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 기승...피해자 A씨 "저 같은 피해자 또 없길"

 

보이스피싱 사기 일당은 추가 범행을 위해 조악하게 위조한 납부증명서까지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제주의소리
보이스피싱 사기 일당은 추가 범행을 위해 조악하게 위조한 납부증명서까지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제주의소리

'본 상품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빠른 확인과 최대 가능한 금액 승인을 75%이상 줄어드는 대환 대출 상품입니다. 추가 생계형 또는 운영자금 희망시에도 신청 진행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대출과 달리 간단한 절차로 신청 가능하며, 상환 해약금 없이 자유롭게 상환이 가능합니다.'

한발 물러서서 보면 엉성하고 의심이 갈 만한 대출안내 문자메시지인데, 왜 그땐 한번 더 의심하지 못했을까. 간혹 뉴스에서나 봤지 남의 일로만 여겨지던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하루 아침에 3000만원 가량의 사기 피해를 입은 A(68)씨는 보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매일 자책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A씨가 대출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은 지난 9일이었다. NH저축은행 명의로 송부된 메시지가 안내하는 대출 상품은 기존에 이용하고 있던 카드사 대출 이자에 비해 10%p 이상 낮았다. '정부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제공된다며 싼 이자를 내건 상품에 매료된 A씨는 문자메시지가 안내하는대로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 과정에서도 계좌 정보나 비밀번호와 같이 예민한 정보를 물은 것도 아니었고, 간단한 정보만을 기입하도록 해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절차도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추가 정보를 기입한 이후 '한 시간 안에 입금이 될 것'이라는 연락까지 받았다. 계획대로라면 4%대 이자로 대출을 받아 기존 카드사 대출을 갚으면 될 일이었다.

이후 10분쯤 지났을까. 기존에 대출상품을 이용하던 카드사라며 연락이 왔다. 자신을 B과장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대뜸 A씨에게 "대출 규약을 위반했으니 위약금을 2배로 물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A씨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상대방은 "한 시간 안에 갚아야 한다. 갚지 않으면 금융감독원으로 사건이 넘어갈 수 있다"고 채근했다.

"내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단돈 10원 떼먹은 것도 없는데 금감원이라는 곳을 왜 가냐"는 A씨의 항변에도 상대방은 "그럼 위약금을 물어라"며 기세를 꺾지 않았다. 기존의 대출금이 1400만원 가량이었으니 2배의 위약금이면 약 2800만원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자신을 금감원 소속 직원이라며 어떤 여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드사에서 피해 신고가 접수돼 A씨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A씨는 "혼이 나간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이 A씨는 지인을 통해 1400만원을 급히 빌렸다. 

의심을 아예 거둔 것도 아니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친동생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런데, 분명 동생에게 건 전화가 카드대출사 B과장과 연결이 됐다. 그렇게 다시 연결된 B과장은 연신 "전화를 끊지말고 자신과 통화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외부에서 A씨에게 걸려온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대출 상담 과정에서 휴대폰에 설치했던 어플리케이션이 문제였다. 이 어플이 휴대폰을 해킹하는 악성 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이 어플로 인해 휴대폰은 전화를 걸거나 받는 기능이 모두 차단되고, 전화를 걸면 오로지 보이스피싱 사기범과 연결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A씨는 "당시 휴대폰이 이상했다. 전화를 걸면 '뚜루룩' 하는 신호가 2번 정도 나오다 끊어지고, 3번째 신호음에서 보이스피싱과 연결됐다. 화면이 흔들리는 것 같이 모양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녹음이 되는 것 같더라. 전화를 끊어도 계속 상대방이 듣고 있는 듯한 상태가 됐다"고 했다.

B과장이라는 사람은 특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배를 통해 돈을 송부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 택배 서비스를 '논플레이'라고 지칭했다. 택배를 받으러 오면 그 앞에서 '돈을 지불한다'는 내용의 녹음을 해 기록을 남겨놓으라고 디테일한 대응법까지 안내했다. 돈을 지불한 후에는 해당 카드사 명의로 '납부 증명서' 안내 문자까지 A씨에게 보내졌다.

A씨는 그렇게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처럼 지인에게 급히 1400만원의 빚을 졌고, 그 빚을 고스란히 사기범에게 넘겼던 것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A씨에게 추가로 거액을 마련할 것을 유도했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던 A씨는 인근의 파출소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A씨가 파출소를 다녀온 직후 B과장에게 "왜 경찰에 신고를 했느냐"는 연락이 왔다. A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자신의 휴대폰의 위치추적 시스템까지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A씨는 이번엔 경찰의 도움 아래 한번 더 돈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뭔가 눈치를 챘는지 B과장은 물론 최초 대출을 안내했던 연락처, 금감원 연락처 모두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A씨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경찰도 기가 막혀 하더라. 조사 받으면서도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화면 등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 돈을 받아간 운송책을 체포했다. 그러나, 총책을 파악해 피해 복구가 이뤄지기까지는 요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으로, 관련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일절 함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5일에도 유사한 형태의 보이스피싱 범죄 시도가 있었다. 

한국소비자원과 검찰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피해자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된 계좌이므로 기소된 상황'이라며 악성앱을 설치하도록 유도, 거금을 뜯어내려 한 사건이다. 다행히 피해자의 남편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이 GPS 추적으로 돈을 넘겨주기 직전 피해자의 신변을 확보하면서 재산피해는 면했다.

매일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A씨는 이 같은 범행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제보하게된 이유도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용기를 냈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나고 나서 보니 나도 내가 이렇게 미련할 수 없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 없다. 저처럼 어처구니없는 이런 피해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분들에게 널리 알려주면 고맙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