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주4.3 생존수형인 재심 사상 첫 무죄...고태삼(92)-이재훈(91) 할아버지도 재심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정에 앞에서 딸 김연자(63)씨가 아버지의 가슴에 무죄와 진실을 의미하는 나리꽃을 달아주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정에 앞에서 딸 김연자(63)씨가 아버지의 가슴에 무죄와 진실을 의미하는 나리꽃을 달아주고 있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유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박수 한번 쳐주세요. 오늘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제주4.3 생존수형인 재심 사건 중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김두황(93)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마냥 환하게 웃었다.

법정에서 꼭꼭 숨겨왔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열했던 딸 김연자(63)씨는 환호하는 부친의 응어리진 가슴에 무죄와 진실을 뜻한 ‘나리꽃’을 달아드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재판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수감 생활을 한 김두황(93) 할아버지의 재심사건에서 7일 무죄를 선고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마을 내 실력단체인 민보단의 서무 계원으로 활동하던 1948년 11월 중순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갔다.

현장에서는 남로당에 가입했냐는 일방적인 질문과 폭행, 폭언, 허위 자백 강요가 이어졌다. 경찰은 총까지 겨누며 협박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하지도 않은 일은 인정할 수 없다”며 맞섰다.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원 앞에서 김 할아버지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원 앞에서 김 할아버지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보름 뒤 김 할아버지는 제주시로 다시 끌려갔다. 정식재판 절차 없이 죄명과 형량도 모른 채 고깃배에 실려 목포형무소로 향했다.

판결문에는 김 할아버지가 1948년 9월25일 오후 8시45분 난산리 김천말씨의 집에서 김분왕씨 등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들에게 식량 제공을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1948년 9월28일 오후 9시에는 집으로 찾아온 2명에게 좁쌀을 제공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할아버지가 폭도들을 지원하며 국가를 위협했다는 내용은 사실상 날조된 공소사실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1949년 4월11일 미군정청 법령 제19호 위반과 구형법 제77조 내란죄 적용을 받아 제주지방심리원(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형기가 2개월 감형돼 1950년 2월 출소했지만 자신의 죄명과 선고 일자는 지난 70년간 모르고 지내왔다. 연좌제에 시달리며 과거를 잊으려 했지만 생전에 명예회복(재심)을 결심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미 공소기각을 받은 18명의 1차 생존수형인과 2차 생존수형인 7명과는 다소 성격이 달랐다.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정에 앞에서 딸 김연자(63)씨가 아버지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이 7일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법정에 앞에서 딸 김연자(63)씨가 아버지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 모두 4.3의 광풍 속에서 불법적인 군사재판(군법회의)을 받아 옥살이를 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정식 재판을 받았다. 김 할아버지만 유일하게 판결문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피고인은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부인했고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는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증거가 없어 검찰도 무죄를 구형한 만큼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해 증거관계만으로는 공소사실 인정할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 해당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 할아버지는 무죄 선고 직후 법정에서 “재판장님 감사하다. 대통령님께도 감사하다. 따뜻한 봄이 왔다.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주에서는 김 할아버지에 이어 소요와 내란실행방조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 고태삼(92), 이재훈(91) 할아버지의 일반재판 재심 사건도 진행 중이다.

이들 역시 제주4.3도민연대의 도움을 받아 4월2일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7개월만인 11월30일 심문 절차가 이뤄지면서 당사자와 유족들은 법원의 재심 개시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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