임기 중은 물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도 9년이나 지난 후다. “가재는 게 편”이었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촛불정부에서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 진실은 장막 뒤에 숨기를 즐겨하고, 정의는 무척이나 게으르다는 속설이 통용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문제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교훈이 현실로 입증됐다는 점이다.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그의 새빨간 거짓말만 믿고 심각한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선출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하던 그가 현실로 보여준 것은 “상인(商人)이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파탄이 난다”는 어느 현인의 경고였다. 한마디로 국가 공동체에 천문학적 비용을 전가한 착취형 권력이자 사익추구형 정치로 요약된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4대강 공사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던 해외자원투자는 그와 정권 실세들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방산 비리와 남북경제협력 중단, 그리고 정실인사가 개입된 포스코와 KT와 같은 준(準)공기업들의 투자실패 등을 감안하면 “비도덕적” 지도자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무려 20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겨울

이에 대해 이른바 리플리 중증환자에 가까운 그에게는 애초부터 사과를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사상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정부”라는 그의 허언에 눈을 감고 더 나아가 옆에서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국민들을 현혹시킨 정치인들과 보수언론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전무하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지금은 다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이너서클의 핵심 중 핵심이며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몇몇 유력 언론사 사주들을 만난 이후로 돌변한 검찰총장이 합당한 근거도 없이 촛불정부와 사사건건 맞서며 일거에 여론 지지율 상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거기엔 보수언론들의 각별한 “띄워주기”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이 정말로 국가를 생각한다면 그가 정말로 대권주자로서 자격이 있는지는 사심과 진영논리를 넘어 공정과 상식으로 철저한 검증에 나서야 할 일이다. 공개석상인데도 걸핏하면 불끈 쥔 주먹으로 애꿎은 탁자를 내려치며 쉽게 “격노하시는” 성정은 그의 수신(修身)의 정도를, 보수언론들은 보도하지 않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의 장모와 처자의 각종 비리의혹은 제가(齊家)의 수준을, 시대적 과제인 검찰개혁과 검찰비리 척결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그가 맡을지도 모를 치국(治國)의 데자뷰를 보여준다. 

아. 벌써 따스한 시절이 가고 엄혹한 추위가 찾아오는가. 다시 겨울을 원하는 것은 “한겨울에 자신들만 뜨끈한” 그들뿐이리라.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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